『모아나 Moana』에 왜 멍청한 닭이 나올까?


2016년에 개봉한 디즈니의 극장판 애니메이션 『모아나 Moana』는 꽤 의미있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라푼젤 Tangled』(2010)을 시작으로 디즈니는 기존의 전통적인 플롯을 부수고, 새로운 형태의 플롯을 만들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금빛 머릿결을 가진 공주는 디즈니 역사상 자신의 손으로, 왕자나 기사나 타인만의 힘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운명을 개척해냈다. 이후 『겨울왕국 Frozen』(2012)에서는 공주가 더 이상 왕자의 영향으로 변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그녀들 스스로 이야기를 완성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겨울왕국 Frozen』은 역대 애니메이션 중 최고의 흥행 성적을 기록한다. 


『주토피아 Zootopia』(2016)에서 나는 디즈니가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 하려는 목소리를 들었다. 다양한 동물들을 빌어 다양한 형태의 인간을 묘사했고, 그들이 어떻게 통합하는지 보여줬다.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모아나』와 가장 최근에 개봉한, 물론 제작사는 픽사지만 2006년 인수합병 됐으니 두 제작사가 지향하는 방향을 따로 볼 필요는 없기에, 『코코 Coco』는 완전히 다른 인종과 생소한 문화가 배경인 작품이다.


이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차근차근 해보도록 하고, 오늘은 『모아나』에 등장하는 인상적인 사이드 캐릭터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바로 이 헤이헤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멍청한 닭이다.


감독이 폴리네시아 탐방을 떠났을 때, 돼지와 닭이 어디서나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한다. 의외로 섬나라 사람들에게도 친근한 동물인 것 같다.


이 닭의 멍청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돌을 삼키기도 하고,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해 바다로 빠지는 건 귀여운 수준이고, 장작이 타고 있는 불 속에 들어가 앉기도 한다. 제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이 닭이 어째서 모아나의 항해 파트너가 되었을까?



< 출처 : 나무 위키 >




대부분의 사람들도 이 멍청한 닭이 모아나에게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몇몇은 차라리 마을에서 보았던 돼지(푸아)가 함께 항해를 떠났어야 되는 게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헤이헤이가 모아나와 가장 잘 어울리는 캐릭터라고, 확신한다.


이 작품의 주제는 모아나가 자신의 정체성, 그러니까 '나는 누군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가며 그 답을 찾는 행동에 있다. 모아나 뿐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찰하는 캐릭터가 여럿 등장하는데 정리를 하면 이렇다.


1. 바다로 나가고 싶은데, 부족의 규율 때문에 나가지 못하는 모아나

2. 인간에게 버려졌지만, 인간의 사랑을 갈구하는 반인반신 마우이

3. 생명을 창조하다가, 반대로 파괴하게 되는 심장을 빼앗긴 여신 데 피티


위 세 캐릭터는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으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외에 다른 캐릭터들은 자신의 정체성 정립을 포기하거나, 이미 완성된 상태로 등장한다. 예를 들면 모아나의 할머니는 누구보다 뚜렷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죽음 이후에 자신의 모습까지 스스로 정하는 행동으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모아나의 아빠는 과거 친구를 잃었던 트라우마에 갇혀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를 멈췄다. 실패에 의해 도전을 포기한 셈이다. 반대로 바다가재 괴물인 타마토아는 자신의 정체성이라고는 하나도 찾아 볼 수 없는 존재다. 타마토아가 보물을 긁어 모으는 이유가 노랫말에 나오는데, 그에 따르면 '마우이의 문신이 멋있었기 때문'이다. 타인의 기호를 자신의 것으로 믿어버린다. 그 모습은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사실은 빈 껍데기나 다름 없는 존재임을 나타낸다.


헤이헤이는 이 작품에서 누구보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 존재다.


헤이헤이가 보여주는 행동을 보면 알겠지만, 애초에 자기가 누구인지도 인지하지 못하는 듯 하다. 멍청하면 용감하다고 하지 않나. 누구나 모르기 때문에 희망을 가질 수 있고, 용기를 낼 수 있다. 모아나가 처음 암초 밖으로 넘어가려 했을 때, 배에 함께 타고 있던 건 헤이헤이가 아니라 돼지 푸아였다. 그러나 배에서 떨어져 바다에 빠져 목숨을 잃을 뻔한 푸아는, 가까스로 육지에 상륙하자마자 바다로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 처음 푸아가 노를 물고 배에서 모아나를 기다렸던 모습을 생각하면, 너무나 상반되는 모습이다. 푸아는 한 번의 시도를 했고, 실패를 경험했다. 정확히 실패를 알고 있기 때문에 두려움을 갖게 됐고,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채 바다로 나오기를 거부하게 된다. 모아나의 아빠 역시 푸아와 다를 것 없는 포지션을 갖는다.


헤이헤이는 주어진 것에 그저 만족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모아나와 비슷하다. 마우이는 모아나를 '공주'라고 불렀고, '왜 마을을 떠난 거야? 거기서 편하게 살지?'라고 묻는다. 모아나는 스스로 공주가 아니라고, 사실 그녀는 부족장의 딸이니까 공주가 아니기는 하지만, 부정한다. 그러나 마우이의 말처럼 마을에서 편하게 기다릴 수도 있었다. 다른 누군가가 나타나 이 사태를 해결해주기를 말이다. 그러나 모아나는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스스로 나선다. 


이 점에서 헤이헤이와 모아나가 어떻게 닮았다고 할 수 있냐면, 작품 내내 헤이헤이는 마우이가 주는 모이를 한 톨도 먹지 않는다. 계속 바닥을 쪼기만 할 뿐, 모이는 한 톨도 먹지 않는다. 그래, 고작 그 모습 하나만으로 헤이헤이는 모아나와 닮아있다.


모아나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도 하지만, 다른 이들의 정체성을 찾아주기도 한다. 마우이 역시 모아나를 통해서 갈고리 없이도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심장을 뺏긴 채 악마로 변해있던 여신의 심장을 돌려주고 본 모습을 찾아준 것도 모아나였다. 모투누이의 부족이 다시금 바다로 나와 과거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도 모아나의 덕분이었다. 마우이의 말대로 모아나는 '훌륭한 길잡이'로 성장했다.


다만, 헤이헤이는 작품이 끝날 때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다는 점에서 모아나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모아나가 데 피티의 심장을 돌려준 다음 모투누이로 돌아왔을 때, 헤이헤이는 해안가에 내리자마자 다시 몸을 돌려 바다로 들어가려 한다. 아직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보이는 모습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도전적인 캐릭터가 바로 헤이헤이다. 우리는 이 멍청한 닭보다 아는 건 많아도, 용감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결과를 알기 때문에 도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결과를 모르기 때문에 도전할 수 있다. 


누구도 성공을 보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실패는 누구나 한다.


용기있게 살 필요는 없지만, 우리는 조금 멍청하게 살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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