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18.03.04 『모아나 Moana』에 왜 멍청한 닭이 나올까? 1
  2. 2018.01.14 디즈니가 2018년 처음으로 선사하는 감동『코코 COCO』
  3. 2018.01.05 영화 『매트릭스』분석 : 6. 마치며
  4. 2018.01.04 영화 『매트릭스』분석 : 5. 시뮬라크르, 그리고 종말
  5. 2018.01.02 영화 『매트릭스』분석 : 4. 거짓된 원형(原形)
  6. 2018.01.02 영화 『매트릭스』분석 : 3. 진실을 마주하고
  7. 2018.01.01 영화 『매트릭스』분석 : 2. 시뮬라시옹(Simulation)의 시작
  8. 2017.12.05 영화 『매트릭스』분석 : 1. 원형(原形)의 탄생
  9. 2017.12.04 영화 『매트릭스』분석 : 들어가며

『모아나 Moana』에 왜 멍청한 닭이 나올까?


2016년에 개봉한 디즈니의 극장판 애니메이션 『모아나 Moana』는 꽤 의미있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라푼젤 Tangled』(2010)을 시작으로 디즈니는 기존의 전통적인 플롯을 부수고, 새로운 형태의 플롯을 만들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금빛 머릿결을 가진 공주는 디즈니 역사상 자신의 손으로, 왕자나 기사나 타인만의 힘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운명을 개척해냈다. 이후 『겨울왕국 Frozen』(2012)에서는 공주가 더 이상 왕자의 영향으로 변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그녀들 스스로 이야기를 완성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겨울왕국 Frozen』은 역대 애니메이션 중 최고의 흥행 성적을 기록한다. 


『주토피아 Zootopia』(2016)에서 나는 디즈니가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 하려는 목소리를 들었다. 다양한 동물들을 빌어 다양한 형태의 인간을 묘사했고, 그들이 어떻게 통합하는지 보여줬다.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모아나』와 가장 최근에 개봉한, 물론 제작사는 픽사지만 2006년 인수합병 됐으니 두 제작사가 지향하는 방향을 따로 볼 필요는 없기에, 『코코 Coco』는 완전히 다른 인종과 생소한 문화가 배경인 작품이다.


이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차근차근 해보도록 하고, 오늘은 『모아나』에 등장하는 인상적인 사이드 캐릭터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바로 이 헤이헤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멍청한 닭이다.


감독이 폴리네시아 탐방을 떠났을 때, 돼지와 닭이 어디서나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한다. 의외로 섬나라 사람들에게도 친근한 동물인 것 같다.


이 닭의 멍청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돌을 삼키기도 하고,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해 바다로 빠지는 건 귀여운 수준이고, 장작이 타고 있는 불 속에 들어가 앉기도 한다. 제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이 닭이 어째서 모아나의 항해 파트너가 되었을까?



< 출처 : 나무 위키 >




대부분의 사람들도 이 멍청한 닭이 모아나에게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몇몇은 차라리 마을에서 보았던 돼지(푸아)가 함께 항해를 떠났어야 되는 게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헤이헤이가 모아나와 가장 잘 어울리는 캐릭터라고, 확신한다.


이 작품의 주제는 모아나가 자신의 정체성, 그러니까 '나는 누군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가며 그 답을 찾는 행동에 있다. 모아나 뿐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찰하는 캐릭터가 여럿 등장하는데 정리를 하면 이렇다.


1. 바다로 나가고 싶은데, 부족의 규율 때문에 나가지 못하는 모아나

2. 인간에게 버려졌지만, 인간의 사랑을 갈구하는 반인반신 마우이

3. 생명을 창조하다가, 반대로 파괴하게 되는 심장을 빼앗긴 여신 데 피티


위 세 캐릭터는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으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외에 다른 캐릭터들은 자신의 정체성 정립을 포기하거나, 이미 완성된 상태로 등장한다. 예를 들면 모아나의 할머니는 누구보다 뚜렷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죽음 이후에 자신의 모습까지 스스로 정하는 행동으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모아나의 아빠는 과거 친구를 잃었던 트라우마에 갇혀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를 멈췄다. 실패에 의해 도전을 포기한 셈이다. 반대로 바다가재 괴물인 타마토아는 자신의 정체성이라고는 하나도 찾아 볼 수 없는 존재다. 타마토아가 보물을 긁어 모으는 이유가 노랫말에 나오는데, 그에 따르면 '마우이의 문신이 멋있었기 때문'이다. 타인의 기호를 자신의 것으로 믿어버린다. 그 모습은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사실은 빈 껍데기나 다름 없는 존재임을 나타낸다.


헤이헤이는 이 작품에서 누구보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 존재다.


헤이헤이가 보여주는 행동을 보면 알겠지만, 애초에 자기가 누구인지도 인지하지 못하는 듯 하다. 멍청하면 용감하다고 하지 않나. 누구나 모르기 때문에 희망을 가질 수 있고, 용기를 낼 수 있다. 모아나가 처음 암초 밖으로 넘어가려 했을 때, 배에 함께 타고 있던 건 헤이헤이가 아니라 돼지 푸아였다. 그러나 배에서 떨어져 바다에 빠져 목숨을 잃을 뻔한 푸아는, 가까스로 육지에 상륙하자마자 바다로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 처음 푸아가 노를 물고 배에서 모아나를 기다렸던 모습을 생각하면, 너무나 상반되는 모습이다. 푸아는 한 번의 시도를 했고, 실패를 경험했다. 정확히 실패를 알고 있기 때문에 두려움을 갖게 됐고,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채 바다로 나오기를 거부하게 된다. 모아나의 아빠 역시 푸아와 다를 것 없는 포지션을 갖는다.


헤이헤이는 주어진 것에 그저 만족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모아나와 비슷하다. 마우이는 모아나를 '공주'라고 불렀고, '왜 마을을 떠난 거야? 거기서 편하게 살지?'라고 묻는다. 모아나는 스스로 공주가 아니라고, 사실 그녀는 부족장의 딸이니까 공주가 아니기는 하지만, 부정한다. 그러나 마우이의 말처럼 마을에서 편하게 기다릴 수도 있었다. 다른 누군가가 나타나 이 사태를 해결해주기를 말이다. 그러나 모아나는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스스로 나선다. 


이 점에서 헤이헤이와 모아나가 어떻게 닮았다고 할 수 있냐면, 작품 내내 헤이헤이는 마우이가 주는 모이를 한 톨도 먹지 않는다. 계속 바닥을 쪼기만 할 뿐, 모이는 한 톨도 먹지 않는다. 그래, 고작 그 모습 하나만으로 헤이헤이는 모아나와 닮아있다.


모아나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도 하지만, 다른 이들의 정체성을 찾아주기도 한다. 마우이 역시 모아나를 통해서 갈고리 없이도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심장을 뺏긴 채 악마로 변해있던 여신의 심장을 돌려주고 본 모습을 찾아준 것도 모아나였다. 모투누이의 부족이 다시금 바다로 나와 과거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도 모아나의 덕분이었다. 마우이의 말대로 모아나는 '훌륭한 길잡이'로 성장했다.


다만, 헤이헤이는 작품이 끝날 때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다는 점에서 모아나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모아나가 데 피티의 심장을 돌려준 다음 모투누이로 돌아왔을 때, 헤이헤이는 해안가에 내리자마자 다시 몸을 돌려 바다로 들어가려 한다. 아직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보이는 모습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도전적인 캐릭터가 바로 헤이헤이다. 우리는 이 멍청한 닭보다 아는 건 많아도, 용감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결과를 알기 때문에 도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결과를 모르기 때문에 도전할 수 있다. 


누구도 성공을 보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실패는 누구나 한다.


용기있게 살 필요는 없지만, 우리는 조금 멍청하게 살 필요가 있다.




 

디즈니가 2018년 처음으로 선사하는 감동『코코 COCO』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은 믿고 본다.


오랜 시간 동안 쌓아온 내공으로 언제나 완성도 높은 작품을 선보여줬기 때문이다. 신작 『코코 COCO』 역시 예고편 트레일러 한 번 보지 않고 극장에 달려가서 관람했다. 아직 안 봤다면 당장 가서 봐라. 아름다운 색체와 완급조절이 제대로 된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흥겨운 멕시코 노래는 덤이다.


『모아나』에 이어서 디즈니가 다른 문화권에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려는 움직임이 느껴진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주토피아』에서부터 디즈니는 다른 문화권, 서로 다르다는 차이에 대한 메세지를 던지기 시작했다. 이는 세계 정세와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다던가, 테러와 전쟁이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는다던가. 그런 시국에서 디즈니는 반대로 모두의 융합을 그리고 있다. '꿈'을 그리는 게 만화의 일이라면, 그리고 디즈니가 제일 잘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아주 바람직한 행보라고 생각한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그저 비지니스겠지만


이 글은 『코코』를 소개하거나 추천하는 글이 아니다.


작품의 배경이 멕시코이고, 멕시코가 우리에게는 친숙하지 않은 나라이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 몇 가지 알려주기 위한 글이다. 최대한 『코코』의 내용 언급은 피하고, 작품에 녹아있는 멕시코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할 예정이다.



1. 죽은 자들의 날


죽은 자들의 날(Día de los Muertos)은 멕시코의 명절이다. 10월 31일부터 11월 2일, 총 3일로 첫째날에 제단을 마련하고, 둘째날에는 죽은 아이들을, 마지막 날에는 죽은 어른들을 위해 기도를 올린다. 설탕, 초콜릿 등으로 해골 조형물과 뼈 모양 사탕 따위를 만들어 죽은 사람의 이름을 적어 제단에 올린다. 죽은 아이들을 위해서는 장난감을, 어른들을 위해서는 데킬라와 담배를 가져간다. 일부 지역에 따라서 해골 복장을 하는 곳도 있다.


죽은 자들의 날은 멕시코 토착 공동체의 일상에 부여하는 사회적 기능과 영적·미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8년에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됐다.


영적은 그렇다치고, 어떻게 미적 가치를 인정받았느냐?


죽은 자들의 날에는 제단을 꾸미는데, 이 제단을 '오프렌다스 Ofrendas'라고 부른다. 제단에는 사진이 올라가고, 해골과 뼈 모양 장식품, 그리고 노란꽃으로 꾸며진다. 제단을 올리는 형태부터 고대 아스텍의 전통에서 유래한 것이며, 그 모습이 매우 예쁘다. 우리나라 제사상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 일부 지역에서는 제단을 꾸미는 행사가 따로 열릴 정도라고 하니, 미적인 요소가 다분하다고 볼 수 있다.



2. 노란꽃의 정체


작품에서 계속 등장하는 저 노란꽃은 금잔화, 마리골드(Marigold)다. 죽은 자들의 날에 제단을 꾸미거나 죽은 자를 집으로 인도하는 꽃길을 만들 때 사용된다. 꽃말은 '이별의 슬픔'이라는데, 영화의 내용과 잘 맞는다는 생각을 한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영화를 보고 오시길.




3. 알레브리헤


알레브리헤(Alebrije)는 화려한 색으로 환상적인 생물을 표현하는 멕시코의 민속 조각 예술이다.


보기만 해도 눈이 현혹되는 듯한 색감이다. 그 기원은 '피냐타'라는 인물과 카니발 가면을 만들던 '리나레스'에 의해 창시되었다고 한다. 리나레스가 병을 앓다가 잠이 들어 꿈을 꾸게 되었는데 나무와 바위, 구름이 있는 숲 속에서 갑자기 처음 보는 동물들이 나타났다. 나비의 날개를 가진 당나귀, 소의 뿔을 가진 닭, 독수리 머리에 사자의 몸을 가진 생물들이 '알레브리헤'라고 소리지르며 다니는 꿈이었다. 그가 꿈에서 깨어나 그 동물을 조각하고 다채로운 색을 입혔고, 그게 오늘날 전해지는 알레브리헤의 기원이다.


기괴한 이미지는 악마의 기운을 몰아내고 가정을 보호해 준다는 미신은 어디에나 있나 보다. 우리나라의 장승이나 해태가 멕시코의 알레브리헤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2007년 이후부터 멕시코 대중 예술 박물관 후원 하에 '알레브리헤 퍼레이드'가 매년 개최될만큼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재료나 형태에 제한이 없기 때문에 보다 기괴하고 창의적인 알레브리헤가 등장하는 듯 하다. 멕시코의 수공예와 민속 예술을 계승한다는 목적으로, 현재는 카니발 같은 큰 축제로 성장했다고 한다.


작품에서는 죽은 영혼을 안내하는 인도자로 나오지만, 실제로 그런 것보다는 악운을 막아주는 정도로 인식되는 듯 하다.



4. 멕시코에서의 죽음


뉴욕, 파리, 런던 사람들에게 죽음은 입 밖에 내지 말아야 할 금기어다. 하지만 멕시코 사람들은 다르다. 그들은 죽음에 늘 관심을 갖고 자주 말하며, 죽음과 함께 잠들고 죽음을 축하한다. 그들에게 죽음은 가장 좋아하는 놀이이고 영원한 사랑이다.


- 멕시코 시인 옥타비오 파스 『고독의 미로』 中



각 문화권마다 죽음을 받아드리는 자세가 다르다.


최근에 개봉한 『신과 함께』에서 보여주는 우리나라의 사후세계와 『코코』에서 그려진 멕시코의 사후세계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우리나라의 사후세계는 죄를 심판하는 근엄한 분위기라면, 멕시코의 사후세계는 거대한 축제를 떠올리게 하는 분위기다. 실제 멕시코 문화에서 죽음은 두렵거나 무서운 분위기 보다는, 또 하나의 세계로 인식되는 듯 하다. 때문에 해골 장식이나 분장이 일반적으로 많이 이뤄진다. 멕시코 해골 장식을 본 적이 있나? 그들은 해골에 꽃이나 하트를 그려넣는다. 


작품에서는 그런 분위기를 잘 살려냈다.


아마 디즈니 작품 중에서 죽음이 가장 가볍게 다뤄진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전해지는 감동은 가볍지 않다. 2018년의 가슴 떨리는 선율의 감동을 받고 싶다면 지금 극장에서 『코코』를 예매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




《네이버 지식백과》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영화 『매트릭스』분석 : 6. 마치며


대학생 시절, 예술 수업에서 매트릭스를 분석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어리숙하고 부족한 게 더 많은 분석이었다. 게다가 시뮬라시옹, 시뮬라크르를 중심으로 잡지도 않았다. 이후 『시뮬라시옹』의 존재를 알고, 책을 읽은 다음에 다시 한 번 분석을 하겠노라 다짐했다. 그리고 지금 여기까지 썼다. 여전히 부족한 게 많은 분석이지만, 마침표를 찍었다는 점에서 만족한다. 어느 정도 아쉬움은 남겨둬야, 다시 도전할 마음도 생길테니.


『매트릭스』 시리즈는 해석 여지가 많은 작품으로,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시점으로 분석했다. 종교적인 분석도 꽤 많고 디테일한데, 찾아보면 또 다른 시점을 느낄 수 있을 거다. 그러나 오직 『시뮬라시옹』만으로 영화에 접근한 해석을 보지 못했기에 직접 다뤄봤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시점이라는 믿음 때문이기도 했다. 영화에 나오는 모든 요소는 『시뮬라시옹』의 이론으로 접근, 해석이 가능하다.


앞서 5개의 분석문에서 시뮬라시옹, 시뮬라크르에 대한 이론과 영화에서 표현하고 있는 방법을 다뤘다. 초점은 두 인물(네오와 스미스)에게 맞춰져 있지만, 사실은 이 영화 전체가 시뮬라시옹, 시뮬라크르 그 자체를 나타내고 있다.



네오는 스미스와의 전투 이후에 목숨을 잃는다. 스미스가 덮어졌을 때, 이미 그 목숨을 다했다. 복제된 이미지, 시뮬라크르에 의해 살해 당한 원형이다. 설계자는 네오를 데려간다. 네오 그 자체가 매트릭스 오류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설계자는 그를 분석하여 코드를 얻기 위함이다. 설계자는 이 코드를 분석해서 다시금 완벽에 가까운 매트릭스, 진짜 보다 더 진짜 같은 세상을 구현할 것이다.



7번째 매트릭스가 재구성된다. 



- 위험한 게임을 했더군.

- 변화는 늘 위험하지.

- 이 평화가 얼마나 계속 될 것 같나.

- 가능한 오래.......

- 저들은 어쩔 거야.

- 누구?

- 갇혀있는 사람들.

- 자유를 줘야지.

-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인간?[각주:1]


영화 마지막에 설계자(아키텍트)와 오라클의 대화를 통해 매트릭스가 내린 결말을 추측할 수 있다. 오라클이 말하는 '갇혀있는 사람들'이란 배양기 속에 있는 인류 전부를 뜻한다. 설계자를 비롯한 이미지들이 갖는 아주 획일된 공통점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는 것이다. 베인의 몸 속으로 들어가 트리니티를 인질로 잡았던 스미스도 네오가 총을 내려놓고 돌아섰다고 해서 트리니티를 죽이지 않는다. (물론, 함선 아래층으로 던져버리기는 하지만) 트리니티가 머리에 총구를 겨눴던 메로빈지언 역시, 거짓으로 약속하고 트리니티와 모피어스 일행을 죽일 수도 있었는데- 혹은 트레인맨을 이용에 이들 모두를 중간 지대에 가둬버린다던가- 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그런 짓을 일절 하지 않는다.


오히려 거짓과 배신은 인간들의 전유물이다. 첫 번 째 시리즈에서 모피어스 일행을 배신한 사이퍼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설계자는 갇혀있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준다는 약속은 지킬 것이다. 배양기에 있는 인간들을 모두 풀어줄 것이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현실, 자신들이 살던 세계, 매트릭스는 기계에 의해 만들어진 허상에 불과하다는 사실, 진실을 받아드릴 수 있을까? 설계자는 인간의 면모를 어느 정도 파악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자유를 준다한들 돌아오리라고 계산했다. 때문에 '이 평화가 얼마나 계속 될 것 같나'라는 말을 하고, 오라클 역시 대부분의 인간들은 진짜 보다 진짜 같은 매트릭스의 세계로 돌아가리라 생각하고 있다.



- 이렇게 될 줄 아셨죠?

- 아냐, 몰랐어. 하지만 믿었지. 믿었을 뿐이야.[각주:2]


시리즈 내내 오라클은 선택과 믿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기서 선택과 믿음은 의도(이유)와 희망과 직결된다. 어떤 선택을 했을 때 '왜 그 선택을 했는가'라는 질문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달성될 목적이 아니라 달성 여부와는 상관 없는 희망일 때, 절대적 다름이 될 수 있다. 오라클은 인간으로 하여금, 절대적 다름에 닿을 수 있도록 희망을 심어주는 존재다. 본인 스스로도 희망을 품은 채 말이다.



매트릭스, 가상 세계는 건실하다. 오히려 전보다 더 진짜 같이 구현된다. 자유를 찾았다고 해도 인간들은 다시 이 거짓된 세계로 들어온다. 결국 인간들은 거짓된 세계에서, 무엇인 진실인지 알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에게 오라클, 희망이 존재하는 한 언젠가는 다시 진실을 꿰뚫는 네오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PS. 여기까지 허접한 분석문을 읽어주신 분들이 계시다면, 감사드립니다. 워낙 어려운 내용이라서 쉽게 쓴다고 했는데도, 읽기 어려운 문장으로 쓰고 말았습니다. 혹여 분석을 읽고 이해가 가지 않으시거나, 매트릭스에 대해 궁금한 점이 더 있으시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제 시점으로 해석한 내용을 달아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 영화 『매트릭스 3』 中 [본문으로]
  2. 위와 같음 [본문으로]

영화 『매트릭스』분석 : 5. 시뮬라크르, 그리고 종말

시뮬라크르가 끝에 이르면 더 이상 복제할 대상이 없어진다.


하나의 원형에서 시작된 이미지가 끊임없이 생성되어, 결국 원형마저 뒤덮는다. 이후 복제된 이미지는 복제할 대상을 찾지 못한다. 어디에도 원형은 남아있지 않다. 세상이 시뮬라크르 그 자체가 되는 셈이다.


장 보드리야르는 실재가 실재하는 것이 아닌 파생실재로 전환되는 작업이 시뮬라시옹이고, 모든 실재의 인위적 대체물이 '시뮬라크르'이며, 현대인은 가상실재인 시뮬라크르의 미혹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처럼 가상실재가 실재를 지배하고 대체하여 재현과 실재의 관계가 역전됨으로써 더 이상 모사할 실재가 없어진 시뮬라크르들은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하이퍼리얼리티(극사실)를 생산해낸다는 이론을 이어나갔다.[각주:1]


매트릭스는 이 과정을 성실하게 이행한 결과물이다. 과거 인간들이 지배했던 세계는 무한히 복제되는 기계들에 의해서 멸망을 맞이했다. 이후 인간의 시대는 종말을 맞이하고 기계, 설계자는 인간들의 시대를 재현하는 매트릭스를 구현한다.


원형 → 시뮬라크르 → 극사실(거짓된 원형)


그러나 명확하게 설계자는 매트릭스를 극사실, 그러니까 진짜 보다 더 진짜 같은 세계로 만들지는 못했다. 설계자의 목적은 극사실의 완성에 있다. 때문에 인간을 살려두는 것이다. 아직 완벽한 복제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원형이 남아있는 것이다. 설계자의 매트릭스가 극사실로서 완성된다면, 그 때 인간이 모두 사라지게 될 것으로 볼 수 있다.




- 시작이 있는 것엔, 끝도 있지. 끝이 가까웠어. 어둠이 번지고 있어. 죽음이 보여. 그를 막을 자는 자네뿐이야.

- 스미스?

- 그는 곧 이 세계를 없앨 힘을 갖게 돼. 허나 거기서 안 멈추고 모든 걸 파멸시킬 거야.

- 그는 누구죠?

- 자네지. 자네의 대칭점. 스스로 균형을 맞추려는 방정식.

- 그를 못 막으면?

- 어느 쪽이든...... 전쟁은 결국 끝날 거야. 두 세계의 미래가 둘의 손에 달렸어. 자네나, 스미스.[각주:2]




네오와 스미스, 대칭되는 두 인물이 모두 오라클을 찾아온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가정했던 두 인물의 관계를 확신할 수 있게 된다.


오라클은 네오에게 스미스가 '그는 너다'라고 얘기한다. 네오의 원형으로 인해 탄생한 복제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대사다. 또한 두 인물의 대칭을 보여주기 위해 앵글은 방향을 비튼다. 네오와 오라클이 있는 위치와 스미스와 오라클이 있는 위치는 정반대다. 




그리고 스미스는 마침내 오라클마저 복제하기에 이른다.


『매트릭스 2 : 리로디드』에서 설계자는 오라클을 자신보다 완벽하지 않은 지능이라고 말한다. 그 결정적인 차이는 직관력에 있다. 직관은 감각, 경험, 연상, 판단, 추리 따위의 사유를 거치지 않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것을 의미한다. 오라클은 매트릭스에 존재하는 인간, 프로그램을 단순한 직관으로 파악한다. 딱히 머리를 쓰는 게 아니라, 그저 보는 것만으로 알 수 있다. 오라클은 그런 존재다.


때문에 프랑스인, 메로빈지언이 오라클의 눈을 원했다. 오라클의 눈만 있다면 직관력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에. 스미스가 오라클을 복제하고, 그녀의 눈을 차지하고 선글라스를 벗은 채 웃는 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매트릭스를 파악할 수 있는 직관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제 스미스는 매트릭스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매트릭스 자체를 위협하는 존재가 완성된 것이다.


오랜 생각 끝에 네오는 시온을 구하기 위해, 전쟁을 끝내기 위해 가야할 곳이 어딘지 확신하게 된다. 중간 지대에서 보였던 곳. 의식을 집중하면 눈에 그려지는 곳.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곳. 기계의 도시로 향하고자 한다. 


다른 선원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선원들에게 있어서 실재하는 것, 원형은 시온이기 때문에 당연히 시온으로 향하고자 한다. 선원들에게 기계의 도시는 피하고 싶은 장소일 뿐, 어떠한 진실로 받아드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기계 도시가 인간들이 당면한 현실이고, 시온이야말로 설계자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거짓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네오는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계 도시로 가고자 한다.



- 뭘 원하나?

- 네가 원하는 것. 그래, 이제 알겠나? 자세히 봐. 썩은 눈알 속에 숨은 네 적이 안 보이나?

- 아니야!

- 부인하지 마, 미스터 앤더슨.

- 말도 안 돼.

- 네가 어딜 가든, 난 찾을 수 있어.

- 불가능해.......

- 가능해. 이건 필연이야. 잘 가, 미스터 앤더슨.[각주:3]


『매트릭스 2 : 리로디드』에서 스미스는 베인이라는 인물을 복제한 상태로 통신을 통해 현실의 베인 속으로 들어갔다. 네오를 살해하려 시도했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베인인 척 살아가며 네오를 죽일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다. 스미스는 함선에 숨어들어 네오를 죽일 기회를 맞이한다.



둘의 전투에서 네오는 눈을 잃게 된다. 그러나 눈이 보이지 않게 됨으로써 네오는 더욱 근원에 가까워진다.



- 네가 보여.[각주:4]


네오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거짓이다. 모두 설계자에 의해서 통제되고 있는 세상이다. 눈을 잃으면서 네오는 거짓된, 복제된, 이미지에 현혹되지 않는다. 오히려 진실을 마주하는 능력을 얻게 된다.




네오는 베인의 모습은 보지 못하지만, 안에 존재하고 있는 스미스의 모습은 볼 수 있다.


거짓된 껍데기가 아니라 직관적으로 대상을 파악하게 된다. 네오는 현실에서도 원형으로서의, '그 The One'으로서의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마치 오라클과 같은 힘을 갖게 된 것이다.



트리니티의 목숨과 맞바꾸어 네오는 기계의 도시에 도착한다.


보이는 건 차가운 세상이지만, 네오의 시선에는 마치 태양처럼 빛나는 세상으로 보인다. 네오는 설계자를 만나 스미스를 제거해주는 대가로 시온의 평화를 제안한다. 설계자는 이 제안을 수락한다.


매트릭스는 통제 프로그램에 불과하고 설계자가 포기한다면 완전히 제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설계자는 네오의 거래에 응한다. 그 이유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설계자의 목적이 완벽한 극사실의 구현에 있기 때문이다. 설계자는 인간을 에너지원으로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 이성, 감각, 연상, 추리 따위로 파악하고자 한다. 그래야만 진짜 보다 더 진짜 같은 세상을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인간이 사라지면 설계자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목적을 잃게 된다.


목적을 잃은 이미지는 어떻게 될까?




매트릭스의 세계로 접속한 네오는 스미스가 정복한 세상을 마주한다. 세상은 오직 스미스로만 이루어져 있다. 수많은 복제, 이미지, 시뮬라크르로 뒤덮인 세상. 이건 원형(네오)에 대한 살상력이 극대화된 세상이다. 설계자가 극사실화 하고 싶은 대상이 '인간들의 세상'이라면, 스미스가 극사실화 하고 싶은 대상은 '네오'다.


스미스가 했던 행동은 모두 네오를 따라가기 위한 것이었다. 네오가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다른 프로그램을 덮어썼다. 네오를 이해하기 위해서 더 많은 프로그램을 복제했다. 그리고 자신이 네오 보다 더 네오 같은 존재가 되기 위해서, 끝내는 네오를 죽이고, 네오 그 자체를 복제하기를 원하는 거다.


수많은 스미스 중, 단 한 명의 스미스가 걸어나온다. 이 스미스는 오라클을 덮어쓴 복제다. 스미스 중에서 가장 네오와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에 그 혼자 네오를 맞이한다. 



- 미스터 앤더슨, 돌아온 걸 환영하네. 보고 싶었어. 내 실력 잘 봤나?

- 오늘 밤이면 끝나.

- 알아, 늘 그래왔지. 내 분신들도 기대에 들떠있어. 내가 승리할 걸 알고 있으니까.[각주:5]



전투신이 나오기 때문에 잠시 연출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매트릭스는 연출에서 많은 작품들을 따라했다. 


감독인 워쇼스키 형제(남매)가 일부러 이런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격투 액션에서는 중국 액션 영화의 모션을 따라했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션은 히어로(예를 들면 슈퍼맨)의 모션을, 거대한 폭발이나 강한 힘이 작용하는 장면은 블록버스터 재난 영화를 모방했다.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스스로 이전 시리즈의 연출을 모방하기도 한다. 감독은 영화의 시나리오 뿐만 아니라 영화 자체에 시뮬라시옹 이론을 녹여내려 한 것이다. (정작 시뮬라시옹 이론을 제시한 장 보드리야르는 '누구도 이 이론을 작품이나 다른 것으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 왜 이러는 건가, 미스터 앤더슨. 대체 왜? 이유가 뭐야? 왜 포기하지 않지? 왜 계속 싸우는 거야? 자신까지 희생하며 뭘 지키겠다는 거야? 그게 뭐야? 뭔지는 알고 있나? 자유? 진실? 평화? 사랑? 다 환상이고 망상이야! 의미 없는 자신의 존재를 합리화시키려는 나약한 몸부림이지. 모두 조작된 거야! 매트릭스처럼 말이야! 물론, 사랑놀음은 인간의 전유물이지만...... 이젠 너도 깨달아야 돼. 넌 못 이겨 헛수고 하지 마! 왜, 대체 왜 포기하지 않는 거야!

- 그게 내 선택이야.[각주:6]


둘은 막상막하로 싸우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스미스가 우세해진다. 그러나 네오는 포기하지 않는다. 다시 일어나 스미스와 싸우기를 반복한다. 스미스는 그런 네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직관력을 얻었다 한들 스미스는 복제, 이미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여태까지 보아왔던 복제, 이미지는 목적을 가진다. 그리고 『매트릭스 2 : 리로디드』에서 스미스는 이미 목적에 대해 이야기한 바가 있다. 복제, 이미지에게는 단 하나의 목적, 극사실화에 대한 목적이 존재한다. 진짜 보다 더 진짜다워지려 하는 목적.


그러나 원형에게는 뚜렷한 목적이 없다. 목적이라고 할 게 존재하기는 하지만 뚜렷하지는 않다. 확실하지 않다. 달성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 선다. 선택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니다. 나오기를 희망하는 거다. 때문에 선택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선택을 하는 이유가 중요하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어떤 바람을 가지고 선택을 했느냐. 『매트릭스 2 : 리로디드』에서 오라클이 했던 말은 이런 뜻이었다.



- 내가 받을 걸 알고 있나요?

- 그걸 모르면 오라클이 아니지.

- 벌써 알고 있다면 난 어떻게 선택을 해야 하죠?

- 넌 선택을 하러 온 게 아니야. 선택은 이미 했지. 선택을 한 이유를 알아야 해.[각주:7]


달성 여부의 목적성을 지닌 스미스로서는 그런 네오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하고 초월해야 할 대상(원형)인데, 이해하지 못한다. 스미스의 초조함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다. 



- 잠깐! 이걸 본 적 있어. 이거야, 이게 끝이야! 그래, 넌 그렇게 누워있었어. 그리고 난...... 여기 서서, 이렇게 말하기로 돼 있지. 이렇게...... 시작이 있는 것엔 끝도 있다, 네오. ......뭐, 내가 방금 뭐라고 했지? 아냐, 이건 아냐. 말도 안 돼! ......다가오지 마!

- 뭘 두려워하나?

- 이건 함정이야!

- 네 말이 맞았어. 넌 늘 옳았지. 이건 필연이야.[각주:8]


여기서 스미스가 본 건 오라클의 예언이 아니다. 오라클은 그저 직관력이 있는 프로그램일 뿐, 직접적으로 미래를 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매트릭스 2 : 리로디드』에서 트리니티가 떨어지는 꿈은 보이는데, 결과가 보이지 않느냐는 질문에 오라클은 이렇게 대답한다.



- 이해가 안 되는 선택 이후는 볼 수 없거든.[각주:9]


방금 전까지 죽음을 불사하고 싸울 것 같던 네오는 더 이상 싸우지 않는다. 순순히 패배를 받아드린다. 이미지가 원형을 살해하는 순간을, 스스로 받아드린다. 이해할 수 없는 선택. 오라클의 직관력을 지녔지만, 스미스는 네오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한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한다. 그러나 자신의 목적은 확고하기 때문에, 네오의 몸에 손을 꽂는다.



네오는 순순히 자신의 선택을 받아드린다. 

스미스는 목적을 달성한다.


그러나 이 순간 실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복제된 이미지, 단일한 시뮬라크르만 존재한다. 모두 복제에 불과하다. 스미스는 네오 보다 더 네오 같은 존재가 되었지만, 네오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다. 존재의 의미를 상실한 스미스는 소멸하게 된다.




스미스는 '이건 불공평해. This isn't fair.'라고 신음한다. 네오는 홀로 존재할 수 있는데, 자신은 그럴 수 없음을 탄식하는 대사라고 할 수 있다. 순전히 자신의 착각인데,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네오와 스미스는 항상 비슷하게 성장하고 힘을 키워왔다. 이 둘은 빛과 그림자와 같다. 어느 하나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절대적 근원자는 없으며 오히려 절대적 다름만이 있다'




복제된 이미지로 가득 차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하는 세계.


원형을 죽이고 스스로의 목적과 의미를 상실하게 되는 시뮬라크르.


이것이 영화 매트릭스의 결말이다.


  1. 네이버 두산백과 참조 [본문으로]
  2. 영화 『매트릭스 3』 中 [본문으로]
  3. 위와 같음 [본문으로]
  4. 위와 같음 [본문으로]
  5. 위와 같음 [본문으로]
  6. 위와 같음 [본문으로]
  7. 영화 『매트릭스 2』 中 [본문으로]
  8. 영화 『매트릭스 3』 中 [본문으로]
  9. 영화 『매트릭스 2』 中 [본문으로]

영화 『매트릭스』분석 : 4. 거짓된 원형(原形)


- 대답해줄 수가 없네요. 나도 내가 어떻게 여기 왔는지.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지만.......

- 여긴 우리 세계와, 당신 세계의 중간 지대죠.[각주:1]


3부는 네오가 현실과 매트릭스의 중간 지대에 갇혀있는 시점에서 시작된다. 이 중간 지대는 프랑스인, 메로빈지언의 부하 트레인맨이 프로그램을 밀거래할 때 사용하는 통로로 만들어둔 곳이다.


매트릭스에는 인간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세계를 구성하고 관리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존재한다. 그 중 일부는 스스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메로빈지언이나 키메이커 같은 인물이 프로그래머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크게 생각하면 매트릭스라는 프로그램을 만든 것 역시 설계자(아키텍트)라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이상하게 여길 일은 아니다.



- 꼭 기차를 타야 해.

- 안 되지, 안 돼. 메로빈지언이 허락하면 타. 내 생각엔 기차 타긴 영영 힘들 걸?

- 당신을 해치기는 싫어.

- 못 알아 듣는군. 여긴 내가 창조한 곳이야. 여기선 내가 곧 법이고, 진리야. 여기서는 내가 신이야![각주:2]


중간 지대에서 네오는 특별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트레인맨에게 당한다. 이 장소에 한하여 트레인맨은 네오, 혹은 설계자와 동급의 힘을 지닌다. 중간 지대라고 했지만, 이 장소는 그저 매트릭스의 통제권 밖에 존재하는 저장소에 불과하다. 매트릭스 내의 삭제를 피하기 위한 저장소. 삭제 될 프로그램은 일시적으 이 곳으로 와 삭제를 회피한다. 매트릭스는 프로그램이 사라졌음을 감지하고 삭제를 완료했다고 생각한다. 이 시점에서 삭제 명령은 완수되어 사라진다. 그 후에 열차를 타고 다시 매트릭스로 회귀하면, 프로그램은 매트릭스의 삭제 명령 밖에 존재하게 된다.



『매트릭스 2 : 리로디드』에서 네오는 프로그래머들이 드나드는 뒷문을 본 적이 있다. 네오는 이를 이용해서 설계자를 만났다. 이 장소로 들어왔을 때, 함선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모피어스 일행은 네오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 매트릭스 내에서도 그 모습을 감췄다는 뜻이다. 분명히 매트릭스에 존재하는 장소지만 외부에서는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없으며, 코드를 지니지 않으면 드나들 수 없는 장소다.


트레인맨이 만든 중간 지대도 이와 비슷한 장소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인간이 들어올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그렇다면 네오는 어떻게 접속도 하지 않은 채 중간 지대에 들어오게 됐을까?



네오는 열차가 지나간 통로를 통해서 중간 지대를 빠져나려 하지만, 반대편 통로로 다시 돌아올 뿐이다. 네오는 자력으로 이 곳을 빠져나갈 수 없다. 



네오는 자기 스스로 이 곳에 들어왔으니, 빠져나가는 것도 자신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의식을 집중하는 그의 머리속에 기계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저 이미지는 하나의 장소이며, 네오가 도달해야 하는 곳이다. 네오는 이미 그 곳을 알고 있다. 모든 시작이 그 곳에서 이뤄졌고, 끝이 맺어질 장소이기도 하다.


모피어스와 트리니티에 의해 중간 지대에서 빠져나온 네오는 해답을 얻기 위해서,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오라클을 찾는다.



- 접속 하지 않고 내가 어떻게 역(중간 지대)에 간 거죠? 센티넬은 어떻게 처치했고? 내게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

- '그(The One)'의 힘은 현실을 초월해. 그 근원에 다다를 만큼.......

- 근원?

- 소스. 센티넬을 처치할 때 느꼈지만, 자네는 받아드릴 준비가 안 됐어. 죽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일 거야.[각주:3]


우리는 여태까지 '그'의 힘이 매트릭스 내에 국한되었다고 생각했다. 매트릭스가 가상의 세계라는 진실을 인지하고만 있다면, 통제에서 벗어나 규격 외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매트릭스 1』에서 다뤘던 내용이다. 그러나 『매트릭스 2 : 리로디드』에서 봤듯이 매트릭스는 가상 세계임은 확실하지만, 진실은 아니었다. 참된 진실은 매트릭스 너머 시온마저도 설계자의 통제 아래에 있다는 사실이다. 앞 선 다섯 명의 네오는 이 사실을 깨닫자마자 확실하게 인류를 보존하는 길을 선택했고, 현재 네오는 트리니티를 구하는 선택을 했다.


우리는 『매트릭스 1』에서 원형이 탄생되었다고 믿었지만, 이는 이미 일어났던 일에 불과하다. 『매트릭스 2 : 리로디드』에서 네오가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하기 전까지 그는 앞 선 다섯 명의 반복, 모방, 복제에 지나지 않았다. 트리니티를 구하는 그 순간, 비로소 진정한 원형이 된 것이다.


오라클은 '그'가 근원에 다다를수록 현실의 초월하는 힘을 지니게 된다고 말했다. 네오가 센티넬을 느끼고 처치할 수 있었던 건, 전보다 근원에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통해서 네오는 직접적으로 근원, 소스를 접했지만 받아드리지는 못했다. 아직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근원, 소스를 받아드리기 위해서는 우선 이해가 필요하다. 매트릭스는 물론이고 시온마저도 거짓, 복제, 모방이라는 사실에 대한 이해. 여태까지 모피어스가 믿어왔던 예언, 구원자, 네오에 대한 것까지 모두 거짓이었다는 이해. 여태 자기 자신이 스스로 걸어왔다고 믿어왔던 길이, 사실은 설계자와 오라클에 의해 정해진 길이었다는 이해. 인간은 기계에게 지배 당하고, 통제 받고, 잠들어 있다는 진실에 대한 이해. 무엇보다 네오마저도 반복 속에서 만들어진 모방에 불과하다는 이해가 필요하다.


네오는 『매트릭스 3 : 레볼루션』에 이르러서 이 모든 사실을 이해한다. 그리고 『매트릭스 1』에서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누구도 하지 않았던 선택을 통해, 다시금 원형으로 거듭나게 된다.





  1. 영화 『매트릭스 3』 中 [본문으로]
  2. 위와 같음 [본문으로]
  3. 위와 같음 [본문으로]

영화 『매트릭스』분석 : 3. 진실을 마주하고

시뮬라크르란 결코 진실을 감추는 것이 아니다. 진실이야말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숨긴다. 시뮬라크르는 참된 것이다.[각주:1] 영화의 배경이 되는 '매트릭스'는 참혹한 진실, 기계에 의해 인간이 건전지로 전락해버린 비참한 현실이다. '매트릭스'는 '과거 인간의 시대'의 시뮬라크르인 동시에 인간이 기계의 건전지로 사용되는 현실, 진실을 나타낸다.


우리가 그토록 궁금해하던 매트릭스의 진실은 『매트릭스 2 : 리로디드』의 후반부에서 설계자(Architect)와 네오의 대화를 통해 밝혀진다.



키메이커에게 소스로 들어가는 열쇠를 건네 받은 네오는 문을 열어 소스로 들어간다. 소스는 매트릭스의 근원이다. 네오는 그 안에서 설계자와 마주하고, 숨겨져있던 진실을 마주한다.



- 누구죠?

- 나는 설계자(아키텍트). 매트릭스의 창조자지. 자네를 기다렸네. 질문이 많군. 의식이 바뀌긴 했지만, 자네는 인간이야. 따라서 내 대답을 이해 못할 수도 있을 거야. 자네의 첫 질문은 적절하기는 해도, 가장 무의미한 질문이기도 하네.

- 내가 왜 여기 있죠?

- 자네의 삶은 매트릭스의 불균형한 방정식의 나머지의 합집합이야. 자넨 내가 수학적 정도의 조화인 매트릭스에서 없애지 못한 우발적 변종이지. 해결하진 못했지만, 예상이나 통제의 범위는 안 벗어났기 때문에 자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거지.

- 내 질문엔 답을 안 했소.

- 맞아. 흥미롭군. 자네가 가장 빨랐어.

- (모니터 속 네오가) 뭐라고? 또 있었어? 몇 명이나?

- 매트릭스는 오랫동안 존재했다. 난 하나의 완벽한 변종의 탄생을 기준으로 하는데, 이게 여섯 번 째 버전이지.

- (모니터 속 네오가) 5명이 더 있었다고? 거짓말! 개소리야!

- 둘 중 하나군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거나. 아무도 몰랐거나.

- 그렇지. 자네의 추측대로 변종은 조직의 산물이야. 가장 단순한 방정식에서도 변이를 일으키지.

- (모니터 속 네오가) 날 통제하지는 못해! 없애버리겠어! 죽여버리겠어!

- 선택. 문제는 선택이군요.[각주:2]


둘의 대화에서 밝혀지는 사실을 하나 씩 확인해보자. 우선 이 대화를 통해서 매트릭스는 여러 버전이 존재했으며, 그 기준은 네오와 같은 변종의 탄생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섯 번 째 버전이라는 건, 과거 다섯 명의 네오가 존재했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피어스를 비롯한 모든 인간들은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이 사실을 알았던 존재는 다섯 번 째 네오 뿐이었다.


'네오'라는 존재는 매트릭스 내에서 설계자가 미처 잡아내지 못한 오류의 집합체다. 우연의 극대화, 바로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설계자의 예상이나 통제를 완벽하게 벗어나지는 못했다. 이미 과거에 다섯 명의 네오가 바로 이 자리로 찾아왔었고, 현재에 이르러 여섯 번 째 네오가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요원을 능가하는 신체 능력, 매트릭스 내의 규칙을 거부하는 능력, 총알을 멈추거나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네오가 통제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뜻이다. 모두 설계자의 예상과 통제 속에 있었다.




- 최초의 매트릭스는 완전했지. 완벽하고, 탁월했어. 그런데 어이없이 실패하고 말았네.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인간에게 내재한 불완전성 때문이었지. 다음엔 인간 역사를 근거로 인간의 괴팍한 면들을 더 정확히 반영했어. 그러나 그 역시 실패하고 말았지. 나는 나보다 낮은 지능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네. 적어도 완벽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지능. 그래서 직관력이 있는 프로그램을 선택한 거야. 원래는 인간 정신의 단면들을 연구하려고 만들었지. 내가 매트릭스의 아버지라면, 그녀는 매트릭스의 어머니야.

- 오라클!

- 제발....... 그녀는 선택권만 주면 99%의 인간이 프로그램을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알아냈지. 거의 무의식적인 수준에서 인식되는 선택권이라도 말이야. 효과는 있었지만, 근본적인 결함 때문에 내버려두면 시스템을 위협할 수도 있는 전혀 상반되는 변종이 생겨났지. 따라서 프로그램을 거부한 이들은 소수이기는 해도, 재앙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거야.

- 시온 말이군요.

- 네가 온 이유는 시온이 붕괴될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모조리 제거되지.

- 웃기는 소리. (모니터 속 네오도 함께)

- 가장 예측이 쉬운 반응이 부정이지. 하지만 잘 들어라. 우린 시온을 다섯 번이나 파괴했고, 그 일은 점점 쉬워지고 있다.[각주:3]


오라클은 두 번 째 매트릭스 실패 후, 설계자가 만들어낸 프로그램이다. 대화에서 네오가 그녀를 '오라클(Oracle)'이라 부르자 설계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제발(Please)'라고 말한다. 마치, 그녀를 그렇게 부르지 말라는 듯하다. 오라클의 뜻은 '신의 말을 전하는 자, 예언자'로 해석되는데, 이건 어디까지나 매트릭스에 있는 인간들의 시점일 뿐이다. 설계자 입장에서 그녀는 그저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네오가 그녀를 오라클이라 지칭하는 것에 난색을 표한다고 볼 수 있다.




- 너는 소스로 복귀해 네가 가진 코드를 전달하고 초기 프로그램을 입력한 후, 시온을 재건설할 여자 16명과 남자 7명을 매트릭스에서 뽑으면 된다. 이 과정을 따르지 않으면 시스템 충돌이 일어나 매트릭스의 모든 인간이 죽는다. 그럼 시온의 멸망과 함께 인류 전체가 종말을 맞게 되지.

- 그렇겐 못할 텐데. 인간은 당신 에너지원이니까.

- 우리에겐 여러 단계의 생존방법이 있다. 문제는 네가 인류의 멸망을 감당해낼 준비가 됐느냐는 거지. 반응이 아주 흥미롭군. 먼저의 다섯은 모두 비슷한 태도를 보였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 동족에 대한 끝없는 애착을 나타냈거든. 모두 일반적으로 반응했는데 넌 훨씬 더 구체적이야. 사랑 때문인가.

- 트리니티!

- 네 목숨을 자기 것과 바꾸려고 매트릭스에 와 있지.

- 안 돼.

- 마침내 근본적인 결함이 궁극적으로 표출되고, 시작과 끝으로서의 변종이 발현되는 순간이 왔군.[각주:4]


매트릭스가 실패하면 설계자는 그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 오류 코드를 확인하고 프로그램을 리셋시켰다. 동시에 발생한 오류들을 모두 삭제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바이러스나 오류가 발생하면 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보고서를 요청하는 백신 프로그램과 같다. 보고서를 받은 백신은 같은 오류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한다. 


오류 코드의 집합체가 바로 네오이며, 프로그램은 매트릭스다. 삭제시킬 오류들은 시온이 된다. 여태까지 다섯 명의 네오가 존재했고, 다섯 번 시온이 멸망했다. 



- 문이 두 개 있다. 오른쪽은 소스로 가서 시온을 구할 문이고, 왼쪽은 인류를 멸망시키면서 여자에게 갈 문이지. 네 말대로 선택의 문제다. 하지만 우린 이미 결과를 알고 있지 않나? 네 몸에선 벌써 화학반응이 일어나고 논리와 이성을 덮어버릴 감정이 싹트고 있지. 그 감정 때문에 아주 간단한 사실을 잊고 있어. 그 여자는 죽는다. 넌 절대 막을 수 없어.[각주:5]


다섯 번 시온이 멸망했다는 이야기는, 이전 다섯 명의 네오는 오른쪽 문으로 들어갔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네오는 트리니티를 구하기 위해 왼쪽 문을 선택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이전과 다른 네오를 만들어낸다. 첫 번째 분석문에서 절대적인 근원은 존재하지 않고, 절대적인 다름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과거의 다섯 명과 다른 선택을 함으로서, 네오는 새로운 원형으로 탄생한다. 네오는 전혀 새로운 원형이 된다.



- 하! 희망은 인간 본연의 환상이지. 네 가장 강한 무기이자,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하고.

- 다신 날 안 만나는 게 좋을 거요.

- 그럴 일 없네.[각주:6]


설계자는 네오에게 다시 만날 일이 없다고 답했지만, 이후 둘은 다시 만나게 된다. 결과적으로 설계자의 계산(예상이 아니다)이 틀렸다. 이는 네오가 비로소 설계자의 통제를 벗어났다는 뜻이다. 그리고 바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설계자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네오는 트리니티를 구해내는데 성공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죽은 트리니티를 소생 시킨다. 이미 이 순간부터 네오가 설계자의 예상을 뛰어넘고, 통제에서 벗어났음을 알 수 있다.



- 이해할 수 없어. 모든 게 예언대로 됐는데....... '그'가 소스에 가면 전쟁은 끝나야 돼.

- 24시간 안에 끝나요.

- 뭐?

- 대책을 안 세우면 24시간 안에 시온이 멸망해요.

- 뭐?

- 어떻게 알지?

- 내가 들었어.

- 누구한테?

-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내가 믿는다는 거예요.

- 아냐, 예언은.......

- 거짓이에요, 모피어스. 예언은 거짓이에요. 난 아무것도 끝내지 못해요. 모두 통제 시스템일 뿐이에요.

- 믿을 수 없어.

- 방금 말했잖아요. 예언대로 전쟁이 끝났나요? ......미안해요.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분명한 사실이에요.

- 어떡하면 되지?

- 나도 몰라.[각주:7]


네오는 설계자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전하지만, 다들 믿기 어려워 한다. 누구보다 오라클의 예언을 믿었던 모피어스는 끝내 그 사실을 부인하려 한다. 여기까지 우리가 알아낸 사실을 정리해보자.


1. 매트릭스는 과거 인간들의 세상을 본 떠 만든 통제 프로그램이다.

2. 수많은 오류가 매트릭스에서 발생했고, 그 집합체가 바로 네오다.

3. 네오의 출현으로 매트릭스의 버전이 나뉘는데, 영화가 진행되는 시점은 여섯 번 째 버전의 매트릭스다.

4. 인류의 멸망은 네오에게 달려있는 문제다.

5. 앞서 다섯 명의 네오는 인류를 구하는 선택을 했다.

6. 이로 인해 시온은 이미 다섯 번이나 멸망했었다.

7.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혹은 네오만이 알고 있었으나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았다.

8. 현재의 네오는 트리니티를 구하는, 앞선 이들과는 다른 선택을 한다.

9. 결과적으로 네오는 설계자의 예상과 통제를 벗어난, 새로운 원형으로 탄생한다.



네오는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느낀다. 처음 마주하는 상황에서도 폭탄이 날아오는 것을 감지하고, 기계(센티넬)를 느낄 수 있게 됐다. 뿐만 아니라 손짓만으로 기계를 파괴하기까지 한다. 마치 매트릭스 내부에 간섭하는 것과 같은 초능력을 보인다. 이는 네오가 설계자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으며, 보다 더 깊은 곳까지 프로그램에 간섭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진실을 감추기 위한 껍질을 벗겨내고, 감춰졌던 사실을 마주한 네오는 한 층 더 또렷하게 원형의 모습을 띄게 된다.






  1. 『시뮬라시옹』, 장 보드리야르, 민음사, P. 5 [본문으로]
  2. 영화 『매트릭스 2』 中 [본문으로]
  3. 위와 같음 [본문으로]
  4. 위와 같음 [본문으로]
  5. 위와 같음 [본문으로]
  6. 위와 같음 [본문으로]
  7. 위와 같음 [본문으로]

영화 『매트릭스』분석 : 2. 시뮬라시옹(Simulation)의 시작

시뮬라시옹 Simulation은 원형을 복제하는 현상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복제를 '시뮬라크르 Simulacre'라고 한다. 영화에서 참고한 내용은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이지만, 사실 시뮬라크르는 훨씬 오래 전에 제시되었던 철학 개념이다. 그 기원은 고대 그리스까지 올라간다.


시뮬라크르는 원래 플라톤에 의해 정의된 개념이다. 플라톤에 의하면, 사람이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원형인 이데아, 복제물인 현실, 복제의 복제물인 시뮬라크르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현실은 인간의 삶 자체가 복제물이고, 시뮬라크르는 복제물을 다시 복제한 것을 말한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완전한 복제란 있을 수 없다. 사진을 찍을 때, 모델의 겉모습은 사진에 그대로 나타나지만 사진을 찍는 바로 그 순간의 모델의 진짜 모습을 담은 것은 아니다. 사진을 찍는 사건이 일어나는 순간적인 시점에 모델의 마음 속을 스쳐 지나간 수많은 생각·느낌까지 사진에 담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제되면 복제될수록 진짜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진다. 이 때문에 플라톤은 시뮬라크르를 한 순간도 자기 동일로 있을 수 없는 존재, 곧 지금 여기에 실재()하지 않는 것이라 하여 전혀 가치가 없는 것으로 보았다. 시뮬라크르를 정의할 때, 최초의 한 모델에서 시작된 복제가 자꾸 거듭되어 나중에는 최초의 모델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뒤바뀐 복사물을 의미하게 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들뢰즈는 역사적인 큰 사건이 아니라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 즉 순간적이고 지속성과 자기 동일성이 없으면서도 인간의 삶에 변화와 의미를 줄 수 있는 각각의 사건을 시뮬라크로로 규정하고, 여기에 커다란 가치를 부여하였다. 들뢰즈는 이를 '사건의 존재론'으로 설명하는데, 그가 말한 시뮬라크르는 위의 시뮬라크르 개념과 다르다.

들뢰즈가 생각하는 시뮬라크르는 단순한 복제의 복제물이 아니라, 이전의 모델이나 모델을 복제한 복제물과는 전혀 다른 독립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모델의 진짜 모습을 복제하려 하지만, 복제하면 할수록 모델의 모습에서 멀어지는 단순한 복제물과는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들뢰즈의 시뮬라크르는 모델과 같아지려는 것이 아니라, 모델을 뛰어넘어 새로운 자신의 공간을 창조해 가는 역동성과 자기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한 흉내나 가짜(복제물)와는 확연히 구분된다.[각주:1]


장 보드리야르는 시뮬라시옹&시뮬라크르를 현대적으로 해석했지만, 들뢰즈가 말한 '모델과 같아지려는 것이 아니라, 모델을 뛰어넘어 새로운 자신의 공간을 창조해 가는 역동성과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성질은 여전히 지니고 있다.


워쇼스키 형제(남매)는 영화에서 그 성질을 보여주기 위해 '스미스'라는 인물을 설정했다. 네오가 원형이라면, 스미스는 시뮬라시옹이자 시뮬라크르다.




- 네오를 찾고 있다.

- 그런 사람 몰라.

- 전해줄 게 있어. 선물이지. 내게 자유를 줬거든.

- 알았으니까 꺼져![각주:2]



- 누구였지?

- 어떻게 알았어요?

- 이걸 줬어요. 당신이 자유를 줬다고 했어요.[각주:3]



인이어는 요원들이 항상 귀에 꽂고 다니는 물건이며, 통제를 상징한다. 요원은 인이어를 통해 매트릭스 시스템의 통제를 받는다. 스미스가 인이어를 뺐다는 건, 더 이상 시스템의 통제를 받지 않음을 의미한다. 시스템의 통제에서 벗어난 존재라는 점에서 스미스는 네오와 동일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스미스가 네오와 두드러지게 다른 것은 스스로를 복제한다는 사실이다. 스미스는 끊임 없이 스스로를 복제한다. 동일 개체의 재생산이다. 동일 개체는 아니지만, 우리는 이미 재생산을 보았다. 전편에서 네오가 스미스 속으로 들어가 매트릭스 내에 존재하는 자신의 신체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모습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네오와 스미스 모두 자기 스스로를 다시금 만들어내는 재생산을 보여줬지만, 명백한 차이가 존재한다.


네오는 스미스의 안에서부터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탄생한다. 밝은 빛을 발하며 알처럼 껍질(스미스)을 쪼개고 밖으로 나온다. 반대로,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스미스의 재생산은 검은 액체가 대상의 몸을 뒤덮으면서 일어난다. 외부에서부터 시작되는 재생산이다. 이는 눈에 보이는 형체를 따라하는 것에 불과하다. 네오는 안에서부터 밖으로 자기 자신을 형성시키고 표출하는 재생산이고, 스미스는 밖에서부터 자기 자신을 덮어씌우는 재생산이라는 점, 그리고 계속해서 자신을 복제한다는 점에서 둘의 재생산은 차이를 보인다.


결과적으로 네오는 재생산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존재(원형)로 탄생하지만, 스미스는 개체 수를 늘리기만 한다. 그 모습은 암세포와 같다. 이 표현은 이후에도 영화에서 스미스를 묘사할 때 쓰인다.





시온에서 모피어스의 연설이 끝난 후, 사람들은 광란의 파티를 벌인다. 그 모습은 성적으로 묘사될 뿐만 아니라, 네오와 트리니티의 섹스를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섹스는 인간의 번식을 위한 행위이기만, 굉장히 비효율적인 생산 방식이다. 두 사람의 유전자 결합에서 열성(劣性)이 태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지만 동일개체의 동일 증식, 그러니까 스미스처럼 자기 스스로를 계속해서 늘려가는 것에는 어떠한 위험도 지니지 않는다. 열성은 배제하고 우성(優性)이 보장되는 번식(재생산) 방법이다.


공장을 떠올려보자. 수많은 사람이 바느질을 하는 것과 정밀한 기계가 바느질을 하는 것의 차이다. 사람의 바느질은 제각각이며 이따금 실수도 일어날 수 있다. 기계의 바느질은 일정하며 실수를 최소화한다. 이와 같이 효율성을 따졌을 때, 섹스는 비효율적인 생산 방식이다. 


암은 전체적인 유기적 법칙을 고려하지 않고, 기본세포의 무한번식을 지시한다. 동일 증식도 마찬가지이다. 아무것도 더 이상 동일한 것의 연장에, 하나의 유일 모체의 제지 없는 번식에 대항하지 않는다. 전에는 성적인 재생산이 한 유일 모체의 무한 재생산에 대항하였지만, 오늘날은 거꾸로 동일성의 생식 모체를 마침내 분리할 수 있게 되어 개인들의 우연적인 매력을 만들어주었던 차별적인 모든 우연적인 사건들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각주:4]


그렇지만 가장 인간적인 생산 방식이다. 우리는 유전자의 결합, 혹은 충돌로 인해 발생하는 우연으로 보다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 반대로 결함이 있는 존재가 될 가능성도 있지만, 항상 같은 존재로 남아있지는 않는다. 원형과 복제의 탄생, 재생산, 발전은 여기서 차이를 보인다.


 

 탄생

 재생산

 발전

 표현

 원형

 내부에서 발현

 가능성에 기댄 우연

 우연의 극대화

 네오, 인간, 현실

 복제

 외부에서 발현

 위험(우연)을 배제한 복제

 발생하는 위험(우연) 제거

 스미스, 기계, 매트릭스


이와 같은 성질을 통해 우리는 영화 내에 존재하는 원형과 복제(시뮬라크르)를 구분할 수 있다. 이 성질을 인지하고 진행하다 보면 영화 내에서도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어. 네 일부가 내게 덮어씌워졌거나 복사된 건지... 물론, 상관없지. 중요한 건 모든 일엔 이유가 있다는 거야.

- 그 이유가 뭘까?

- 넌 분명히 내 손에 죽었다. 그땐 참 만족스러웠지. 그런데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이 일어나버렸어. 네가 날 파괴한 거야. 그 후 규정에 따라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알았지만, 따르지 않았어. 규정을 어겨서라도 여기 남아야만 했거든. 네 덕에 여기 있게 된 거야. 더 이상 요원도 아니지. 연결도 끊고 일종의 새사람이 된 거야. 너처럼 자유로워졌지.

- 축하해주지.

- 고맙군. 그러나 외형은 속임수고 우리의 존재 이유는 따로 있다. 우리가 여기 있는 건, 실은 자유롭지 못해서야. 이유나 목적은 부정할 수가 없지. 우리는 목적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니까. 목적이 우리를 창조했고, 우리를 연결하고, 우리를 끌어주고, 인도하고, 조종한다. 목적이 우리를 정의하고, 결속시킨다. 우린 너 때문에 존재해. 네가 우리에게 뺏으려던 걸 우리가 뺏기 위해![각주:5]



전에 언급했듯 이미지(복제)는 자기 자신의 모델(실재)을 죽이는 살상력을 가진다. 사과 그림을 그리기 위해 놓여진 사과는 그림이 완성되면 사라지게 된다. 들뢰즈는 시뮬라크르가 복제이면서 실재인 모델을 뛰어넘어, 역동성과 자기정체성을 지닌다고 했다. 스미스가 딱 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전편부터 스미스는 통제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다. 다른 요원들과 달리 임무와는 상관 없는, '매트릭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자기정체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 자기정체성은 위 대화(우리가 여기 있는 건, 실은 자유롭지 못해서야)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여기에 새로운 목적, 욕구, 자기정체성이 정립되는데, 바로 네오의 죽음이다. 


네오의 죽음은 단순히 생명의 끝이 아니라, 스미스 스스로가 원형이 되고자 하는 시뮬라크르의 완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스미스는 네오를 죽이는데(복제하는데) 실패한다. 원형을 죽이는 살상력이 부족한 복제는 어떻게 할까?



더 많은 복제를 한다.



계속되는 복제를 통해서 스미스는 프로그래머들이 사용하는 뒷문까지 들어오게 된다. 이는 뒷문을 사용하는 존재를 덮어썼기(복제) 때문에 얻은 능력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처럼 스미스는 복제를 통해 스스로를 재생산하면서 네오를 죽일 살상력을 키워나간다. 


이 과정을 우리는 시뮬라시옹으로 볼 수 있다.




  1. 네이버 두산백과 참조 [본문으로]
  2. 영화 『매트릭스 2』 中 [본문으로]
  3. 위와 같음 [본문으로]
  4. 『시뮬라시옹』, 장 보드리야르, 민음사, P. 174, 175 [본문으로]
  5. 영화 『매트릭스 2』 中 [본문으로]

영화 『매트릭스』분석 : 1. 원형(原形)의 탄생

원형. Original. 복제, 모방을 낳게 하는 최초의 작품. 


우리는 '최초'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초'라 함은 '첫번째'라는 순서를 나타낸다. 그러나 『시뮬라시옹』은 순환논리에 따른 순서나 질서의 의미는 완전한 허구에 불과하다. 


첫번째는 두번째가 있기 때문에 첫번째가 된다, 즉 두번째 없는 첫번째는 있을 수가 없으며, 첫번째로 존재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첫번째는 첫번째가 되기 위하여 두번째를 미리 상정하여야만 한다. 따라서 첫번째는 두번째 이후에 첫번째가 된다. 결국 첫번째는 두번째 이후에 존재하게 되므로 세번째가 된다. 이와 같이 하게 되면 순서나 질서의 의미는 완전한 허구임이 드러나고, 어떤 하나는 자신 속에 자신을 부정하는 반대 명제를 이미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각주:1] 


두번째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첫번째를 상정할 수 없다. 2등을 할 사람이 있어야만 1등을 지정할 수 있다. 때문에 사실상 1등은 2등이 정해져야 만들어지는 존재이므로 세번째에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근원은 2등인가, 하면 또 아니다. 2등 역시 1등 없이는 존재하지 못한다. 따라서 순환논리는 완전한 허구에 불과하다. 


근원이란 1이면서 2를 내포하고 있어야 한다. 위에서 말했 듯 '어떤 하나는 자신 속에 자신을 부정하는 반대 명제를 이미 가지고 있음'이다. 절대적이고 유일한 근원은 존재하지 않으며, 언제나 자신과 다름을 내포한 근원이 존재한다. 책에서는 '절대적 근원자는 없고 오히려 절대적 다름만이 있다'[각주:2]라고 말하고 있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가장 순수한 원형은 기계들이 지배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리고 이 근원을 부정하는 세계가 바로 가상 세계인 '매트릭스'다. '매트릭스'는 어디에서 왔는가. 바로 '현실'이다. 완벽하게 인간의 의식을 통제하는 이 시스템은 지독하리만큼 똑같은 '현실'을 기반으로 세워진 가상 세계다. 가상이 실제를 삼켜버린, 완벽한 시뮬라크르[각주:3]다. 


이미지에 걸린 문제는 항상 자기자신의 모델인 실재를 죽이는 이미지의 살상력일 것이다.[각주:4] 미술학원에서 실습 때 그리는 사과 따위를 생각해보라. 학생들은 사과의 모습을 따라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문제는 그 이후인데, 이미지가 완성된 다음에 더 이상 필요 없어진 사과는 버려지게 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과의 이미지는 그대로 보존된다. '현실'이 파괴되었다 해도 그 이미지로서 '매트릭스'는 존재할 수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니, 오히려 '현실'이 파괴됨으로 인해서 '매트릭스'가 존재하게 되었다고 해도 좋다.



- 진짜가 아닌가요?

- 진짜가 뭔데? 어떻게 정의를 내리지? 촉각이나 후각, 미각, 시각을 말하는 거라면 '진짜'란 두뇌가 해석하는 전자 신호에 불과해.[각주:5]


처음으로 현실을 마주하게 된 네오는 자신이 여태까지 현실이라고 믿었던 세계가 전부 만들어진 가상이라는 사실을 받아드리지 못한다. 자신이 만지고 마시고 맛보고 본 모든 것들이 '진짜'가 아니다. 모피어스의 말대로 그러한 감각은 뇌에서 해석하는 신호에 불과하다. 눈을 가리고 음료를 마시면 다른 맛을 느끼는 것처럼, 우리의 뇌나 감각은 생각보다 속이기 쉬운 존재다. 영화처럼 고도의 지식을 가진 기계들은 그 허점을 이용해 '매트릭스'를 만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진짜'는 '원형'에 가깝다.


우리 대부분은 뇌의 해석을 의심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를 받아드린다. 누구도 앞에 놓인 것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지 않는다. 액체를 담아서 마실 수 있는 물체가 있다면, 모두가 그 물체를 컵으로 받아드리는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만약 누군가 그 물체에 물을 따라 마시는 걸 본다면, 이후에 그 것을 컵이라 인식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다. 그렇다면 그 물체가 과연 컵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액체를 담아서 마실 수 있는 물체'란 '컵'을 규정하는 하나의 의미다. 컵의 모양은 기호에 따라 결정된다. 손잡이가 있는 것, 없는 것. 주둥이가 큰 것, 작은 것. 기호는 의미보다 더 다양하고, 넓은 범주를 지닌다. 이에 따라 전혀 컵처럼 보이지 않는 물체도 의미만 맞는다면 컵으로 존재할 수 있다. '의미'라는 실제를 통해 '기호'라는 복제품이 존재하게 되는 것으로 본다면, 이 역시 하나의 시뮬라크르라고 할 수 있다.


모피어스가 말하는 '진짜'란 이 가상의 물체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해준 '원형', '근원'이다. 기호가 아니라 의미를 가리키고 있다. 모피어스는 영화에서 현실과 가상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존재로, 일종의 경계선을 나타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모피어스가 네오를 '그'라고 믿는다.



- 매트릭스가 건설 될 때 안에서 태어난 자가 있었지. 그는 원하는 바를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었어. 매트릭스를 보기에 합당하게 바꿀 수 있었지. 그가 최초로 우리를 풀어주고 진실을 가르쳤지. 매트릭스가 존재하는 한, 인류는 자유를 얻지 못해. 그가 죽은 후, 오라클은 그의 재림을 예언했지. 그가 매트릭스를 파멸시키고 전쟁을 종식 시킴으로써 인류를 구원할 거라고. 그래서 우린 평생동안 매트릭스에서 그를 찾았지. 그를 찾았다고 믿었기에 내 할 일을 한 거야.[각주:6]


모피어스는 네오가 예언에 나오는 '그'의 재림이라 믿고 있다.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네오를 매트릭스에서 꺼내왔고, 이후에 오라클에게 데려가게 된다. 그러나 오라클을 만난 네오는 모피어스의 믿음과는 전혀 다른 말을 듣게 된다.



- 좋아. 이제 내가 '흥미롭군. 하지만......'이라고 말해야겠지. 그럼 자네가 할 말은......

- '하지만 뭐요'?

- 하지만 자네는 이미 내가 할 말을 알고 있어.

- 전 '그'가 아니군요.

- 미안하다. 넌 재능이 있지만,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오라클은 마치 이런 상황을 몇 번이나 겪은 것처럼 행동하며, 네오에게 '그'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전한다. 네오는 오라클에게 답을 듣기 전에, 이미 자신은 '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순간에서 네오는 '그'(원형)가 아니다. 이후의 사건들을 통해서 네오는 '그'(원형)로 만들어지게 된다.



- 모피어스는 널 믿어, 네오. 너도, 나도, 그 누구도 모피어스를 설득할 수는 없어. 널 구하기 위해서라면 목숨을 버릴 정도로 그는 눈이 멀었어. 

- 네?

- 넌 선택을 해야 해. 모피어스의 목숨과 네 목숨 중에서 말이야.[각주:7]


동료였던 사이퍼가 이들을 배신하고 요원에게 팔아넘기면서, 모피어스가 요원들에게 끌려가게 된다.


오라클의 말대로, 네오는 다시금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자신과 모피어스의 목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 네오는 트리니티와 함께 모피어스를 구하기로 마음 먹는다.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고 모피어스를 살리기로 선택한 것이다. 네오는 자신이 '그'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목숨을 건 모피어스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건다.



- 네오, 이런 일은 아무도 시도한 적 없어.

- 그래서 성공할 거야.[각주:8]


여기서 트리니티의 대사가 중요하다. '아무도 시도한 적 없는 일'은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일을 말한다. 이게 원형이 된다. 어떤 것을 모방하거나 영향을 받지 않고, 다름으로서 존재하는 행동. 이런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네오는 '그'(원형)가 되어간다.



- 난 여기서 벗어나야 해. 네 머리 속에 내가 나갈 열쇠가 있어. 내 열쇠가... 시온만 파괴되면, 난 여기 있을 필요가 없어. 코드가 필요해. 시온으로 들어가야 해. [각주:9]


네오가 원형으로서 그 구색을 갖추고 있다면, 반대의 스미스는 어떤가.


스미스는 매트릭스의 요원으로서 통제 프로그램이다. 가상 세계에서 벌어지는 이상 현상을 제어하고 통제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컴퓨터로 말하자면 백신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스미스는 자신이 속해있는 매트릭스를 벗어나고자 한다. 그러면서 파괴하기 위해 '시온'으로 가야한다고 말한다.


'시온'은 '매트릭스'와 대비되는 현실 세계, 원형의 성질을 띄고 있다. 앞서 말했던 이미지의 문제점을 떠올려보자. 이미지는 자신의 모델인 실재를 죽이는 살상력을 가진다. 스미스는 '시온'(원형)을 파괴하려는 이미지(복제)인 셈이다. 다른 요원들은 스미스와 같이 '시온'에 광적으로 집착하지 않는다. 그들은 프로그래밍 된 대로 매트릭스의 시스템을 통제할 뿐이다. 이런 점에서 스미스는 다른 요원들과 확실히 차별되는 존재라 할 수 있다.



요원들이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움직이거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실제로 이들이 빠르거나 강한 게 아니다. 매트릭스의 제약을 회피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더욱 철저하게 매트릭스의 통제를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요원들은 매트릭스에서 제한한 수준으로 행동할 수 있을 뿐이다. 이들은 철저하게 자신들에게 걸려있는 제한 내에서만 활동한다.


즉, 요원들은 빠르거나 강한 게 아니라 '총알을 피할 수 있을 정도의 스피드를 낼 수 있다'는 제약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반면, 네오에게는 그런 제약이 없다. 매트릭스의 통제 안에 있으나, 그 통제를 벗어날 수 있다. 네오는 요원과의 전투에서 총알을 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네오가 계속해서 '그'(원형)로 진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네오는 모피어스를 무사히 구출하는데 성공한다. 트리니티와 모피어스를 모두 현실로 피신 시키고, 자신이 빠져나가려는 순간 스미스와 대치하게 된다. 도망칠 수 있는 길이 있지만 네오는 맞서 싸우는 선택을 한다. 



- 네가 죽어가는 걸 즐겁게 지켜보지, 미스터 앤더슨.[각주:10]


전투 중에서 스미스는 네오를 '앤더슨'이라고 부른다. '앤더슨'은 네오가 매트릭스 안에서 불린 이름이다.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앤더슨 = 매트릭스 안에서의 본명 / 네오 = 매트릭스 안에서의 가명


자신이 진짜라고 생각했던 세계. 그곳에서 가졌던 진짜 이름. 모피어스를 만나면서 이 모든 것들이 전복된다. '진짜라고 믿었던 세계'와 '진짜 이름'은 더 이상 진짜가 아닌 것이 된다. 네오는 스미스와의 전투에서 자신이 직면한 진실을 받아들인다.



- 내 이름은...... 네오다![각주:11]


자신의 이름을 네오라고 정의함으로써, 그는 현실을 마주한다. 진짜라고 믿었던 가짜들을 모두 털어버리고, 비로소 진실에 닿는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원형)이 되지는 않았다. 여기까지는 모피어스와 같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있는 존재로의 각성이다.



- 휘게 하려고 생각하지 말아요. 그건 불가능해요. 대신, 진실만을 인식해요.

- 무슨 진실?

- 숟가락이 없다는 진실.

- 숟가락이 없다고?

- 그러면 숟가락이 아닌, 자기 자신이 휘는 거죠.[각주:12]


오라클을 만나러 갔을 때, 네오는 신비한 아이들을 목격한다. 물건을 공중에 띄우거나, 손을 대지 않고 숟가락을 휘게 하는 아이들. 마치 초능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우리는 다시, 이 매트릭스라는 가상 세계가 어디까지나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 보이고 느껴지는 모든 것들은 그저 신호에 불과하다. 숟가락처럼 보이지만, 눈에 보이는 건 숟가락이 아니다. 보다 본질적인 것, 원형을 모방한 복제에 지나지 않는다.


이 사실을 인식하면, 저 숟가락처럼 보이는 복제는 더 이상 숟가락이 아니다. 프로그램 코드에 불과하다. 매트릭스가 전부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네오가 숟가락을 휘게 하는 것은 숟가락의 코드를 해킹한 것과 같다. 나아가 네오가 매트릭스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건, 매트릭스 자체를 해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해킹을 하기 위해서는 진실을 인식해야 한다. 이 세계는 없다는 진실을.



네오는 스미스를 따돌리는데 실패한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스미스의 총에 맞아 쓰러진다. 심박은 완전히 멈추고, 네오는 여기서 죽는다. 매트릭스는 가상의 세계지만, 접속자들은 그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통제를 받고 데미지를 입는다. 



- 진짜가 아니라더니?

- 생각이 진짜로 만들지.

- 매트릭스에서 죽으면, 여기서도 죽나요?

- 정신이 죽으면 몸도 죽어.[각주:13]


이는 반대로 매트릭스에서 아무리 많은 데미지를 받아도, 정신만 굳건하다면 죽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된다. 분명히 네오는 총에 맞아 죽는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앤더슨'이라는 가상의 존재가 죽는 것이다. 오라클의 말대로 아직 '그'(원형)로 각성하기 전의 '앤더슨'(가상의 존재)은, 여기서 죽는다.



트리니티의 키스를 받고 살아나면서 비로소 '그'(원형)로 각성하게 된다.


가상의 존재를 죽임으로써 완전한 원형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이다.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던 가상의 허물을 죽이고, 네오는 이 세계의 진실을 완벽하게 인식하고 있다. 이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거대한 시스템에 지나지 않는다. 네오는 명확한 진실을 바라보게 된다. 때문에 더 이상 매트릭스에 통제를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매트릭스의 질서를 간섭하고, 자기 스스로 조정할 수 있다. 거짓된 세계 속에서 오롯이 홀로 '진실'이 된다.



총알이 날아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총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날아오는 것은 없다. 이 진실을 보는 네오는 총알을 피하는 게 아니라, 아예 멈춰버린다.



프로그램은 일정하게 정해진 패턴에 따라 통제된다. 눈 앞에 보이는 요원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코딩된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는다. 코드가 보이기 때문에 네오는 요원의 공격을 보지도 않고, 한 손으로 막아낸다.



- 어떻게...?

- '그'니까.[각주:14]


이런 네오의 모습을 보면서 모피어스는 자신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한다. 네오가 '그'라고 이야기한다. 정확하게 He is 'the one'. 이라고 말한다. One. 유일한. 이 순간에서 네오는 진정한 '그'(원형)가 되는 순간이다.



네오는 스미스 요원 속으로 침투하여 몸을 빼앗는다. 스미스 요원은 안에서부터 산산조각이 나며 몸을 잃는다. 이는 요원들이 다른 프로그램의 몸을 빼앗는 행위와 비슷하다. 요원들은 매트릭스의 통제를 위해 다른 인간들에게 간섭하여 신체를 빼앗을 수 있다. 이는 매트릭스가 가상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며, 당하는 대상이 가상임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그들 입장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채지도 못하고 벌어지는 일이다.


네오는 반대로 스미스의 몸을 빼앗음으로써 매트릭스 시스템 자체를 부정하고, 파괴한다. 우리는 예술에서 흔히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말한다. 어떤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모방을 해야 한다. 그 모방을 통해서 새로운 것, 원형이 만들어진다. 네오를 원형이라고 본다면, 스미스 요원은 가상 세계의 통제를 위해 '모방된 존재'로 볼 수 있다. 네오는 스스로 그 안에서부터 새롭게 창조된 것이다.




드디어 원형의 탄생이다.










  1. 『시뮬라시옹』, 장 보드리야르, 민음사, P. 26 [본문으로]
  2. 위와 같음 [본문으로]
  3. 시뮬라크르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놓은 인공물을 지칭한다. '매트릭스'에 보여지는 세계는 이미 사라져버린 인간들의 과거이기 때문에, 확실하게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 놨다고 할 수 있다. [본문으로]
  4. 『시뮬라시옹』, 장 보드리야르, 민음사, P. 25 [본문으로]
  5. 영화 『매트릭스』 中 [본문으로]
  6. 위와 같음 [본문으로]
  7. 위와 같음 [본문으로]
  8. 위와 같음 [본문으로]
  9. 위와 같음 [본문으로]
  10. 위와 같음 [본문으로]
  11. 위와 같음 [본문으로]
  12. 위와 같음 [본문으로]
  13. 위와 같음 [본문으로]
  14. 위와 같음 [본문으로]

영화 『매트릭스』분석 : 들어가며



1999년에 사람들에게 많은 충격을 안겨준 영화가 한 편 등장한다. 


이 영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사실은 기계에 의해 조작된 '가상의 세계'라고 말한다. 영화관을 나오는 사람들 모두 그럴 듯한 이야기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의심을 하게 된다. 단지, 눈만 즐거운 SF액션 영화였다면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도 못했을 거다. 화려한 액션 뒤에는 훌륭한 연출이 있으며, 그 안에는 '진짜'와 '가짜', 원형(原形)과 모방(模倣)에 대한 깊은 철학적 사고를 품고 있다. 때문에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명작으로 남아있다. 


이 영화가 바로 『매트릭스』 시리즈다.





분석에 들어가기에 앞서, 분석의 주제와 방향을 확실하게 정하고자 한다.


분석은 개인의 견해에 불과하다. 옳고 그름은 중요하지 않다. 수학 문제처럼 답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당연한 이야기다. 그렇다면 분석문을 읽을 때 가장 중요시해야 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바로 내용이 얼만큼 논리적인가, 비논리적인가를 따지는 일이다. 내용이 논리적이었다면 수긍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전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매트릭스』 시리즈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분석을 했고, 이 말은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필자가 보려는 시선도 그리 다르지는 않다.


이전에 『시뮬라시옹』에 대해 언급해야 한다. 이 이야기를 하지 않고서는 분석을 진행할 수 없다. '시뮬라시옹'이란 '시뮬라크르 하기' 혹은 '시뮬라크르 하다'라는 동사적 의미로 쓰인다. '시뮬라크르'란 '진짜 보다 더 진짜 같은 복제'를 의미한다. 『매트릭스』는 이 이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기 때문에, 시뮬라시옹과 시뮬라크르를 빼놓고는 영화를 이야기할 수 없다.


감독을 맡은 워쇼스키 형제(지금은 남매)는 주연 배우들 모두에게 『시뮬라시옹』 책을 나눠주었고, 그들 모두가 책을 읽고 내용을 숙지하도록 요구했다. 그러니 분석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 역시 『시뮬라시옹』을 함께 펼쳐봐야 하는 것이다. 이 책에 대해서는 이전에 리뷰를 한 적이 있다. 궁금하다면 여기를 참고하길 바란다.


시뮬라시옹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원형'과 '복제'에 대해 구분을 짓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 이 영화에서 '원형'과 '복제'를 상징하는 두 인물을 중심으로 분석을 하도록 하겠다.




'원형'을 나타내는 인물은 주인공 '네오 NEO'다.


이름에서부터 자신이 원형이라는 걸 알리고 있는데, 영어 슬펠링 NEO를 거꾸로 쓰면 OEN이 된다. 하나. 수많은 것들 중 오직 하나로 존재하는 것. 원형. 이름 뿐만 아니라 영화 곳곳에서 자신이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 여럿 있다. 이는 본문에서 하나 씩 살펴보도록 하자.




'복제'를 나타내는 인물 전직 요원 '스미스'다.


스미스는 두 번째 시리즈인 『매트릭스 2 : 리로리드』에서부터 다른 프로그램이나 인격체를 자신의 모습으로 강제 복제 시키는 능력을 보여준다. 이 행동만 봐도 그가 '복제'의 대표적인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앞으로 진행될 본문에서는 이 두 인물을 중심으로 영화에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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