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7.11.08 논술 학원 선생하면서 학부모들에게 많이 들었던 질문 Q&A
  2. 2017.10.30 성인 남성지 비교 분석, 제 5장 [ 마치며 ]
  3. 2017.10.25 시, 그리고 나의 첫 시집 『맨발』(2004)
  4. 2017.10.24 필사하기 좋은 책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5. 2017.10.22 이상의 작가 정신을 계승하는 문학상 작품집 『이상 문학상 작품집』
  6. 2017.10.19 한국 소설을 추천하는 글
  7. 2017.10.18 책을 사용하는 방법

논술 학원 선생하면서 학부모들에게 많이 들었던 질문 Q&A




단기간이지만 논술 학원 선생을 하면서 꽤 많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 중 하나는 학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독서를 시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거다.

이번에는 그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보려고 한다.





Q : 아이가 책을 읽지 않아요. 어떻게 하면 책을 읽을까요?


A : 책을 친근하게 만들어줘야 한다. 집어던지든, 낙서를 하든, 씹어 먹든. 일단 책을 낯설어하면 펼쳐보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책을 친근하게 만드는 방법 중 하나는 부모가 독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백이면 백, 독서하는 부모를 보면서 자란 아이들은 책을 가까이 두게 된다. 이건 경험이기도 하다. 팁을 하나 제안하자면, 아이에게 책을 읽으라고 하지 마라. 대신 책을 가까이두고 심심하게 만들어라. 무료함을 견디지 못한 아이는 책을 집게 될 것이다.



Q : 폰을 사줬더니, 손에서 폰을 놓질 않아요.


A : 당연한 일이다. 폰이 제공하는 미디어, 게임 등은 쉬운 자극제다. 손가락만 몇 번 움직이면 화면에서 뿅뿅 하며 화려한 이펙트가 아이들의 시선을 강탈한다. 책은 느린 자극제다. 천천히 읽고, 읽어서 끝을 봐야 비로소 자극이 서서히 올라온다. 제대로 독해하지 못하면 그마저도 미미한 수준이다. 독서의 즐거움은 굉장하지만 스스로 깨닫기 전까지는 극히 소소한 즐거움이다. 게임은 금방 빠지지만, 독서는 그럴 수가 없다. 인내해야 한다. 게임을 하는 시간만큼 책을 읽게끔 해도, 효과는 조금씩 일어나고 있는 거다. 나쁜 건 바로 보이고, 좋은 건 눈에 띄지 않는 법이다. 인내해야 한다.



Q : 만화책만 읽어요. 어떻게 하면 좋죠?


A : 독서라는 행위를 하는 것에 감사하자. 대개 학부모가 말하는 만화책이란, 교육용으로 제작된 Why 시리즈, 마법 천자문 같은 것들이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이 책들은 만화책 수준에 끼지도 못한다. 아이가 만화책방에서나 볼 수 있을 일본 만화를 보는 게 아니라면, 기꺼이 환영할 일이다. (물론, 일본 만화가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어린 아이의 정서에는 맞지 않는 것들이 많기 때문) 시리즈를 다 읽었으면 다른 장르의 교육 만화책을 사주면 된다. 필자는 삼국지, 초한지 같은 중국 역사를 만화로 읽었다. 삼국지를 세 번 읽은 사람과는 말싸움도 하지 말라고 했는데, 80여권이 넘는 책을 여덟 번은 넘게 읽은 것 같다.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학 토론 수업 때, 논파(論破) 당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만화책도 만화책 나름이다.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장르의 교육 만화를 찾으면 된다. 책을 손에서 놓는 것보다는 긍정적이다.





Q : 책을 훑어 보는 것 같아요. 너무 빨리 읽어서 정작 내용은 잘 기억하지 못해요.


A : 독서는 책을 외우는 게 아니다. 애초에 책의 용도가 그런 것이 아니다. 책을 통해 우리가 어떤 사유를 할 수 있느냐가 문제다. 책 내용 기억을 운운하는 건, 주입식 교육에서 문제를 풀 때나 하는 짓이다. 아이가 책을 읽었다면 '무슨 내용이었어?'라고 묻는 대신 '어느 부분이 재미있었어?'라고 묻는 편이 좋다. 아이가 다시금 책의 내용을 떠올릴 수 있도록 해주라는 말이다. 애초에 읽은 책 내용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나. 읽은 책의 내용은 기억하지 못하는 게 정상이다. 만약, 아이가 한 번 읽은 책의 내용을 완벽하게 기억한다면 뇌 어딘가에 이상이 있는 게 틀림없으니, 반드시 검사를 받아라.



Q : 애가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요?


A : 애가 읽고 싶은 책을 읽게 해라. 서점에 가서 애들 책을 고르지 말고, 아이들 스스로 책을 고르게 해라. 애들 눈에 재미있어 보이는 책은 애들이 안다. 부디 아는 척 하지 말고,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줘라.



외에도 많은 문의가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꼭 필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했던 것들만 적었다.

궁금한 점을 댓글로 남기면, 아는 만큼 성심성의껏 답하도록 하겠다.


성인 남성지 비교 분석, 제 5장 [ 마치며 ]



이전 포스팅을 통해서 3종류의 성인 남성지를 비교, 분석하는 시간을 가졌다.


『맥심     『크레이지 자이언트』    『플레이보이』


잡지는 특정 독자층에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책이다. 비교 분석을 했던 위 세 잡지는 성인 남성들을 타겟으로, 그들이 원하는 정보를 담고 있다.

각각 남자들이 원하는 건 이런 거다! 라는 생각으로 잡지를 기획했을 거다. 그러면 지극히 개인적으로 어떤 잡지의 어느 부분이 좋았는지, 혹은 나빴는지 이야기하면서 비교, 분석 시간을 마치도록 하겠다.





1. 다루는 것들


맥심과 크레이지 자이언트는 가볍다. 낄낄 거리면서 읽을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거기에 미스 맥심, 자이언트 걸 같은 아름다운 여성을 볼 수 있다. 젊은 남자들이라면 마다하지 않을 내용이다. 남자라는 생물이 평생 어린 아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수많은 남성들이 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플레이보이는 생각보다 무겁다. 글이 많고, 길다. 문체도 진지하게 짝이 없다. 낄낄 거리면서 읽기 어려운 내용들을 담고 있다. 그러나 모든 남자들이 낄낄 거리는 것만 좋아하는 건 아니다. 누군가는 분명 사색을 원하고 있다. 플레이보이는 그런 남성들을 노리고 있다.






다루는 내용의 종류는 비슷하다. 여자, 스포츠, 자동차, 게임, 영화, 책 등등. 그러나 다루는 방법은 차이가 있다.

9월에 있었던 이슈 중에 故 마광수에 대한 반응으로 그 차이를 엿볼 수 있다.


맥심은 아예 헌정 에디션을 냈다. 마광수에 대한 이슈로만 후반부를 모두 채워버렸다. 작가의 작품 『즐거운 사라』를 주제로 화보까지 촬영했다. 맥심은 아주 가볍지만, 항상 가볍지는 않다. 마냥 가볍게만 떠드는 것처럼 보여도, 진지하게 이야기를 할 줄 안다. 만나면 웃긴 친구가, 완전 진지하게 고민 상담까지 해주는 느낌.


플레이보이는 하나의 칼럼으로 이야기했지만, 매우 정중하고 격식있는 칼럼이었다. 애초에 다른 칼럼들도 진지하고 무거운 느낌이 강해서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반면, 크레이지 자이언트는 마광수에 대해 한 마디 언급도 없었다. 관심 없는 분야에는 입도 뻥끗하지 않는다. 철저히 흥미 위주의 주제에 집중되어 있는데, 남자vs남자 처럼 비교하여 경쟁 구도를 만든다거나, CIA처럼 비밀스러운 것들을 주제로 떠드는 것은 남자들이 항상하는 일이다. 이야기하는 것보다 가볍게, '떠든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잡지다. 마광수를 주제로 가볍게 떠들기는 어려우니, 아예 배제를 했다고 봐야겠다.


그냥 가볍게 피식피식 웃으려면 자이언트 크레이지를

피식피식 웃다가도 중요한 내용에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싶다면 맥심을

진중하게 남자가 고민해봐야할 내용으로 사색에 빠지고 싶다면 플레이보이를 읽으면 된다.





2. 화보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순위를 매긴다면 플레이보이 > 맥심 > 자이언트 크레이지 순서로 좋다.


자이언트 크레이지는 질 보다는 양으로 승부하는 것처럼 잔뜩 찍어놓는다. 보는 입장에서는 그냥 벗겨놓고 찍은 야한 사진 정도의 느낌을 받았다. 딱히 특별한 연출도, 이야기도 담지 않은 사진이 잔뜩 실려있다. 플레이보의 센터폴드나 맥심의 달력처럼 커다란 사진도 따로 없다.


맥심은 다양한 연출의 사진을 찍는다. 즐거운 사라를 주제로 촬영한 화보는 전체적인 느낌이 어쨌던 간에 캐릭터에 대한 연출은 나름대로 좋았다고 생각한다. 인물의 화보는 최대한 매력을 잘 보여주기 위해 그에 맞는 분위기로 연출한다. 무조건 벗기는 게 아니다.


플레이보이는 화보집과 비슷한 느낌으로 사진을 찍는다.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사진처럼 보인다. 인물의 화보는 자신의 개성을 잘 나타내는 사진이면서도, 맥심과 다르게 벗긴다. 벗은 상태에서 그에 맞는 분위기를 끌어낸다. 야한데, 야하기만 한 사진은 아니다. 묘한 느낌에 빠져드는 감성을 전달하는 사진을 볼 수 있다.


자이언트 크레이지는 복불복 뽑기 같은 화보

맥심은 다양한 사진가의 사진을 모아놓은 화보

플레이보이는 하나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누드 화보 같은 느낌이다.





3. 마치며


세 잡지를 읽으면서, 사실 이런 짓이 크게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잡지는 소모적인 책이다. 만들고, 읽고, 버려지는 일이 반복된다. 다른 책보다 그 속도가 빠르다. 소장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나 이전에 가지고 있던 패션지는 모두 버렸다. 지정된 속도에 맞춰서 간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잡지를 만드는 일은 시간이 정해진 전쟁처럼 이뤄진다. 어찌되었든 그 시간 내에 완성된 잡지를 발행하는 것부터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잡지를 선택해서 읽더라도, 당신의 만족은 그리 길지 않다. 애초에 잡지는 소모적인 책이기 때문에.

그러니 너무 깊게 고민하는 대신 손을 뻗어 책을 펼치는 게 좋다.


시, 그리고 나의 첫 시집 『맨발』(2004)



시(詩)는 자신의 감상, 사상 따위를 함축하여 쓰는 글이다.

개인적으로 문학 중에 가장 어려운 장르라고 생각한다. 우리 말을 연구하고 가장 잘 쓰는 사람의 부류는 시인들이 아닐까. 자주 읽지는 않지만, 이따금 마주치는 그들의 언어는 너무 낯선 것들이다. 나와 같은 말을 사용하고 있다고 믿기지 않을 때도 있다. 당신이 화법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면 화술에 대한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시집 한 권을 읽어보는 걸 권하고 싶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어려운 문학이지만 가장 쉽게 쓸 수 있는 문학이기도 하다.

일단 짧으니까. 소설은 구성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일정한 분량이 필요하지만, 시에게는 그러한 틀이 없다. 규제가 적다. 오죽하면 '시적허용'이라는 말까지 생겼을까. 때문에 나 역시 제일 처음 쓴 작품은 '시'였다.


하지만 당시 내가 쓴 시는 전부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저 있어 보이도록 쓴, 허세 가득 찬 시였다. 때문에 단 한 번도 스스로 시를 잘 쓴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가끔씩 시를 쓴다. 시처럼 편하게 감정을 소모하는 방법도 없다. 배출하지 못하는 답답한 감정이 있다면, 술을 마시고 욕을 하는 대신 시를 써라. 남에게 보일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법이다. 거기에 욕이 들어가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자유롭게 쓰고 싶은대로. 아름다운 감상 보다 질척이는 현실에 대한 반감이 더욱 쉽게 시로 옮겨질 거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문태준 시인의 『맨발』은 선생이 내게 처음으로 준 시집이었다.

선생은 내 시를 보고 단호하게 말했다. 너는 시 보다는 소설이 낫다, 고. 그럼에도 내게 시집을 준 건, 시에서만 얻어지는 감성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잘 알지 못했지만, 이제는 알 것도 같다. 여전히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시는 명확하게 보이는 것보다 안개에 가려진 듯, 흐릿하게 보일수록 아름답다. 굳이 시에 의미, 내용, 주제를 파악하려 하지 않아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문학이다. 그래서 감정이 피폐해지면 아무 생각 없이 시집을 펼친다. 처음에는 몇 줄의 문장으로만 보이다가, 차츰 메마른 감정에 단비처럼 내려앉는 걸 느낄 수 있다.





어물전 개조개 한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 「맨발」......中 문태준


우리나라에서 시는 항상 비주류다.

읽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주입식 교육의 폐해라고 생각한다. 시구, 시어마다 의미를 정해두고 외우도록 읽었으니, 시가 전달하는 감정을 느낄 시간이 없다. 그런 식으로 10년 동안 교과서와 문제집에서 시를 읽으니, 재미있을 리가 없다. 아름답게 보일 리가 없다. 다른 문학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문제를 풀기위한 도구로써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한다. 청소년 권장도서는 교과서에 실리는지, 기출문제에 실리는 횟수에 따라 정해진다. 아이들의 감성을 메마르게 해놓고 책을 읽으라고 하는 건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나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황을 맞이했을 때, 가지고 있는 시집을 집어 든다.

그 안에는 언제나 나를 위로해주는 언어들로 가득하다. 그러니 위로 받고 싶은 당신은 시집을 봐야 한다.

필사하기 좋은 책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필사(筆寫)는 글을 베끼어 쓰는 일을 뜻한다. 

나에게 글을 가르쳐 준 선생이 제일 처음 시켰던 일이기도 하다. 그 때 선생이 내게 준 책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다. 1000자 원고지에 한 글자 씩 베끼기 시작했다. 학교 쉬는 시간이면 원고지를 펼치고 미친 듯이 베껴 쓴 기억이 난다. 덕분에 나름대로 탄탄한 문장력을 갖게 됐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았을 때, 필사를 해서 좋은 게 몇 가지 있다.


1. 문장이 좋아진다.

내가 좋은 문장을 익히기 위해서 필사를 했고, 그 효과를 보았기 때문에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다만, 필사를 하려는 작품의 문장이 왜, 어디가, 어떻게 좋은지 알아야 효과를 볼 수 있다. 무작정 베낀다고 문장이 내 손에 익는 게 아니다.


2. 작품 이해도가 높아진다.

한 글자, 한 문장, 한 문단을 집중해서 읽어가며 필사를 한다. 당연히 작품을 집중해서 보게 된다. 자연스럽게 이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3. 머리가 아니라 손이 움직인다.

'잘 써야지' 라는 생각은 머리에서 하는 거고, 결국 쓰는 건 손이다. 운동 선수들이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세우며 반복 훈련을 하는 이유는, 실제 경기를 할 때 생각보다 빠르게 몸이 움직이는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다. 글도 마찬가지다. 절대 머리에서 쓰는 게 아니다. 쓰는 건 손이다. 머리는 당신의 손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요소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마이크 타이슨의 명언 "모두 그럴 듯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쳐맞기 전까지는."을 떠올려라. 모두 그럴 듯하게 쓸 생각을 하고 있다. 손이 움직이기 전까지는.


그렇다면 선생은 왜 수많은 책 중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골랐을까?





간결하고 담백한 문장이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짧게 쓰기를 못한다. 쓸데 없는 말을 계속 한다. 문장이 길어진다. 하나의 문장이 몇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읽는 사람은 혼란스럽다. 도대체 이 문장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쓸 때는 모른다. 다 쓰고 읽어보면, 이 쓰레기를 자신이 썼다는 사실에 고개를 들지 못한다. 이거보다 심각한 상황은 자신이 쓴 말도 안 되는 문장이 썩 괜찮다고 느끼게 되는 거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문장은 단문(短文)이다. 짧고 간결하며, 문장 하나가 하나의 의미를 담는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당신이 써놓은 쓰레기 중 하나만 들춰봐도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다. 


나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잠이 나를 눌러왔다. 나는 부서진 대문 한 짝을 끌어내 그 위에 엎드렸다. 햇살을 등에 느끼며 나는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우리 식구와 지섭을 제외하고 세계는 모두 이상했다. 아니다. 아버지와 지섭마저 좀 이상했다. 나는 햇살 속에서 꿈을 꾸었다. 영희가 팬지꽃 두 송이를 공장 폐수 속에 던져넣고 있었다.


문장을 짧게 쓴다. 명확하게 전달하려는 것만 담아낸다. 불필요한 수식어, 미사여구는 모두 제외한다. 추상적으로 쓰지 않는다. 들려주지 말고 보여줘라. 좋은 글 쓰기에 필요한 이 요소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담겨있다. 





좋은 글쓰기에 대한 책은 계속 나온다. 요즘에는 코너도 따로 있을 정도다. 나 역시 글쓰기에 관한 책 몇 권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 책들을 읽는다고 해서 자신의 글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많이 써봐야 한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과 원고지를 책상에 펼치고 계속해서 손을 움직여라.


잊지 마라.

글을 쓰는 건 머리가 아니라 손이다.


이상의 작가 정신을 계승하는 문학상 작품집 『이상 문학상 작품집』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문학상이 존재한다. 어떤 문학상이든지 수상하는 일은 어렵고, 그 어려움을 뚫은 수상작들은 읽을만한 작품이라는 보증을 받게 된다. 그 중에서도 문학사상이 주최하는 '이상 문학상' 수상작들은 훌륭한 편이다. 때문에 좋아하는 작가가 목록에 없더라도 매년 사두는 책 중에 하나다. 만약, 한국 소설을 읽어보고 싶은데 딱히 알거나 떠오르는 작품, 작가가 없다면 이상 문학상 작품집을 추천한다. 저 수많은 작품들 중에 하나는 반드시 당신의 마음에 들 것이다. 여태까지 내게 그랬던 소설집이다.


1회

1977년

<서울의 달빛 0장>

김승옥

2회

1978년

<잔인한 도시>

이청준

3회

1979년

<저녁의 게임>

오정희

4회

1980년

<관계>

유재용

5회

1981년

<엄마의 말뚝>

박완서

6회

1982년

<깊고 푸른 밤>

최인호

7회

1983년

<먼 그대>

서영은

8회

1984년

<어두운 기억의 저편>

이균영

9회

1985년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이제하

10회

1986년

<흐르는 북>

최일남

11회

1987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이문열

12회

1988년

<붉은 방>

임철우

<해변의 길손>

한승원

13회

1989년

<겨울의 환>

김채원

14회

1990년

<마음의 감옥>

김원일

15회

1991년

<우리 시대의 소설가>

조성기

16회

1992년

<숨은 꽃>

양귀자

17회

1993년

<얼음의 도가니>

최수철

18회

1994년

<하나코는 없다>

최윤

19회

1995년

<하얀 배>

윤후명

20회

1996년

<천지간>

윤대녕

21회

1997년

<사랑의 예감>

김지원

22회

1998년

<아내의 상자>

은희경

23회

1999년

<내 마음의 옥탑방>

박상우

24회

2000년

<시인의 별>

이인화

25회

2001년

<부석사>

신경숙

26회

2002년

<뱀장어 스튜>

권지예

27회

2003년

<바다와 나비>

김인숙

28회

2004년

<화장>

김훈

29회

2005년

<몽고반점>

한강

30회

2006년

<밤이여, 나뉘어라>

정미경

31회

2007년

<천사는 여기 머문다>

전경린

32회

2008년

<사랑을 믿다>

권여선

33회

2009년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김연수

34회

2010년

<아침의 문>

박민규

35회

2011년

<맨발로 글목을 돌다>

공지영

36회

2012년

<옥수수와 나>

김영하

37회

2013년

<침묵의 미래>

김애란

38회

2014년

<몬순>

편혜영

39회

2015년

<뿌리 이야기>

김숨

40회

2016년

<천국의 문>

김경욱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이상문학상 [李箱文學賞] (두산백과)



2017년도 대상 수상작은 구효서의 풍경소리다.


문학상의 특징은 종이 한 장, 혹은 한 문장 차이로 순위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여기에 실린 모든 작품이 사실은 대상 수상작이라 불러도 좋은 작품이다. 이미 훌륭하다고 검증된 작품이니 아무거나 집어도 후회는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역대 수상작 중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을 몇 개 꼽자면


20회 대상 수상작 「천지간(天地間)」 윤대녕

상징이 무엇인지 공부하기 좋은 작품. 몇 번이나 분석한 작품 중 하나다.

작품 자체의 완성도가 너무 뛰어나서, 이 소설을 보면 내가 쓰는 소설을 쓰레기처럼 느껴질 정도.

소설의 치밀함과 상징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다면 추천드리는 작품이다.


34회 대상 수상작 「아침의 문」 박민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 마찬가지로 몇 번이나 분석했던 작품 중 하나.

소설이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걸 새삼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짧은 단편임에도 먹먹한 여운을 남긴다. 뒷맛이 오래도록 남아있는 글을 좋아하는 분들께 추천한다.


36회 대상 수상작 「옥수수와 나」 김영하

김영하는 글을 잘 쓰는 작가임에 틀림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로 좋아하는 작가는 아닌데, 이 작품은 좀 미쳤다. 이상 문학상 작품집은 대상 수상작을 제일 처음 배치한다. 자연스럽게 이 작품을 먼저 읽게 됐는데, 다음 작품들로 넘어가질 못했다. 너무 재미있어서. 거짓말이 아니라 별 거 없는 내용인데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고백하자면 아직까지도 36회 작품집은 이 소설 하나 말고는 보질 못했다.

최근 방송에도 나오는 김영하 작가의 작품이 궁금하다면, 굳이 길고 어지러운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지 마시고 이 작품을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


뭐, 이래봐야 개인적인 취향이기 때문에 직접 읽어보고 고르는 게 제일 좋다.

서점에 가시라.





이상 문학상이 얼마나 좋은 작품을 수록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던 건, 집 서재에서 95년도 작품집을 찾았을 때였다. 수록작들이 유독 훌륭한 건 아니었다. 이 책은 내가 산 게 아니라, 부모님이 산 거다. 지금보다 젊은 시절의 부모님이 말이다. 세대를 막론하고 이상 문학상은 언제나 좋은 작품들을 선정했다. 





나는 민달팽이처럼 기어서 뿌리에 다가간다. 

두 가닥의 뿌리가 열십자로 뻗어 나가면서, 엇갈린 지점에 저절로 생겨난 움푹한 곳에 얼굴을 파묻는다. 

실뿌리들이 소소소 일어 이마와 귓바퀴를 간질이고, 독기 서린 잔뿌리 끝이 목을 찔러오지만 얼굴을 더, 서슴서슴 주저하면서도 얼굴을 더...... 

변심한 애인이 깊이 잠들기를 기다려 가장 은밀한 곳을, 외설스러우면서도 성스러운 곳을 탐하듯.  


- 39회 대상 수상작 「뿌리 이야기」 中...... 김숨 作




이따금 표지 디자인이 심심찮게 바뀌는데, 매년 같은 표지라고 생각하다가도 모아서 확인해보면 달라져 있는 걸 볼 수 있다.

디자인 뿐만 아니라 종이 재질이나 프로필, 폰트까지 바뀌는 때도 있다. 이런 걸 하나하나 확인해보는 것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시리즈를 사서 책장에 꽂아둘 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라 생각한다.


아직 책장에 이런 작품집이 하나도 없다면, 서점에 가서 아무거나 하나 집어오는 건 어떨까.

분명, 다른 작품집도 골라오게 될 거다.


한국 소설을 추천하는 글



소설 [小設]이란 사실, 또는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허구적인 이야기, 산문이다.

우리가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학 갈래 중 하나이며, 가장 많은 독자들을 보유하고 있는 장르이기도 하다.

소설이 사랑 받는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소설이 우리내 삶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지니는 감정, 사상, 거기서부터 만들어지는 행동, 그로인해 벌어지는 사건 따위가 뒤엉켜 진행되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어떤 이야기는 진한 여운을 남기기도 하고, 어떤 이야기는 가슴 깊이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하며, 자신과 전혀 무관한 이야기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뭐, 이런 이야기는 고리타분하고 뻔한 이야기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소설은 가장 읽기 쉬운 문학이다. 어렵게 쓰려고 마음 먹으면 끔찍할 정도로 어렵게 풀어낼 수도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상당한 내공이 필요하다. 쉽게 읽히는 글도 쓸 때는 어려운 법인데, 읽는 것도 어려운 글을 쓰려면 쓸 때는…… 끔찍하다. 궁금하면 직접 소설을 한 번 써 보시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을테니. 





만약, 소설을 쓰는 게 생각을 넘어 상상보다 어렵고 고난하고 괴로운 작업이라는 사실을 느꼈더라면- 맹세컨데 소설을 전공하지는 않았을 거다.

그 중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일은 다른 작가의 작품을 읽는 것이었다. 즐거움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나는 왜 이렇게 못 쓰나'라는 자괴감을 느낄 수 있는 이중적인 일이었다. 예전보다는 덜하지만 여전히 이 이중적인 감정은 재미있는 책을 읽을 때마다 생겨난다. 어쩔 수 없는 직업병이 아닐까.


그런데 이 어려운 걸 수많은 소설가들이 해낸다. 

덕분에 우리는 재미있는 소설들을 감상할 수 있다.


소설을 좋아한다는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작가를 물어보면 십중팔구 외국 작가의 이름이 나온다.

예년에는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항상 언급되었고, 근래에는 '기욤 뮈소'를 꼽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베스트셀러 코너에 가면 문학 부분에는 외국 작가들의 작품이 주욱 나열되어 있다. 한국 작가들의 이름은 자기개발서 부분이나 인문학 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게 굉장히 안타까운 일 중 하나인데,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을 읽지 않는다.

읽는다 하더라도 굉장히 유명한, 혹은 유명해진 작가의 작품을 읽는다. 단적인 예로 '故 마광수'의 책은 그가 죽은 뒤로 판매량이 급격히 올랐고, 초판의 가격이 몇 배나 오르는 기현상을 보였다.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같은 경우, 멘부커상을 수상한 뒤부터 지금까지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찾아볼 수 있다. 멘부커상을 수상하기 전에 '한강'이라는 작가를 알던 사람이 몇이나 되었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국 작가의 소설을 읽을 필요가 있다.

무슨 국뽕 같은 게 아니라, 진지하게 그럴 필요성을 느낀다.

그 이유를 몇 가지 정리해봤다.



1. 번역체가 아닌 순수한 한글의 문체로 글을 읽을 수 있다.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일지라도 굉장히 중요한 이유다. 우리나라 문학이 해외로 많이 나가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번역 때문이다. 왜, '고은'의 시도 번역이 힘들어서 그 감정, 감각, 표현을 고스란히 전달하지 못해서 노벨 문학상을 끝끝내 수상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으니까. 이게 낭설이든 아니든 한글은 다른 언어로 번역해서 표현하기 어려운 글이다. 물론, 반대도 그리 쉽지는 않은 일이다. 번역은 어쩔 수 없이 어색하고 부족한 부분이 생기게 된다. 그 부분을 최소화 시킬 수 있다면 제일이겠지만, 그것보다 처음부터 한글로 씌여진 글을 읽으면 해결되는 일이다. 우리나라 작가들은 굉장히 수려한 문장을 쓰기 때문에 딱딱하고 어색한 외국 소설을 번역체만 보다가, 한국 소설을 보면 눈이 정화되는 걸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진심으로.



2. 문화적 공감을 느낄 수 있다.


흑인이 느끼는 인종차별에 대해서 가장 공감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당연히 흑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독자들의 공감을 가장 잘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작가는? 당연히 우리나라 작가다.



3. 수준이 높다.


소설 중에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소설은 단편이다. 중, 장편이 더 기니까 쓰기 어렵지 않나?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 제한되어 있는 분량 안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끝 맺어야 하는 일은 잔인할 정도로 타이트한 작업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소설의 주류는 단편이다. 문예창작학과 입시 실기도 단편으로 보고, 신춘문예 등단도 단편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그래서 우리나라 소설은 단편집이 많다. 우리나라에서 '소설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그 중에 뽑혀 책까지 낸 사람들이다. 수준이 낮을 수가 없다. 



4. 존나 재미있다.


정확하게 이렇게 표현해야 전달이 되는 감정이다. '김영하' 작가가 방송에 나와서 "소설은 원래 어두운 거다"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어느 정도 공감한다. 마냥 밝기만 한 소설이라면 갈등도 없을 거고, 그러면 사건도 생기지 않는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어두워진다. 개인적으로 한국 소설이 제일 어둡다. 옆나라 일본 소설의 어두움이 2라고 한다면, 한국 소설의 어두움은 8 정도? 물론, 개인적인 소견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빛이라 할지라도 더욱 강조된다. 마치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빛처럼 느껴진다. 한국 소설을 읽으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미로를 찾아가는, 그런 기분이다.


일본 소설이 "와, 재미있다" 같이 밝고 명랑한 느낌이라면, 한국 소설은 "존나 재미있다, 씨발" 같이 험하면서 포기하지 못하는 느낌.

매운 걸 참으면서 매운 걸 먹는 그런 느낌이랄까. 전부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단편은 이처럼 하드한 작품들이 많다. 역시 궁금하면 직접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





당연히 외국 작품도 좋은 것들이 많다. 

'명작'이라는 걸 꼽으면 외국의 작품이 더 쉽게 떠오르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당신의 독서 목록에 우리나라 작가의 이름을 하나 둘 추가하는 게, 그리 나쁜 일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우리나라에는 '등단'이라는 시스템이 있다.

매년 신문사나 출판사를 통해 작가로 인정 받는, 일종의 '작가 자격증 시험' 같은 거다.

이 경쟁률이 대략 1000 : 1 정도다. 19명 선발하는 17년도 제 33회 입법고시에 4600명이 지원했다. 이 경쟁률이 243 : 1이다. 이것도 무려 역대급.

이 정도면 '등단'하는 게 얼마나 치열한 일인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 치열함을 뚫어낸 이들이 쓴 소설이다. 

당연히 존나 재미있을 수밖에 없지.

책을 사용하는 방법



책은 어디서나 접할 수 있는 물건이다.

학교, 도서관, 서점 같은 곳은 당연하고, 카페는 아예 '북카페'가 따로 생길 정도다.

식당과 미용실은 대기 시간을 달래기 위한 눈요기 거리로 책들이 비치되어 있다.

이렇게 수많은 책들이 널리 퍼져있는데, 정작 읽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나라 인구 연 평균 독서량은 10권이 채 안 된다.

2015년도 기준으로 9.9권. 세계 192개국 중 166위에 속하는 수치다.

2년 동안 평균이 떨어졌으면 떨어졌지, 오르지는 않았을 거다.


2016년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인의 생활 시간 변화'에 따르면 10세 이상 국민의 하루 독서 시간은 6분이다.

6분. 하루에 10분을 독서하는 사람이 10명 중 1명이며, 3명 중 1명은 일 년동안 단 한 권의 책을 읽지 않는다.





이렇게 얘기하면 굉장히 심각한 문제인 것처럼 들린다. 

사실, '책을 읽지 않는다'는 말은 언제나 부정적으로 들렸다.


그나마 어른들은 '일 때문에 바빠서'라던가 '읽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서' 같은 핑계라도 댈 수 있지만, 아이들은 아니다.

언제나 어른들의 '책 좀 읽어라'는 잔소리에 시달린다. 아이들은 억울하다. 정작 잔소리를 하는 부모들도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잔소리를 하는 부모들도 왜 아이들에게 책을 읽혀야 하는지 잘 모른다.

자신이 책을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책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모른다.

놀랍게도 그런 사람들이 꽤나 많다.


진짜 많다, 진짜.





요 몇 개월 동안 논술학원에서 초등학생들을 가르치고 학부모들과 상담을 했다.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평균보다 책을 잘 읽고 많이 읽는 편이었다.

아이들을 보면서 스스로 부족함을 느낄 정도로 독서량이 높은 아이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은 늘 불안해했다.


'우리 애가 책을 안 읽어요'

'책을 너무 빨리 읽어요'

'만화책만 읽어요'


상담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다.

부모라면 응당 갖고 있는 불안함에서 나오는 걱정이겠지만, 내 입장은 난처했다.

대부분의 걱정이 그렇듯 학부모들의 걱정도 필요한 걱정은 아니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아이들이 책을 접하기만 한다면 됐다. 그거면 충분했다.


과장해서 말하면 책을 쌓아서 집을 만들어도 좋고, 책을 방패 삼아 칼싸움을 해도 좋다.

책의 역할은 본디 그런 것이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생각하기 위해서다.


물론, 책이 없다고 생각을 못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책을 이용해 더 깊은 사유가 가능해진다.

때문에 책은 빨리 읽거나, 만화책을 읽는 건 전혀 문제가 안 된다.

문제는 책을 읽고 사유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다.


책을 쌓아 집을 만드려면 어떤 식으로 쌓아야 견고하고 높게 만들 수 있을까, 를 생각하고

책을 방패 삼아 칼싸움을 하면 어떤 책이 방패로 쓰기 좋을 지 고민할 수 있다.


어떤 방식이라도 좋으니, 생각을 이끌어낸다면 그건 책을 사용하는 훌륭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 가장 훌륭한 방법이 '읽기'일 뿐이지, 반드시 읽기만 하라는 건 아니다.


책을 통해서 우리는 사고력을 확장하고 견고하게 다듬을 수 있다.

때문에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책을 사용해야 한다.


나도 그리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다.

그러나 책을 사용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기에, 포스팅을 시작한다.

책 사진을 찍고, 책에 대한 내 생각을 풀어내면서 책을 사용하고자 한다.


부디, 내가 꾸준히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모든 것의 근원은 생각이며, 생각의 원천은 바로 책이다"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