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18.01.24 사랑과 사랑에 대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2. 2018.01.21 성인이 되는 빨간머리 소녀 『에이번리의 앤』
  3. 2018.01.12 감정적인 문장의 소유자 김연수 『사월의 미, 칠월의 솔』
  4. 2018.01.10 맨부커 상 수상작 한강의 『채식주의자』
  5. 2018.01.08 길들일 수 없는 작가 이외수의 초기작 『들개』
  6. 2017.11.08 초등학생 추천 도서 『잔소리 없는 날』
  7. 2017.10.24 필사하기 좋은 책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8. 2017.10.23 이야기의 제왕이 쓴 단편들 『스켈레톤 크루』
  9. 2017.10.22 이상의 작가 정신을 계승하는 문학상 작품집 『이상 문학상 작품집』
  10. 2017.10.20 도입부의 마력 정영수의 『애호가들』(2017)

사랑과 사랑에 대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는 소장욕을 불러일으킬 만큼 훌륭하다.


수가 너무 많고 취향에 맞지 않는 작품들이 있어서 굳이 소장하고 있지는 않지만, 대학 도서관에서 자주 애용했던 시리즈다. 그만큼 좋은 작품들이 많고, 번역이 믿을만 하다.


이 작품은 프랑스의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이다.


'폴'이라는 여성을 중심으로 그녀의 오래된 연인 '로제'와 젊고 아름다운 청년 '시몽'의 관계를 그리고 있다. 흔히 말하는 삼각관계의 이야기다. 로제는 폴과의 관계에서 권태를 느낀다. 해서 폴과 멀어져 다른 여자를 품에 안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은 로제를 원한다. 기다린다. 그러던 중 시몽이 폴에게 반하여 그녀에게 구애한다. 폴은 처음에는 그저 어린 청년을 놀리는 정도로 반응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시몽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반면, 로제는 다른 여자를 만나면서 폴이 자신에게 있어서 어떤 가치를 갖고 있는 여자였는지 깨닫는다. 으레 모든 남자들이 그렇듯, 로제 역시 여자를 소홀히 하고서야 그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가 궁금한 작품이 있는데, 이 작품도 그렇다.


짝사랑이나 삼각관계 같이 여럿이 얽힌 사랑 이야기는 언제나 누구와 연결되는지, 연결되지 않는지가 관건이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도 결국 폴이 로제와 연결되느냐, 시몽과 연결되느냐를 생각하면서 읽게 된다. 그 속에서 우리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변해가는지 관찰할 수 있다.


사랑은 고결하거나 아름답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고결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보면 우리는 감동하는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든다. 많은 작품들의 단골 소재로 사랑이 등장하는 건, 이 변화무쌍한 감정이 무수히 많은 갈등을 빚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갈등을 해결하고 이뤄낸 사랑이 얼마나 빛나는가. 우리는 이미 수많은 작품 속에서 그 빛을 확인했다. 이따금 그 빛에 홀려 새로운 사랑을 꿈꾸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의 사랑을 빛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경험한 이들이라면 알 수 있으리라.


결말이 궁금하거나, 사랑에 대한 남녀의 감정을 탐구하고 싶은 이들에게 권한다.





이 책을 선물해준 G에게 감사한다. 이 책은 나를 보다 성숙하게 만들어주었다.





성인이 되는 빨간머리 소녀 『에이번리의 앤』


루시 모드 몽고메리는 평생 앤의 이야기를 썼다.


그러니까 앤의 이야기는 소녀의 시점에서 끝나지 않는다. 한 작가가 일생 동안 소녀 시절의 이야기만 썼겠는가. 몽고메리는 앤이라는 캐릭터의 일생을 그대로 그려냈다.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총 9편의 시리즈를 썼다. 될 수 있으면 인디고에서 전부 출간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에이번리의 앤』에서는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일하는 앤을 만날 수 있다.


우리의 청소년기처럼 앤 역시 다양한 갈등을 겪게 되는데, 우리나라 학생들처럼 대학 진학에 대한 갈등이 전반적으로 나온다. 앤은 대학을 가고 싶은 마음과 초록지붕 집을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 속에서 갈등한다. 그러는 중에도 자신보다 어린 아이들에게 길을 제시하는 상냥한 선생님의 면모도 보여준다. 전작에 비해서 성장한 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대견스러운 마음도 든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앤은 앤이었다.


"우리가 이쪽으로 와서 정말 다행이야. 너희도 알다시피 오늘은 내가 입양된 날이야. 이 정원과 정원에 얽힌 이야기가 내 생일 선물이 되었어. 다이애나, 헤스터 그레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엄마가 말해 주셨니?"

앤이 빛나는 눈으로 묻자 다이애나가 대답했다.

"아니, 예쁘다고만 하셨어."

"그 편이 더 좋아. 헤스터가 어떻게 생겼는지 내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으니까. 내 생각에 헤스터는 아주 작고 갸날픈 몸매에 부드럽고 까만 곱슬머리에 순하고 상냥하고 커다란 갈색 눈에 애절하고 창백한 얼굴을 가졌을 거야."


이런 점에서 우리는 전작의 앤을 회상하고 추억하며 기뻐할 수 있다.



누군가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다는 사실을 굉장히 기쁜 일이다. 게다가 그 사람이 사랑스러운 빨간 머리 소녀라면 더할나위 없겠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이고, 언제나 동심을 떠올리게 해주는 고마운 작품이다. 오랫동안 순수한 상상의 세계를 잊고 있었다면, 인디고에서 출간한 앤 시리즈를 읽어보는 건 어떨까.



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소녀의 이야기가 당신을 순수한 세계로 이끌어줄 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감정적인 문장의 소유자 김연수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전에는 박민규처럼 톡톡 튀고 독자를 현혹시키는 글에 끌렸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글에도 끌리기 시작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작가가 김연수다.


김연수는 93년에 시로 등단을 했지만, 이후 소설을 발표하며 왕성한 활동을 보인 작가다. - 이렇게 말해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게 슬픈 일이다. 나에게도 하는 소리지만 얼마나 책을 안 읽는다는 말인가 - SNS에서 이런 글귀를 본 적이 있을 거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건 나의 일이었다'


이 글귀를 쓴 사람이 바로 김연수 작가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에 등장하는 글귀다. 김연수는 장, 단편 가리지 않고 많은 글을 쓴 작가다. 덕분에 김연수의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딱히 읽을 거리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이라면 김연수 작가의 작품을 하나 씩 펼쳐보는 걸 추천한다. 나는 군대에 있을 때 읽기 시작했다.



소설집으로는 가장 최근(2013)에 출간된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이 오늘 소개할 책이다.


수록작으로 「벚꽃 새해」 「깊은 밤, 기린의 말」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일기예보의 기법」 「주쌩뚜디피니를 듣던 터널의 밤」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동욱」 「우는 시늉을 하네」 「파주로」 「인구가 나다」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가 있다. 총 11 작품이다. 김연수 작품의 장점이라면 쉽게 읽힌다는 걸까. 나는 김연수 작가의 글을 읽을 때 단 한 호흡도 쉰 적이 없다. 한국 작가 중에서는 유일했던 것 같다. 여류 작가들은 나를 숨막히게 하고, 박민규와 같은 톡톡 튀는 글은 이따금 잠시 책을 내려놓게 만드는 충격을 선사하기도 하니까, 그럴 수가 없다. 김연수는 옆집 아저씨가 자기 얘기를 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글을 쓴다.


그 옆집 아저씨가 굉장한 로맨티스트에 감정 넘치는 게 특이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을 재미있게 읽었다. 꼴에 글쟁이라고 뭔가를 쓰는 이야기에는 언제나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소설가라니 아주 흥미롭습니다"라고 말하더니 그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잠깐 내 얘기를 들을 시간이 있겠습니까?"라고 지갑을 손에 든 채 그가 내게 물었다. 그때 나는 글을 쓰는 건 고사하고 책을 읽을 마음도 들지 않아서 소설가로서는 폐업상태였고, 따라서 김일성대학교에 입학해서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노인이 소설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인생담에 전혀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


-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中


소설은 하나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문단으로, 문단은 문장으로, 문장은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


습작을 하거나 읽다보면 어느 부분에 힘이 들어갔고, 힘을 뺐는지 보일 때가 있다. 의도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의 미숙함을 느끼고 좌절할 경우가 있다. 가장 좋은 글은 힘이 들어갔는지, 빠졌는지 전혀 보이지 않는 글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가슴으로 와서 울려 퍼지는 글. 김연수는 굉장히 아무렇지도 않게 글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읽는 입장에서는 말이다.



의식하지 않고 감정적인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김연수 작가의 작품을 읽는 걸 추천한다.


어떤 작품이라도 쉬이 편하게 읽어내려갈 수 있을테니.




맨부커 상 수상작 한강의 『채식주의자』

세계 3대 문학상이라 불리는 '노벨 문학상' '프랑스 콩쿠르 문학상' '맨부커 문학상' 중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건 단연 노벨 문학상이었다. 고은 시인이 수상할지 어떨지 바라보는 게 매년 해왔던 일이기도 했고. 그러나 아쉽게도 고은 시인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 나오지 않았다. 다들 우리나라의 문학이 세계에서는 통용되지 않거나, 번역으로 인해 본래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저평가 받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2016년 돌연 맨부커 문학상 수상작이 한국에서 나왔다. 그것도 무려 심사위원 만장일치. 이례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 작품이 바로 한강의 『채식주의자』다.



『채식주의자』는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세 편의 소설로 구성되어 있는 연작소설이다. 


돌연 채식주의자가 되는 영혜를 중심 이야기가 전개되서, 영혜의 몸에 있는 몽고반점에 매료된 그의 형부, 이유를 알 수 없는 동생의 채식주의 때문에 걱정하고 있는 언니 인혜가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개인적으로 한강 작가를 좋아하지 않는다.


한국 여류 작가들이 갖고 있는 특유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재미가 없다거나 맛 없는 글을 쓴다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녀들은 눈 부실 정도로 찬란한 글을 쓴다. 그런데 읽고 있자면 숨이 턱턱 막히는 공기가 있다. 옛날에는 막연하게 내가 이런 스타일을 싫어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게 아니었다.


그녀들의 작품은 대부분 -아주 당연하게도- 여성의 시점이나 여성을 관찰하는 식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어느 정도 작가의 일부, 경험, 사고를 공유한다. 무의식 중에라도 말이다. 남자인 탓에, 나는 여성의 삶을 표면적으로 밖에 모른다. 여성이기 때문에 느끼는 감각을, 나는 알 수가 없다.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 나는 그녀들의 작품을 볼 때마다 숨이 막혔던 것이 아닐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아, 이게 보이지 않는 코르셋이라는 걸까.



맨부커 상을 수상하기 전에, 나는 이미 『채식주의자』를 읽었다.


당시에는 막연히 싫다는 느낌뿐이었다. 다시금 읽어봐도 숨이 막힌다. 장인이 영혜에게 보이는 태도나, 남편의 행실이나, 형부의 파괴적인 예술 행위, 그로 인해 상처 받는 인혜를 보고 있노라면- 그렇다. 



"정서방, 영호, 둘이 이쪽으로 와라."

나는 머뭇거리며 아내에게 다가갔다. 뺨에서 피가 비칠 만큼 아내는 세게 맞았다. 그녀는 그제야 평정이 깨진 듯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두 사람이 영혜 팔을 잡아라."

"예?"

"한번만 먹기 시작하면 다시 먹을 거다. 세상천지에, 요즘 고기 안 먹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


- 「채식주의자」 中



그는 정 많은 아내의 책임감있는 얼굴을, 숟가락의 약을 쏟을까 조심하며 아들에게 다가가는 신중한 뒷모습을 보았다. 좋은 여자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아내는 언제나 좋은 여자였다. 좋기만 한 것이 오히려 답답하게 느껴지는, 그런 여자였다.


- 「몽고반점」 中



요즘 페미니즘에 대한 여론이 뜨겁다. 그에 따라서 문학의 주제로 페미니즘이 사용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얼마 전 서점에서 '페미니즘 소설집'이라는 걸 보기도 했다. 굳이 그렇게 드러내지 않아도, 여성의 삶이 녹아들어 있는 문학은 이미 잔뜩있다. 작품에는 무의식이라도 작가 자신의 일부가 녹아들기에, 여류 작가들의 작품에는 모두 그녀들의 삶이 녹아들어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부디 '페미니즘'을 시끄럽게 운운하는 책보다는 여류작가의 책을 읽기를 바란다.


페미니즘에 대해서 알고 싶다거나, 여성의 삶을 엿보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채식주의자』 뿐만 아니라 모든 여류작가의 작품을-





길들일 수 없는 작가 이외수의 초기작 『들개』


개인적으로 이외수 작가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문학 업적을 많이 남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SNS를 이용한 소통을 가장 잘 하는 작가기도 하다. 젊은 시대를 수용할 줄 아는 늙은 작가의 아우라는 새로우면서 익숙한 느낌이랄까. 최근에 발표한 작품 『보복대행전문 주식회사』만 봐도 그렇다. 제목이 어디 노인네가 쓴 글이라고 짐작이나 하겠나. 이외수라는 지은이를 확인하기 전까지, 나는 갓 등단한 작가의 풋내 풍기는 작품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악하악』을 봤을 때는 이 노인네는 뭐하는 사람인가 싶었다. 내용을 보기 전까지는.


이후 그의 작품을 읽어보겠노라 생각하고, 되도록 초기작을 찾아봤다. 『들개』는 이외수의 초기 장편 소설이다.



이야기는 소설을 쓰고 싶어하는 여자와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는 남자가 만나면서 시작된다. 여자는 비어있는 학원 건물에 몰래 숨어 산다. 남자는 이혼에 직장도 때려치고 나온 빈털털이다. 남자는 그림을 전공했다. 자신만의 순수한 작품을 그리고 싶은 욕망이 가득하다. 남자는 여자와 같은 건물 2층에 작업실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이거 모두 언제 그리신 거예요."

"대학 다닐 때 그린 게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직장을 가진 다음부터 내 그림은 시름시름 병을 앓기 시작했어요. 보십시오. 저쪽 벽에 있는 것들, 뭔가 다르지 않아요?"
"다른데요."

정말이었다. 그가 손가락질한 벽에 걸려 있는 그림들은 어딘지 모르게 분위기가 쳐져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것들 모두 늑댄가요?"

"늑대가 아닙니다."

"그럼 승냥이?"

"그것도 아닙니다."

"어쩐지 개 같지는 않은데."

"그것들은 갭니다. 그러나 집개가 아니라 들개죠."

"들개?"

"야생견을 말하는 겁니다."


- 이외수의 『들개』 中


남자는 청량음료 회사에 다니면서 광고 그림을 그렸다. 그러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야생의 감각을 잃어갔다. 순수하게 그림만을 위한 그림을 그리지 못한 게 원인이었다. 남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다시 들개를 그리려 한다. 그리고 마침내 남자는.......



분량에 비해 읽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사실, 어떻게 읽었는지 모를 정도로 빠르게 읽을 수 있다. 전개와 호흡이 빠르고, 눈에 쉽게 읽히는 문장이다. 책을 읽으면 이외수가 가지고 있는 문학적 기술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다. 이따금 위와 같은 표현,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캔버스에다 뼈를 깎아 붙이고 있는 것'을 보면 잔잔한 가슴에 돌을 던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렇게 조금씩 물결이 쌓이고 쌓여서, 작품이 끝날 쯤엔 거대한 파도가 되어서 가슴으로 쏟아져 내린다.


실력 없는 글쟁이들, 예를 들자면 나 같은 녀석들은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지도 않고 파도를 만들려는 억지를 부린다. 그러면 개연성이 성립하지 않고, 글은 호소력을 잃는다. 알면서도 막상 쓸 때는 잘 되지 않는 일이다. 이걸 자연스럽게 글 속에 녹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한 줄의 시(詩), 한 악장의 심포니, 또는 한 폭의 그림 따위들은 결단코 설명되어 지거나 해석되어서는 안 되며 다만 느끼어지는 것이라고 나는 언제나 고집하며 살아왔었다. 따라서 그 잘나빠진 고교입시나 대학입시용 참고서에서 만해 한용운 선생의 「복종」이나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 등이 조잡한 이론가들의 녹슨 칼끝에 난도질당해져 있는 것을 보면 차라리 나는 혐오감 때문에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시란 표본실의 청개구리가 아닌 것이다. 배를 가르고 내장을 드러내고 허파가 어떠니 콩팥이 어떠니 왈가왈부해봤자 더욱 시에 대한 눈이 멀어져갈 뿐이다. 물론 내가 여기서 이야기하는 시란 수사법상 제유법적으로 사용된다. 그러니까 시를 음악이나 미술로 바꾸어 말한다 해도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혹자들은 말한다. 이 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너무 어려운 시야, 라고.


그러나 어려운 것은 시가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시에 대한 편견이다. 도대체 시를 이해하려 든다는 것부터가 무모하다. 시가 감상되는 것이라는 기초적 상식을 버리고서는 도저히 시에 근접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소설을 쓸 때 언제나 그것을 염두에 둔다. 따라서 내 소설 또한 감상되기를 바라며 결코 설명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나는 되도록이면 언어 자체를 생물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추상이 아니라 구상이다. 나는 소설이 단순히 스토리 때문에 읽혀지는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것은 언어의 동작들이 가지는 아름다움 때문에 읽혀지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해 왔다. 언어의 동작이라니, 미친놈이로군, 하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분들께는 더 이상 말해 드릴 방법이 없다. 그분들은 이미 그분들의 의식 속에서 관념이라는 덮개로 언어를 뒤덮어 질식시켜 버린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 「작가가 말하는 작품세계」 中...이외수 『들개』에 수록


학교를 다니면서 작품에 대해서 공부를 할 때는 언제는 분석을 했다. 이제는 분석 자체에 즐거움을 느끼게 됐다. 그러다 도저히 이유를 알 수 없는 작품을과 마주하면 '그래, 이게 맞지'라는 생각을 한다. 애초에 작품을 분석하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하다. 작품은 감상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잘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쯤에는,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서도 가슴으로 밀려오는 파도를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초등학생 추천 도서 『잔소리 없는 날』



보통 아이들이 읽을 책을 집는 일이 없는데, 올해 잠시 논술 학원 선생을 하면서 아이들이 읽으면 좋은 책들, 좋을 책들을 많이 보게 됐다. 아이들이 읽는 유아용 도서기 때문에 가볍게 읽기 좋다. 그렇다고 애들이나 읽는 책이라면서 무시하면 곤란하다. 전하고자 하는 주제는 성인 도서와 다르지 않으니까.


학원에서 책을 가지고 수업을 진행했기 때문에 꽤 많은 책을 읽었지만,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은 작품이 바로 이 『잔소리 없는 날』이었다. 아이들의 흥미를 끌어낼 수 있는 최적의 제목이 아닐까 싶다. 누구나 잔소리를 듣는다. 나에게 약이 되는 소리라지만, 잔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아이들은 더욱 그렇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제목만 봐도 '잔소리가 없는 날은 어떤 날이 될까?'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이게 흥미가 되고, 호기심이 되어 책을 펼치게 만드는 힘이 된다.


주인공 '푸셀'은 잔소리 듣기 싫어하는 평범한 소년이다. 평범하다기 보다 조금 말썽꾸러기인 편이다. 삽화를 보면 빨간 곱슬 머리로 묘사되어 있다. 서구권에서 빨간 머리가 말썽을 일으키는 인물에 대한 이미지가 아닐까, 싶다. 해리포터의 론 위즐리나 유명한 빨강머리 앤을 떠올리면 고개를 끄덕이게 될 거다. 그런 DNA를 타고난 말썽꾸러기 빨강머리 푸셀은 부모님과 '잔소리 없는 날'을 정하기로 약속한다. 그 뒤에 일어나는 일은? 상상에 맡기겠다.






"푸셀, 대체 왜 그런 짓을 하는 거니?"

엄마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보통 때는 상상도 못할 일이잖아요."

푸셀은 꿈꾸는 듯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네 나이에는 부모가 하지 말라는 짓을 하면 재미있을지도 모르지."

아빠의 말에 푸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엄마 아빠가 허락해 주시면 더 재미있을 거예요."

엄마 아빠는 아무 말이 없었다.



이 책이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은 이유를 생각해보면, 답은 아주 간단하다. 작품 안에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인물이 있기 때문이다. 푸셀의 부모님은 '잔소리 없는 날' 같은 말도 안 되는 아이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인다. 그렇지 않다면 이 이야기는 시작조차 할 수 없었을 거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야기에는 항상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어른이 등장한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나 『어린 왕자』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초등학생들이 읽으면 좋은 책이지만, 성인이 읽어도 좋은 책이다.

아이들을 존중하는 법이 나와 있는 책이다. 보다 좋은 부모가, 보다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면 『잔소리 없는 날』을 읽어 보시라.

필사하기 좋은 책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필사(筆寫)는 글을 베끼어 쓰는 일을 뜻한다. 

나에게 글을 가르쳐 준 선생이 제일 처음 시켰던 일이기도 하다. 그 때 선생이 내게 준 책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다. 1000자 원고지에 한 글자 씩 베끼기 시작했다. 학교 쉬는 시간이면 원고지를 펼치고 미친 듯이 베껴 쓴 기억이 난다. 덕분에 나름대로 탄탄한 문장력을 갖게 됐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았을 때, 필사를 해서 좋은 게 몇 가지 있다.


1. 문장이 좋아진다.

내가 좋은 문장을 익히기 위해서 필사를 했고, 그 효과를 보았기 때문에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다만, 필사를 하려는 작품의 문장이 왜, 어디가, 어떻게 좋은지 알아야 효과를 볼 수 있다. 무작정 베낀다고 문장이 내 손에 익는 게 아니다.


2. 작품 이해도가 높아진다.

한 글자, 한 문장, 한 문단을 집중해서 읽어가며 필사를 한다. 당연히 작품을 집중해서 보게 된다. 자연스럽게 이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3. 머리가 아니라 손이 움직인다.

'잘 써야지' 라는 생각은 머리에서 하는 거고, 결국 쓰는 건 손이다. 운동 선수들이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세우며 반복 훈련을 하는 이유는, 실제 경기를 할 때 생각보다 빠르게 몸이 움직이는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다. 글도 마찬가지다. 절대 머리에서 쓰는 게 아니다. 쓰는 건 손이다. 머리는 당신의 손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요소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마이크 타이슨의 명언 "모두 그럴 듯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쳐맞기 전까지는."을 떠올려라. 모두 그럴 듯하게 쓸 생각을 하고 있다. 손이 움직이기 전까지는.


그렇다면 선생은 왜 수많은 책 중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골랐을까?





간결하고 담백한 문장이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짧게 쓰기를 못한다. 쓸데 없는 말을 계속 한다. 문장이 길어진다. 하나의 문장이 몇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읽는 사람은 혼란스럽다. 도대체 이 문장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쓸 때는 모른다. 다 쓰고 읽어보면, 이 쓰레기를 자신이 썼다는 사실에 고개를 들지 못한다. 이거보다 심각한 상황은 자신이 쓴 말도 안 되는 문장이 썩 괜찮다고 느끼게 되는 거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문장은 단문(短文)이다. 짧고 간결하며, 문장 하나가 하나의 의미를 담는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당신이 써놓은 쓰레기 중 하나만 들춰봐도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다. 


나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잠이 나를 눌러왔다. 나는 부서진 대문 한 짝을 끌어내 그 위에 엎드렸다. 햇살을 등에 느끼며 나는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우리 식구와 지섭을 제외하고 세계는 모두 이상했다. 아니다. 아버지와 지섭마저 좀 이상했다. 나는 햇살 속에서 꿈을 꾸었다. 영희가 팬지꽃 두 송이를 공장 폐수 속에 던져넣고 있었다.


문장을 짧게 쓴다. 명확하게 전달하려는 것만 담아낸다. 불필요한 수식어, 미사여구는 모두 제외한다. 추상적으로 쓰지 않는다. 들려주지 말고 보여줘라. 좋은 글 쓰기에 필요한 이 요소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담겨있다. 





좋은 글쓰기에 대한 책은 계속 나온다. 요즘에는 코너도 따로 있을 정도다. 나 역시 글쓰기에 관한 책 몇 권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 책들을 읽는다고 해서 자신의 글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많이 써봐야 한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과 원고지를 책상에 펼치고 계속해서 손을 움직여라.


잊지 마라.

글을 쓰는 건 머리가 아니라 손이다.


이야기의 제왕이 쓴 단편들 『스켈레톤 크루』



스티븐 킹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미국 작가다. 사실, 다른 작가들을 그리 많이 알지도 못한다. 번역체를 그리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외국 작가의 작품은 잘 보지 않는 편이다.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예외적으로 스티븐 킹의 작품이 대표적인데, 이건 내 의도라고 할 수가 없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스티븐 킹의 작품을 경험했다. 최근에 개봉한 공포 영화 『 It (그것) 』의 원작자가 스티븐 킹이다. 스티븐 킹의 작품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영화화 되고 있었다. 『미저리』, 『샤이닝』, 『미스트』, 리메이크까지 된 『캐리』 등. 공포 영화 뿐만 아니라, 부동의 영화 평점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네이버 영화 랭킹) 『쇼생크 탈출』도 스티븐 킹의 작품이 원작이다.

이 외에도 너무 많은 작품들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는가?
스티븐 킹은 너무 많은 작품들을 발표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스티븐 킹의 가장 큰 특징은 다작(多作)이다.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글을 써내려가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정작 본인은 자기처럼 글을 쓰지 않는 작가들에게 "어떻게 작품을 아주 가끔씩만 발표하는지 무척 궁금해서 못 참겠다"는 말을 남겼다. 이건 뭐, 밥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된다는 소리처럼 들린다.


작품이 워낙에 많아서 뭐부터 읽으면 좋을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럴 때는 역시 많은 게 제일이다. 소설집을 사자.

전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소설의 최고는 단편이다. 수많은 글을 쓰고, 사람들의 가슴과 머리 속에 각인되는 작품을 쓴 작가의 단편을 모아서 볼 수 있다면 최고 좋은 게 아닐까? 장담컨데 이 중에 한 편은 마음에 들 수밖에 없다.


나는 『캐리』와 같은 장편으로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었다. 『캐리』나 『미스트』는 개인적인 취향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독자를 끌어당기는 이야기였다. 스티븐 킹의 이야기에는 사람을 매료시키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그 무언가를 느껴보고 싶다면 단편집을 하나 사러 가면 된다.


『스켈레톤 크루』 (2006)는 상, 하 두 권으로 나눠져 있는 스티븐 킹의 단편 소설집이다.

작품 목록이 워낙 많아서 나열하기 귀찮지만, 친절하게 아래 적는다.


  • 안개

  • 호랑이가 있다

  • 원숭이

  • 카인의 부활

  • 토드 부인의 지름길

  • 조운트

  • 결혼 축하 연주

  • 편집증에 관한 노래

  • 뗏목


  • 신들의 워드프로세서

  • 악수하지 않는 남자

  • 비치월드

  • 사신의 이미지

  • 노나

  • 오웬을 위하여

  • 서바이버 타입

  • 오토 삼촌의 트럭

  • 우유배달부 1 : 아침의 배달

  • 우유배달부 2 : 세탁 게임 이야기

  • 할머니

  • 고무 탄환의 발라드

  • 리치


이야기 하나 하나가 전부 색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종합 과자 선물 세트를 까먹는 기분으로 책을 읽을 수 있다.

스티븐 킹은 독특한 상상력으로 "만약 ~이 ~한다면?"이라는 가정을 세우고, 거기에 살을 붙여 소설을 만드는 식으로 글을 쓴다. 마치,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진짜 같은 소설을 만들어 낸다. 때문에 그의 작품에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하권에 수록된 「고무 탄환의 발라드」에서 엿보인 작가의 발상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작품은 신문사에 편집장이 미쳐버린 소설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진행된다. 소설가는 자신의 타자기에 특별한 요정이 산다고 믿는다. '포르니트'라는 이 요정은 행운을 가져온다. 소설가는 이 요정의 힘을 빌어 글을 쓴다, 고 스스로 믿는다. 자신의 상상, 망상을 지나 광기로 탄생한 현실에서 이 소설가는 어떻게 될 것인가...... 궁금하다면 당장 책을 사러 가자.


"정말이었을 지도 모르지. 하지만 장난은 미신으로 바뀌고 끝내는 신념으로 굳어져 버렸어. 

그건...... 그래, 처음엔 가벼운 꿈이었다가 끝내 딱딱한 현실이 되어 버린 꿈 같은 거야.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딱딱한 그런 꿈 말일세."




"아무리 안정된 사람이라도 결국은 기름 바른 밧줄에 간신히 매달려 제정신을 차리고 있다는 거지. 

난 그 점을 확신하네. 이성이라는 회로는 겉만 번지르르하게 인간이라는 동물에게 장착된 거야."

이상의 작가 정신을 계승하는 문학상 작품집 『이상 문학상 작품집』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문학상이 존재한다. 어떤 문학상이든지 수상하는 일은 어렵고, 그 어려움을 뚫은 수상작들은 읽을만한 작품이라는 보증을 받게 된다. 그 중에서도 문학사상이 주최하는 '이상 문학상' 수상작들은 훌륭한 편이다. 때문에 좋아하는 작가가 목록에 없더라도 매년 사두는 책 중에 하나다. 만약, 한국 소설을 읽어보고 싶은데 딱히 알거나 떠오르는 작품, 작가가 없다면 이상 문학상 작품집을 추천한다. 저 수많은 작품들 중에 하나는 반드시 당신의 마음에 들 것이다. 여태까지 내게 그랬던 소설집이다.


1회

1977년

<서울의 달빛 0장>

김승옥

2회

1978년

<잔인한 도시>

이청준

3회

1979년

<저녁의 게임>

오정희

4회

1980년

<관계>

유재용

5회

1981년

<엄마의 말뚝>

박완서

6회

1982년

<깊고 푸른 밤>

최인호

7회

1983년

<먼 그대>

서영은

8회

1984년

<어두운 기억의 저편>

이균영

9회

1985년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이제하

10회

1986년

<흐르는 북>

최일남

11회

1987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이문열

12회

1988년

<붉은 방>

임철우

<해변의 길손>

한승원

13회

1989년

<겨울의 환>

김채원

14회

1990년

<마음의 감옥>

김원일

15회

1991년

<우리 시대의 소설가>

조성기

16회

1992년

<숨은 꽃>

양귀자

17회

1993년

<얼음의 도가니>

최수철

18회

1994년

<하나코는 없다>

최윤

19회

1995년

<하얀 배>

윤후명

20회

1996년

<천지간>

윤대녕

21회

1997년

<사랑의 예감>

김지원

22회

1998년

<아내의 상자>

은희경

23회

1999년

<내 마음의 옥탑방>

박상우

24회

2000년

<시인의 별>

이인화

25회

2001년

<부석사>

신경숙

26회

2002년

<뱀장어 스튜>

권지예

27회

2003년

<바다와 나비>

김인숙

28회

2004년

<화장>

김훈

29회

2005년

<몽고반점>

한강

30회

2006년

<밤이여, 나뉘어라>

정미경

31회

2007년

<천사는 여기 머문다>

전경린

32회

2008년

<사랑을 믿다>

권여선

33회

2009년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김연수

34회

2010년

<아침의 문>

박민규

35회

2011년

<맨발로 글목을 돌다>

공지영

36회

2012년

<옥수수와 나>

김영하

37회

2013년

<침묵의 미래>

김애란

38회

2014년

<몬순>

편혜영

39회

2015년

<뿌리 이야기>

김숨

40회

2016년

<천국의 문>

김경욱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이상문학상 [李箱文學賞] (두산백과)



2017년도 대상 수상작은 구효서의 풍경소리다.


문학상의 특징은 종이 한 장, 혹은 한 문장 차이로 순위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여기에 실린 모든 작품이 사실은 대상 수상작이라 불러도 좋은 작품이다. 이미 훌륭하다고 검증된 작품이니 아무거나 집어도 후회는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역대 수상작 중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을 몇 개 꼽자면


20회 대상 수상작 「천지간(天地間)」 윤대녕

상징이 무엇인지 공부하기 좋은 작품. 몇 번이나 분석한 작품 중 하나다.

작품 자체의 완성도가 너무 뛰어나서, 이 소설을 보면 내가 쓰는 소설을 쓰레기처럼 느껴질 정도.

소설의 치밀함과 상징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다면 추천드리는 작품이다.


34회 대상 수상작 「아침의 문」 박민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 마찬가지로 몇 번이나 분석했던 작품 중 하나.

소설이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걸 새삼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짧은 단편임에도 먹먹한 여운을 남긴다. 뒷맛이 오래도록 남아있는 글을 좋아하는 분들께 추천한다.


36회 대상 수상작 「옥수수와 나」 김영하

김영하는 글을 잘 쓰는 작가임에 틀림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로 좋아하는 작가는 아닌데, 이 작품은 좀 미쳤다. 이상 문학상 작품집은 대상 수상작을 제일 처음 배치한다. 자연스럽게 이 작품을 먼저 읽게 됐는데, 다음 작품들로 넘어가질 못했다. 너무 재미있어서. 거짓말이 아니라 별 거 없는 내용인데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고백하자면 아직까지도 36회 작품집은 이 소설 하나 말고는 보질 못했다.

최근 방송에도 나오는 김영하 작가의 작품이 궁금하다면, 굳이 길고 어지러운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지 마시고 이 작품을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


뭐, 이래봐야 개인적인 취향이기 때문에 직접 읽어보고 고르는 게 제일 좋다.

서점에 가시라.





이상 문학상이 얼마나 좋은 작품을 수록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던 건, 집 서재에서 95년도 작품집을 찾았을 때였다. 수록작들이 유독 훌륭한 건 아니었다. 이 책은 내가 산 게 아니라, 부모님이 산 거다. 지금보다 젊은 시절의 부모님이 말이다. 세대를 막론하고 이상 문학상은 언제나 좋은 작품들을 선정했다. 





나는 민달팽이처럼 기어서 뿌리에 다가간다. 

두 가닥의 뿌리가 열십자로 뻗어 나가면서, 엇갈린 지점에 저절로 생겨난 움푹한 곳에 얼굴을 파묻는다. 

실뿌리들이 소소소 일어 이마와 귓바퀴를 간질이고, 독기 서린 잔뿌리 끝이 목을 찔러오지만 얼굴을 더, 서슴서슴 주저하면서도 얼굴을 더...... 

변심한 애인이 깊이 잠들기를 기다려 가장 은밀한 곳을, 외설스러우면서도 성스러운 곳을 탐하듯.  


- 39회 대상 수상작 「뿌리 이야기」 中...... 김숨 作




이따금 표지 디자인이 심심찮게 바뀌는데, 매년 같은 표지라고 생각하다가도 모아서 확인해보면 달라져 있는 걸 볼 수 있다.

디자인 뿐만 아니라 종이 재질이나 프로필, 폰트까지 바뀌는 때도 있다. 이런 걸 하나하나 확인해보는 것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시리즈를 사서 책장에 꽂아둘 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라 생각한다.


아직 책장에 이런 작품집이 하나도 없다면, 서점에 가서 아무거나 하나 집어오는 건 어떨까.

분명, 다른 작품집도 골라오게 될 거다.


도입부의 마력 정영수의 『애호가들』(2017)




소설을 쓸 때 항상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 제목, 그리고 첫 문장이다.

제목과 첫 문장은 소설의 얼굴이다. 사람도 얼굴과 옷차림새 같은 외관으로 첫인상이 결정된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제목과 첫 문장. 이 둘이 소설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요인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서점에서 책의 앞 부분, 도입부를 살펴보고 구매를 결정한다. 때문에 가장 중요하고 쓰기 어렵다.


'도입부'라는 첫 단추만 잘 끼워도, 이미 반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서점에 가면 신간 소설의 도입부를 하나 씩 훑어본다. 독자를 끌어당기는 매력을 지닌 제목을 찾아 책을 집고, 첫 문장을 살펴본다. 열 중에 여덟은 제목에서의 매력이 첫 문장까지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책을 내려놓는다. 소설 코너를 샅샅히 뒤지고도 마음에 드는 책을 못 찾으면 코너를 떠난다. 그 날, 내 쇼핑백에 소설책은 없는 거다. 


아주 잔인한 일인데, 유독 소설만이 도입부로 평가 받는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자기개발서는 필요한 사람이라면 도입부가 어떻든 사서 본다. 뭐, 습관이나 꿈, 공부법, 시간 활용법 등등. 주제만 맞으면 많은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자기개발서를 구매한다. 에세이 역시 주로 자신과 연관이 있는 경우에는 도입부 따위를 따지지 않는다. 여행을 가기 전에 보는 여행 에세이나, 같은 직종에서 일을 하는(혹은 내가 되고 싶은 직업을 가진) 사람의 에세이 같은 건 도입부를 신경 쓰지 않는다. 시는...... 도입부를 언급하기 전에 이미 읽는 사람만 읽는다. 안타깝게도.


물론, 정말로 완전히 도입부를 신경 쓰지 않는 건 아니다. 소설에 비해 상대적으로 도입부에 대한 비중이 적다는 뜻이다.

소설은 도입부가 힘이 없으면 독자를 이야기의 끝으로 끌고 갈 수 없다. 도입부의 힘이란 '책을 끝까지 읽게하는 힘'이다. 소설은 도입부에서부터 그 힘을 발휘해야 한다. 독자는 그 힘으로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정영수의 소설이 그랬다.


도입부를 다 읽자마자 책을 덮었다. 그리고 카운터로 가서 계산을 마쳤다. 군더더기가 없어 깔끔하게 읽히는 담백한 문장도 좋았지만, 그 내용이 너무 좋았다. 매력적인 게 아니라 어떤 마력을 가진 것 같았다. 흡입을 당하듯 강하게 끌렸고, 나는 책의 첫 작품 「레바논의 밤」의 도입부만 몇 번을 곱씹었다. 그 마력의 도입부를 아래 적는다.



베이루트의 성벽 앞에 현자라 알려진 노인이 있었다. 어느날 한 남자가 그에게 물었다.

"왜 신은 우리에게 말을 걸지 않을까요? 왜 그의 뜻을 전달하려 하지 않는 걸까요?"

그 말을 들은 노인은 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벽을 따라 날고 있는 나방이 보이시오? 저 나방은 벽을 하늘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요. 당신이 만약 벽을 하늘로 생각한다면, 저것은 나방이 아니라 새겠지. 그게 아니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소. 하지만 나방은 우리가 그것을 안다는 것은 물론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지. 당신은 나방에게 그것을 알려줄 수 있겠소? 나방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당신의 뜻을 전달할 수 있느냔 말이오."

"모르겠습니다. 나방에게 어떻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겠습니까."





노인은 남자의 말이 끝나자 손바닥으로 나방을 탁 쳐서 죽였다.

"보시오 이제 나방은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과 나의 의사를 알게 되었소."



이 도입부를 읽고는 뒷통수를 얻어 맞는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통틀어서 이만한 문장, 문단이 없었다.


이야기의 끝을 보고 싶다면, 당장 이 책을 사러 가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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