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8.01.12 감정적인 문장의 소유자 김연수 『사월의 미, 칠월의 솔』
  2. 2017.10.23 이야기의 제왕이 쓴 단편들 『스켈레톤 크루』
  3. 2017.10.20 도입부의 마력 정영수의 『애호가들』(2017)
  4. 2017.10.20 가성비 갑! 박민규의 소설집 『더블』(2010)

감정적인 문장의 소유자 김연수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전에는 박민규처럼 톡톡 튀고 독자를 현혹시키는 글에 끌렸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글에도 끌리기 시작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작가가 김연수다.


김연수는 93년에 시로 등단을 했지만, 이후 소설을 발표하며 왕성한 활동을 보인 작가다. - 이렇게 말해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게 슬픈 일이다. 나에게도 하는 소리지만 얼마나 책을 안 읽는다는 말인가 - SNS에서 이런 글귀를 본 적이 있을 거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건 나의 일이었다'


이 글귀를 쓴 사람이 바로 김연수 작가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에 등장하는 글귀다. 김연수는 장, 단편 가리지 않고 많은 글을 쓴 작가다. 덕분에 김연수의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딱히 읽을 거리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이라면 김연수 작가의 작품을 하나 씩 펼쳐보는 걸 추천한다. 나는 군대에 있을 때 읽기 시작했다.



소설집으로는 가장 최근(2013)에 출간된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이 오늘 소개할 책이다.


수록작으로 「벚꽃 새해」 「깊은 밤, 기린의 말」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일기예보의 기법」 「주쌩뚜디피니를 듣던 터널의 밤」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동욱」 「우는 시늉을 하네」 「파주로」 「인구가 나다」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가 있다. 총 11 작품이다. 김연수 작품의 장점이라면 쉽게 읽힌다는 걸까. 나는 김연수 작가의 글을 읽을 때 단 한 호흡도 쉰 적이 없다. 한국 작가 중에서는 유일했던 것 같다. 여류 작가들은 나를 숨막히게 하고, 박민규와 같은 톡톡 튀는 글은 이따금 잠시 책을 내려놓게 만드는 충격을 선사하기도 하니까, 그럴 수가 없다. 김연수는 옆집 아저씨가 자기 얘기를 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글을 쓴다.


그 옆집 아저씨가 굉장한 로맨티스트에 감정 넘치는 게 특이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을 재미있게 읽었다. 꼴에 글쟁이라고 뭔가를 쓰는 이야기에는 언제나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소설가라니 아주 흥미롭습니다"라고 말하더니 그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잠깐 내 얘기를 들을 시간이 있겠습니까?"라고 지갑을 손에 든 채 그가 내게 물었다. 그때 나는 글을 쓰는 건 고사하고 책을 읽을 마음도 들지 않아서 소설가로서는 폐업상태였고, 따라서 김일성대학교에 입학해서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노인이 소설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인생담에 전혀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


-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中


소설은 하나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문단으로, 문단은 문장으로, 문장은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


습작을 하거나 읽다보면 어느 부분에 힘이 들어갔고, 힘을 뺐는지 보일 때가 있다. 의도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의 미숙함을 느끼고 좌절할 경우가 있다. 가장 좋은 글은 힘이 들어갔는지, 빠졌는지 전혀 보이지 않는 글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가슴으로 와서 울려 퍼지는 글. 김연수는 굉장히 아무렇지도 않게 글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읽는 입장에서는 말이다.



의식하지 않고 감정적인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김연수 작가의 작품을 읽는 걸 추천한다.


어떤 작품이라도 쉬이 편하게 읽어내려갈 수 있을테니.




이야기의 제왕이 쓴 단편들 『스켈레톤 크루』



스티븐 킹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미국 작가다. 사실, 다른 작가들을 그리 많이 알지도 못한다. 번역체를 그리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외국 작가의 작품은 잘 보지 않는 편이다.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예외적으로 스티븐 킹의 작품이 대표적인데, 이건 내 의도라고 할 수가 없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스티븐 킹의 작품을 경험했다. 최근에 개봉한 공포 영화 『 It (그것) 』의 원작자가 스티븐 킹이다. 스티븐 킹의 작품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영화화 되고 있었다. 『미저리』, 『샤이닝』, 『미스트』, 리메이크까지 된 『캐리』 등. 공포 영화 뿐만 아니라, 부동의 영화 평점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네이버 영화 랭킹) 『쇼생크 탈출』도 스티븐 킹의 작품이 원작이다.

이 외에도 너무 많은 작품들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는가?
스티븐 킹은 너무 많은 작품들을 발표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스티븐 킹의 가장 큰 특징은 다작(多作)이다.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글을 써내려가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정작 본인은 자기처럼 글을 쓰지 않는 작가들에게 "어떻게 작품을 아주 가끔씩만 발표하는지 무척 궁금해서 못 참겠다"는 말을 남겼다. 이건 뭐, 밥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된다는 소리처럼 들린다.


작품이 워낙에 많아서 뭐부터 읽으면 좋을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럴 때는 역시 많은 게 제일이다. 소설집을 사자.

전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소설의 최고는 단편이다. 수많은 글을 쓰고, 사람들의 가슴과 머리 속에 각인되는 작품을 쓴 작가의 단편을 모아서 볼 수 있다면 최고 좋은 게 아닐까? 장담컨데 이 중에 한 편은 마음에 들 수밖에 없다.


나는 『캐리』와 같은 장편으로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었다. 『캐리』나 『미스트』는 개인적인 취향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독자를 끌어당기는 이야기였다. 스티븐 킹의 이야기에는 사람을 매료시키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그 무언가를 느껴보고 싶다면 단편집을 하나 사러 가면 된다.


『스켈레톤 크루』 (2006)는 상, 하 두 권으로 나눠져 있는 스티븐 킹의 단편 소설집이다.

작품 목록이 워낙 많아서 나열하기 귀찮지만, 친절하게 아래 적는다.


  • 안개

  • 호랑이가 있다

  • 원숭이

  • 카인의 부활

  • 토드 부인의 지름길

  • 조운트

  • 결혼 축하 연주

  • 편집증에 관한 노래

  • 뗏목


  • 신들의 워드프로세서

  • 악수하지 않는 남자

  • 비치월드

  • 사신의 이미지

  • 노나

  • 오웬을 위하여

  • 서바이버 타입

  • 오토 삼촌의 트럭

  • 우유배달부 1 : 아침의 배달

  • 우유배달부 2 : 세탁 게임 이야기

  • 할머니

  • 고무 탄환의 발라드

  • 리치


이야기 하나 하나가 전부 색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종합 과자 선물 세트를 까먹는 기분으로 책을 읽을 수 있다.

스티븐 킹은 독특한 상상력으로 "만약 ~이 ~한다면?"이라는 가정을 세우고, 거기에 살을 붙여 소설을 만드는 식으로 글을 쓴다. 마치,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진짜 같은 소설을 만들어 낸다. 때문에 그의 작품에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하권에 수록된 「고무 탄환의 발라드」에서 엿보인 작가의 발상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작품은 신문사에 편집장이 미쳐버린 소설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진행된다. 소설가는 자신의 타자기에 특별한 요정이 산다고 믿는다. '포르니트'라는 이 요정은 행운을 가져온다. 소설가는 이 요정의 힘을 빌어 글을 쓴다, 고 스스로 믿는다. 자신의 상상, 망상을 지나 광기로 탄생한 현실에서 이 소설가는 어떻게 될 것인가...... 궁금하다면 당장 책을 사러 가자.


"정말이었을 지도 모르지. 하지만 장난은 미신으로 바뀌고 끝내는 신념으로 굳어져 버렸어. 

그건...... 그래, 처음엔 가벼운 꿈이었다가 끝내 딱딱한 현실이 되어 버린 꿈 같은 거야.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딱딱한 그런 꿈 말일세."




"아무리 안정된 사람이라도 결국은 기름 바른 밧줄에 간신히 매달려 제정신을 차리고 있다는 거지. 

난 그 점을 확신하네. 이성이라는 회로는 겉만 번지르르하게 인간이라는 동물에게 장착된 거야."

도입부의 마력 정영수의 『애호가들』(2017)




소설을 쓸 때 항상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 제목, 그리고 첫 문장이다.

제목과 첫 문장은 소설의 얼굴이다. 사람도 얼굴과 옷차림새 같은 외관으로 첫인상이 결정된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제목과 첫 문장. 이 둘이 소설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요인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서점에서 책의 앞 부분, 도입부를 살펴보고 구매를 결정한다. 때문에 가장 중요하고 쓰기 어렵다.


'도입부'라는 첫 단추만 잘 끼워도, 이미 반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서점에 가면 신간 소설의 도입부를 하나 씩 훑어본다. 독자를 끌어당기는 매력을 지닌 제목을 찾아 책을 집고, 첫 문장을 살펴본다. 열 중에 여덟은 제목에서의 매력이 첫 문장까지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책을 내려놓는다. 소설 코너를 샅샅히 뒤지고도 마음에 드는 책을 못 찾으면 코너를 떠난다. 그 날, 내 쇼핑백에 소설책은 없는 거다. 


아주 잔인한 일인데, 유독 소설만이 도입부로 평가 받는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자기개발서는 필요한 사람이라면 도입부가 어떻든 사서 본다. 뭐, 습관이나 꿈, 공부법, 시간 활용법 등등. 주제만 맞으면 많은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자기개발서를 구매한다. 에세이 역시 주로 자신과 연관이 있는 경우에는 도입부 따위를 따지지 않는다. 여행을 가기 전에 보는 여행 에세이나, 같은 직종에서 일을 하는(혹은 내가 되고 싶은 직업을 가진) 사람의 에세이 같은 건 도입부를 신경 쓰지 않는다. 시는...... 도입부를 언급하기 전에 이미 읽는 사람만 읽는다. 안타깝게도.


물론, 정말로 완전히 도입부를 신경 쓰지 않는 건 아니다. 소설에 비해 상대적으로 도입부에 대한 비중이 적다는 뜻이다.

소설은 도입부가 힘이 없으면 독자를 이야기의 끝으로 끌고 갈 수 없다. 도입부의 힘이란 '책을 끝까지 읽게하는 힘'이다. 소설은 도입부에서부터 그 힘을 발휘해야 한다. 독자는 그 힘으로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정영수의 소설이 그랬다.


도입부를 다 읽자마자 책을 덮었다. 그리고 카운터로 가서 계산을 마쳤다. 군더더기가 없어 깔끔하게 읽히는 담백한 문장도 좋았지만, 그 내용이 너무 좋았다. 매력적인 게 아니라 어떤 마력을 가진 것 같았다. 흡입을 당하듯 강하게 끌렸고, 나는 책의 첫 작품 「레바논의 밤」의 도입부만 몇 번을 곱씹었다. 그 마력의 도입부를 아래 적는다.



베이루트의 성벽 앞에 현자라 알려진 노인이 있었다. 어느날 한 남자가 그에게 물었다.

"왜 신은 우리에게 말을 걸지 않을까요? 왜 그의 뜻을 전달하려 하지 않는 걸까요?"

그 말을 들은 노인은 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벽을 따라 날고 있는 나방이 보이시오? 저 나방은 벽을 하늘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요. 당신이 만약 벽을 하늘로 생각한다면, 저것은 나방이 아니라 새겠지. 그게 아니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소. 하지만 나방은 우리가 그것을 안다는 것은 물론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지. 당신은 나방에게 그것을 알려줄 수 있겠소? 나방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당신의 뜻을 전달할 수 있느냔 말이오."

"모르겠습니다. 나방에게 어떻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겠습니까."





노인은 남자의 말이 끝나자 손바닥으로 나방을 탁 쳐서 죽였다.

"보시오 이제 나방은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과 나의 의사를 알게 되었소."



이 도입부를 읽고는 뒷통수를 얻어 맞는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통틀어서 이만한 문장, 문단이 없었다.


이야기의 끝을 보고 싶다면, 당장 이 책을 사러 가시라.

가성비 갑! 박민규의 소설집 『더블』(2010)



일전에 한국 소설을 읽으라 얘기해놓고, 아무런 책도 소개해주지 않는다면 무책임한 게 아닐까 싶어서 꺼내든 책이다.

가성비를 따졌을 때 최고라고 생각되는 소설집, 『더블』 (2010)이다. 


책에서 가성비를 따지는 게 웃기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쨘 - !





보시다시피 소설집은 Side A, B 두 권으로 두성되어 있다. 안에 수록된 작품은 


  • 근처

  • 누런 강 배 한 척

  • 굿바이, 제플린

  • 끝까지 이럴래?

  • 양을 만든 그분께서 당신을 만드셨을까?

  • 굿모닝 존 웨인

  • 축구도 잘해요

  • 크로만, 운

  • 낮잠

  • 루디

  • 𪚥

  • 비치보이스

  • 아스피린

  •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

  • 아치

  • 슬(膝)


총 18 작품이다. 많기도 하지.

거기에 일러스트가 그려진 Double Art Book도 함께 들어있으니, 가성비를 따질만 하지 않은가?





박민규 작가는 괴짜다. 그의 작품 세계는 독특함으로 가득 차 있다. 독보적인 세계관으로 독자들을 매혹시킨다. 작품집에 있는 모든 작품이 재미있다.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던 몇 작품을 소개한다.



1. 「근처」


Side A에 첫번째로 수록되어 있는 작품이다.

책을 펼치면 나오는 첫 작품이라 아무 생각 없이 읽었는데, 내가 아는 박민규의 작품치고는 얌전한 느낌이었다. 

뭔가 실망스러운 느낌이 들 때 쯤, 충격적일 정도로 뒷통수를 때리는 포인트가 등장한다. 작품의 클라이막스가 끝내주는 작품.



나는 기쁘고, 기쁘지도 않다. 나는 슬픈데 슬픈 것만도 아니다. 나는 화가 나지만 어째서 화가 나는지 모르겠다. 나는 아프지만 아프지 않은 부분도 있다. 나는 즐겁고, 실은 즐거울 하등의 이유가 없다. 모르겠다. 느끼는 모든 감정을 추스르고 섞으면 결국 체념이 된다. 그 것을 캄캄하고, 끝없이 깊고, 풍부하다. 인간이 이를 곳은

 

결국 체념이다.



2.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


처음 이 제목을 보자마자 머릿속은 '대체 이 새끼는 뭐하는 새끼지?'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이 작품을 다 읽은 다음에는 '대체 이 새끼는 뭐하는 씨발 새끼지?'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상상력이 기발하다는 말로는 부족 오지고, 지리는 각 하다. 진부한 표현인데 기상천외한 작가의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언어유희란 이 정도는 되야 붙을 수 있는 수식어다.


중심에, 작지만 아주 단단한 모습으로… 그런 기분을 알까 모르겠다. 마누라의 딜도는 수입 명품도 고급 진동형도 아니었다.


일반 막대형이었다.





3. 「𪚥」


가장 획 수가 많은 한자라고 알려져 있는 말 많을 절, 수다스러울 절이다. 龍(용 용)이 네 개 모여서 만들어진 한자인데, 작품을 읽으면 제목을 왜 이렇게 지었는지 알 수 있다. 이 한자는 컴퓨터에서 쓰기 어려운 글자다. 쳐서는 쓸 수 없고 유니코드를 사용해서 입력해야 되기 때문인데, 예전에는 이 방법을 몰라서 龍을 네 개 써버리도 했다.


개인적으로 특별한 작품이다. 글을 가르쳐 준 선생이 내게 추천한 첫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장르 소설, 우리나라의 판타지나 무협지에 빠져있을 시기였다. 그렇지만 그런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한 내 눈으로 봐도 우리나라 판타지나 무협지는 수준이 그리 높지 않았는데, 중학생 시절 사이트에 연재한 작품이 출판 제의까지 받으면서 그런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제의를 거절한 이유는 내가 쓴 작품을 다른 누군가에게 보여주면 창피해서 죽어버릴 거라는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 내게 선생이 이 작품을 추천했다. 장르 소설이 아니더라도 무협을 배경으로 소설을 쓸 수 있다. 장르따위를 구분하는 건 멍청한 짓이다. 내게 그런 인식을 강하게 심어준 작품이고, 박민규 작가가 내게는 그런 인물이다.


작품의 배경은 현대지만 등장인물은 절대무림의 사천왕, 동방의 四龍이다. 이제 왜 제목이 𪚥인지 짐작이 가는가?

불사의 육신을 가진 무림의 절대 고수들이 현대를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작가의 해학이 얼마나 뛰어난지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께서 모이면 뭘요... 뭘... 정부라도 엎을 겁니까? 네 분이 힘 합치면 뭐... 삼성한테 이길 수 있습니까?



가성비는 단순히 양이 많아서 쓴 수식어가 아니다.

박민규의 작품을 이렇게 모아서 볼 수 있기 때문에 쓴 수식어다.

기욤 뮈소의 작품이 하늘 높이 올라가는 기다란 한 발짜리 폭죽이라면, 박민규의 『더블』은 우리 바로 앞에서 언제 끝날지 모르도록 계속해서 터지는 18발짜리 폭죽이라고 하겠다. 그러고보니 수록된 작품이 18 개라니... 이 새끼작가라면 의도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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