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예술가들을 위한 안내서『예술가는 절대로 굶어 죽지 않는다』


단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말이었다.


처음 문예창작과를 지원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걔들이 돈을 잘 벌지는 못한다"고 했다. 이 말은 사실이다. 우리 머리에 기억되는 작가들은 글을 쓰는 사람들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 중에서 한국인을 골라보자.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예술을 하기에 썩 좋은 환경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문예창작과를 고집했고, 들어가서, 공부하고, 별 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졸업했다. 특별한 기술이나 특기도 없는 나는 사회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으로 분류됐다. 실제로 내게 특별한 기술이나 특기가 없다는 게 아니라, 사회의 기준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글을 쓴다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처럼 보인다. '이 정도는 나도 쓰겠다'는 소리가 한글만 알면 튀어나오는 것 같다.


조금 더 툴툴 거리자면, 디자인 계열은 눈에 딱 보이는 포토폴리오라도 가지고 졸업을 하는데 우리는 그런 게 없다.


내게 남은 건 졸업작품집 한 권인데, 이건 어디 포토폴리오로 써먹기도 어려운 수준이다. 누가 읽어주지도 않는다. 사용처가 있으면 라면 받침대 정도인데, 나 때는 졸업생이 많아 책이 두꺼워지는 바람에 이마저도 쓸모가 없는 수준이었다. 


내 고집은 계속 됐다.


원하는 글을 쓰면서 먹고 살겠다고 계속 고집했고, 몇 번인가 새로운 일을 시도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쳤다. 졸업을 할 때가 되어서야 현실을 받아드렸다. 글을 쓰면서 먹고 살기에 나는 너무 보잘 것 없는 글쟁이었다. 그 정도 수준으로 글을 쓸 연마하지 못한, 일개 습작생에 불과했다. 나는 훈련을 하기 위해 다른 일을 해야했다. 그래서 학교에서 조교를 하고, 스타트업이랍시고 1년 동안 목공예를 배워서 프리마켓을 전전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학원 선생을 잠깐하고, 지금은 모두 무급으로 게임을 개발하고 있는 소규모 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사회적으로 보면 백수다.


나도, 글도 방황 중이다. 순수 문학을 쓰다, 장르 소설을 쓰다, 에세이나 자기계발도 쓰고, 이제는 게임 시나리오도 쓴다. 모두 내가 원해서 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글 자체보다 돈을 목적으로 접근했던 게 많았다. 물론, 잘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스스로도 계속해서 되뇌였다.


예술가는 어차피 굶주린 일이다, 라고.



사실, 듣고 싶었던 말은 이게 아니었는데.


누구나 자기보다 잘 나가는 이를 보고 꿈을 키운다. 높이 있는 사람을 보고 목표로 삼는다. 롤모델을 정한다. 나에게는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이 그랬다. 이런 작품을 쓰고 싶다, 고 생각하는 마음- 혹은 이것보다는 잘 쓰겠다, 는 자만이 나에게 글을 쓰게 만들었다. 당시에는 그들이 얼마나 돈을 많이 버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조앤. K. 롤링(해리포터의 작가)이 얼마나 불행한 삶은 살았는지 이야기한다.


그녀는 가난한 이혼녀에 불과했다. 생활 보조금을 받으며 생활할 정도로 가난했고, 아이에게 분유를 먹일 돈이 없어 물을 타 먹이는 삶을 살았다. 불행한 삶에서 탈출하기 위해 그녀는 간직하고 있던 상상을 시작으로 글을 써서 시대의 한 획을 긋는 소설가가 되었다.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그녀의 작품을 알고 있으며, 영화로도 제작되고, 표지 리메이크가 되어 재판될 정도로 『해리포터』 시리즈는 대작이 되었다. 그녀는 호화스러운 삶을 누리고 있고, 앞으로 그 삶이 무너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녀가 가난했던 시절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술가는 배고파야 한다는 경직되고 오래된 사고 때문이다.


우리는 고군분투하며 예술 때문에 괴로워하는 예술가를 보는 데 익숙하다. 이는 가장 익숙하다는 이유 하나로 매력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러한 서사를 듣고 또 들어왔다. 익숙하기 때문에 그저 받아들이고 싶을 수도 있다.


저자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단순히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니라, 과거 이미 부유하게 살아온 예술가들을 짚어준다. 실제로 나는 이 책에서 내가 고민하던 대부분의 사항을 볼 수 있었다. 고민이 있으면 해결책도 있는 법. 간만에 순식간에 읽어내려간 책이다.



나는 단 한 번도 부족한 삶을 살지 않았다.


때문에 대학에 입학했을 당시 그런 내 삶을 원망한 적도 있었다. 차라리 내가 많은 역경과 고난을 겪었더라면 보다 깊은 글을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병신 같은 생각이었다. 만약, 그랬다면 나는 글을 쓰겠다는 꿈은 커녕 생각도 갖지 못했을 거다. 우리는 흔히 주위 환경이 바뀌면 스스로 크게 바뀔 거라고 믿는다. 그렇지만 책에서 말한 것처럼, 예술이 있는 곳에 가는 것으로 예술가가 될 수는 없다.


당신이 무엇이 될 것인지 결정했기 때문에 예술가가 될 수 있다.


언제가 중요한 건 자신이다.



습작을 보여주는 걸 망설이지 마라.


이건 학교를 다니는 동안 느낀 거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들 소심한지 모르겠다. 물론, 식당에서 종업원을 크게 부르지 못하는 나 자신을 포함한 말이다. 많은 후배들이 자기 작품을 보여주기를 꺼려했다. 학교에서 일할 때, 디자인 학과 학생들에게 작품이나 그림을 보여달라고 하면 하나 같이 손사래를 쳤다. 


아무에게 보여주지 않는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다.


예술은 죄가 아니므로,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물론, 어렵다는 건 알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금 내 생활을 반성하고, 스스로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감사하다.


만약, 예술을 하고 있거나 할 예정이라면 한 번 쯤 읽으면 좋은 책이다. 아니, 그냥 다 읽었으면 좋겠다. 예술가가 배고프다는 고정관념이 사라지고, 예술에 가치가 보다 올바르게 치러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