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런 빨간 머리 소녀 『빨간머리 앤』


어린 시절 만화로 먼저 읽었던 작품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 읽었던 수많은 이야기는 원본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아이들이 읽기에는 어렵고 너무 긴 이야기가 많다. 『빨간머리 앤』 역시 마찬가지다. 어린 시절에는 아주 짧은 이야기로만 기억되고 있다. 아주 몇 개의 에피소드만 실려있었다. 본디 이렇게 길고 긴 이야기였는데 말이다. 이 책을 비롯해서 어린 시절 우리가 읽었던 책들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동화를 원본으로 읽는 일은 새롭고 익숙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 이 출판사의 책을 산 이유는 동화를 다시 읽고 싶다는 것보다는 일러스트가 너무 예뻤기 때문이다.


출판사 인디고 INDIGO는 다양한 시리즈의 책, 주로 어렸을 때 읽으면 좋을, 읽었을 법한 책을 펴내고 있다. 특이한 점은 개성있는 일러스트를 삽입한다는 것이다. 『어린 왕자』나 『오즈의 마법사』, 『키다리 아저씨』 등등. 모두 일러스트들의 개성이 돋보이는 예쁜 삽화로 가득하다. 인디고는 이 점을 이용해서 다이어리나 노트, 텀블러 같은 굿즈를 생산하여 판매한다. 인사동 쌈짓길에 가면 판매점이 있으니, 인디고 출판사의 일러스트를 좋아하는 분들은 한 번 방문해도 좋다.


나는 거기서 십 여 만원 상당의 제품을 구매했.......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앤을 읽다보면 스스로 얼마나 나이를 먹었는지 느끼게 된다.


어렸을 때는 앤의 행동을 보면서 뭔가 특별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으레 그렇게 해야 마땅한 것 아닌가,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와서 보면 이 빨간 머리 소녀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새삼 깨닫게 된다.


"아, 희망 하나가 또 사라졌네요. 제 인생은 그야말로 희망이 묻힌 묘지예요. 이건 언젠가 책에서 읽은 구절인데요. 무언가 실망할 때마다 되풀이해서 말하며 위안을 얻곤 해요."

"그게 어떻게 위로가 된다는 건지 모르겠구나."

"뭐랄까, 마치 제가 책속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근사하고 낭만적으로 들리거든요. 전 낭만적인 것을 아주 좋아해요. 희망이 묻힌 묘지는 누구나 상상할 수 있을 만큼 낭만적인 말이잖아요, 안 그래요? 제가 그렇다는 게 오히려 기쁠 정도예요. 오늘도 반짝이는 호수를 지나가나요?"

"베리 연못 쪽으론 가지 않는다. 반짝이는 호수라는 게 그 연못을 두고 하는 소리라면 말이다. 우린 바닷가 길로 갈 거야."


"어머, 모르세요, 아주머니? 한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실수에는 틀림없이 한계가 있다고요. 제가 그 한계까지 간다면 더 이상 실수 할 일은 없을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마음이 놓여요."



어린 시절에는 몰랐던 사실을 깨닫기도 한다.


나는 앤에게 두 번째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앤의 시리즈가 더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려나. 


오랜 시간 묵혀두었던 선물 상자를 다시 열어보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아, 나처럼 인디고의 일러스트에 반한 이들에게도- 내가 유일하게 출판사를 기준으로 수집하고 있는 책들이다. 언젠가 내가 가지고 있는 인디고 책 모두를 소개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