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생들에게 위험한 『모든 것의 기원』


인간은 누구나 뿌리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최초는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어쩌면 이런 물음이 우리의 본질을 구성하는 건 아닐까. 때문에 특정의 기원이나 근원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눈이 가고 귀가 열리기 마련이다. 누가봐도 이과생들이 좋아하게 생긴 이 책을 펼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문제는 이 책의 수준이 너무 높은 동시에, 너무 낮다는 것이었다.


우선 책의 내용은 좋다. 내가 이해하지 못해서 그렇지, 저자 데이비드 버코비치는 예일대에서 지구물리학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다.


이 책은 예일대학교의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모든 것의 기원 Origins of Everything'이라는 썰렁한 간판을 걸고 한 학기 동안 진행되었던 세미나를 엮은 것이다. 세미나의 목적은 검증 가능한 '커다란' 가설을 통해 학생들에게 과학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 후 세미나의 내용을 출판하기로 결정했을 때, 편집자는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교양과학서'를 요구했으나, 솔직히 말해서 나는 말랑말랑한 과학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도 겁먹을 필요 없다. 뭔가 있어 보이는 듯 어려운 용어를 남발하면서 독자들을 낚는 치사한 짓은 최대한 자제하고, 구체적인 설명은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만 할 것이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듯 이 책은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교양과학서'가 아니며, 뭐가 있어 보이는 듯 어려운 용어를 남발하면서 독자들을 낚는 치사한 짓은 하지 않고, 구체적인 설명을 최소화했다. 그 결과로 문과생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과생 전용 책이 되어버렸다.



한 장을 넘기기도 전에 난생 처음 들어보는, 혹은 SF영화나 소설에서나 들어봤던 단어들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앞서 예고한 대로 그것들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다. 마치 '이 정도는 다 알잖아?'라는 듯. 덕분에 책을 읽는 속도가 두 배는 더 느려지는 것 같다. 책을 읽을 때 갖춰야 할 기본 소양 중 하나는 모르는 단어를 찾아보는 건데, 이건 페이지 하나를 넘기기도 어려울 정도니 말 다 했다.


게다가 저자의 유머감각이 우주 탄생만큼이나 오래된 구식이다.


우주의 역사는 거꾸로 써나가는 것이 제일 좋다. "사역 의주우……"처럼 글자를 거꾸로 쓰자는 말이 아니라, 태초부터 지금까지 일어났던 사건들을 시간의 역순으로 거슬러가보자는 뜻이다.


이 문장을 본 필자의 지인은 '거지 같은 말을 써놓은 책'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바로 책을 덮었다. 과학적 수준은 높은데, 문학적 수준이 낮다. 읽는 중간중간 이렇게 참을 수 없는 농담이 나오는데, 그때마다 책을 덮고 싶은 충동이 인다. 여러모로 인내심이 요구되는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물론. 이전 포스팅에서도 끊임없이 말했지만 책은 인간이 사고하도록 도와주는 도구다. 내가 알지 못하는 분야의 책은 새로운 회로로 사고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책을 읽으면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진다는 뜻은, 사고할 수 있는 공간이 확장된다는 의미다. 때문에 전혀 모르는 분야의 책일지라도 분명 도움이 된다.


세상에 나쁜 책은 없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독자들은 이 책에 수록된 내용을 절대적 진리로 받아들이지 말고,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대충 훑어본 경치'쯤으로 생각해주기 바란다.


사실, 이렇게 무거운 책은 최대한 가볍게 읽는 게 좋다. 휙휙휙 페이지를 넘기고, 다시 한 번 넘기는 식으로 반복해서 읽는 편이 좋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과학도가 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



오스트랄로 피테쿠스의 특징은 직립 보행과 도구를 사용할 줄 알았다는 것이다.


사고의 영역을 확장시켜줄 도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하지 않는다는 건, 스스로를 퇴화시키는 짓이다. 겁먹지 말고, 가볍게 들면 좋을 책이다. 










...... 그래도 문과생들은 좀 피해가도 괜찮을 거 같다. 너무 어려워서 ㅠ


생각해보면 예일대 인문계열도 못가는 수준인데......ㅠ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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