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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3.04 『모아나 Moana』에 왜 멍청한 닭이 나올까? 1
  2. 2018.01.14 디즈니가 2018년 처음으로 선사하는 감동『코코 COCO』

『모아나 Moana』에 왜 멍청한 닭이 나올까?


2016년에 개봉한 디즈니의 극장판 애니메이션 『모아나 Moana』는 꽤 의미있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라푼젤 Tangled』(2010)을 시작으로 디즈니는 기존의 전통적인 플롯을 부수고, 새로운 형태의 플롯을 만들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금빛 머릿결을 가진 공주는 디즈니 역사상 자신의 손으로, 왕자나 기사나 타인만의 힘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운명을 개척해냈다. 이후 『겨울왕국 Frozen』(2012)에서는 공주가 더 이상 왕자의 영향으로 변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그녀들 스스로 이야기를 완성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겨울왕국 Frozen』은 역대 애니메이션 중 최고의 흥행 성적을 기록한다. 


『주토피아 Zootopia』(2016)에서 나는 디즈니가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 하려는 목소리를 들었다. 다양한 동물들을 빌어 다양한 형태의 인간을 묘사했고, 그들이 어떻게 통합하는지 보여줬다.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모아나』와 가장 최근에 개봉한, 물론 제작사는 픽사지만 2006년 인수합병 됐으니 두 제작사가 지향하는 방향을 따로 볼 필요는 없기에, 『코코 Coco』는 완전히 다른 인종과 생소한 문화가 배경인 작품이다.


이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차근차근 해보도록 하고, 오늘은 『모아나』에 등장하는 인상적인 사이드 캐릭터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바로 이 헤이헤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멍청한 닭이다.


감독이 폴리네시아 탐방을 떠났을 때, 돼지와 닭이 어디서나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한다. 의외로 섬나라 사람들에게도 친근한 동물인 것 같다.


이 닭의 멍청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돌을 삼키기도 하고,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해 바다로 빠지는 건 귀여운 수준이고, 장작이 타고 있는 불 속에 들어가 앉기도 한다. 제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이 닭이 어째서 모아나의 항해 파트너가 되었을까?



< 출처 : 나무 위키 >




대부분의 사람들도 이 멍청한 닭이 모아나에게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몇몇은 차라리 마을에서 보았던 돼지(푸아)가 함께 항해를 떠났어야 되는 게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헤이헤이가 모아나와 가장 잘 어울리는 캐릭터라고, 확신한다.


이 작품의 주제는 모아나가 자신의 정체성, 그러니까 '나는 누군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가며 그 답을 찾는 행동에 있다. 모아나 뿐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찰하는 캐릭터가 여럿 등장하는데 정리를 하면 이렇다.


1. 바다로 나가고 싶은데, 부족의 규율 때문에 나가지 못하는 모아나

2. 인간에게 버려졌지만, 인간의 사랑을 갈구하는 반인반신 마우이

3. 생명을 창조하다가, 반대로 파괴하게 되는 심장을 빼앗긴 여신 데 피티


위 세 캐릭터는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며,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으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외에 다른 캐릭터들은 자신의 정체성 정립을 포기하거나, 이미 완성된 상태로 등장한다. 예를 들면 모아나의 할머니는 누구보다 뚜렷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죽음 이후에 자신의 모습까지 스스로 정하는 행동으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모아나의 아빠는 과거 친구를 잃었던 트라우마에 갇혀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를 멈췄다. 실패에 의해 도전을 포기한 셈이다. 반대로 바다가재 괴물인 타마토아는 자신의 정체성이라고는 하나도 찾아 볼 수 없는 존재다. 타마토아가 보물을 긁어 모으는 이유가 노랫말에 나오는데, 그에 따르면 '마우이의 문신이 멋있었기 때문'이다. 타인의 기호를 자신의 것으로 믿어버린다. 그 모습은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사실은 빈 껍데기나 다름 없는 존재임을 나타낸다.


헤이헤이는 이 작품에서 누구보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 존재다.


헤이헤이가 보여주는 행동을 보면 알겠지만, 애초에 자기가 누구인지도 인지하지 못하는 듯 하다. 멍청하면 용감하다고 하지 않나. 누구나 모르기 때문에 희망을 가질 수 있고, 용기를 낼 수 있다. 모아나가 처음 암초 밖으로 넘어가려 했을 때, 배에 함께 타고 있던 건 헤이헤이가 아니라 돼지 푸아였다. 그러나 배에서 떨어져 바다에 빠져 목숨을 잃을 뻔한 푸아는, 가까스로 육지에 상륙하자마자 바다로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 처음 푸아가 노를 물고 배에서 모아나를 기다렸던 모습을 생각하면, 너무나 상반되는 모습이다. 푸아는 한 번의 시도를 했고, 실패를 경험했다. 정확히 실패를 알고 있기 때문에 두려움을 갖게 됐고,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채 바다로 나오기를 거부하게 된다. 모아나의 아빠 역시 푸아와 다를 것 없는 포지션을 갖는다.


헤이헤이는 주어진 것에 그저 만족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모아나와 비슷하다. 마우이는 모아나를 '공주'라고 불렀고, '왜 마을을 떠난 거야? 거기서 편하게 살지?'라고 묻는다. 모아나는 스스로 공주가 아니라고, 사실 그녀는 부족장의 딸이니까 공주가 아니기는 하지만, 부정한다. 그러나 마우이의 말처럼 마을에서 편하게 기다릴 수도 있었다. 다른 누군가가 나타나 이 사태를 해결해주기를 말이다. 그러나 모아나는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스스로 나선다. 


이 점에서 헤이헤이와 모아나가 어떻게 닮았다고 할 수 있냐면, 작품 내내 헤이헤이는 마우이가 주는 모이를 한 톨도 먹지 않는다. 계속 바닥을 쪼기만 할 뿐, 모이는 한 톨도 먹지 않는다. 그래, 고작 그 모습 하나만으로 헤이헤이는 모아나와 닮아있다.


모아나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도 하지만, 다른 이들의 정체성을 찾아주기도 한다. 마우이 역시 모아나를 통해서 갈고리 없이도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얻게 되었고, 심장을 뺏긴 채 악마로 변해있던 여신의 심장을 돌려주고 본 모습을 찾아준 것도 모아나였다. 모투누이의 부족이 다시금 바다로 나와 과거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도 모아나의 덕분이었다. 마우이의 말대로 모아나는 '훌륭한 길잡이'로 성장했다.


다만, 헤이헤이는 작품이 끝날 때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다는 점에서 모아나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모아나가 데 피티의 심장을 돌려준 다음 모투누이로 돌아왔을 때, 헤이헤이는 해안가에 내리자마자 다시 몸을 돌려 바다로 들어가려 한다. 아직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보이는 모습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도전적인 캐릭터가 바로 헤이헤이다. 우리는 이 멍청한 닭보다 아는 건 많아도, 용감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결과를 알기 때문에 도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결과를 모르기 때문에 도전할 수 있다. 


누구도 성공을 보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실패는 누구나 한다.


용기있게 살 필요는 없지만, 우리는 조금 멍청하게 살 필요가 있다.




 

디즈니가 2018년 처음으로 선사하는 감동『코코 COCO』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은 믿고 본다.


오랜 시간 동안 쌓아온 내공으로 언제나 완성도 높은 작품을 선보여줬기 때문이다. 신작 『코코 COCO』 역시 예고편 트레일러 한 번 보지 않고 극장에 달려가서 관람했다. 아직 안 봤다면 당장 가서 봐라. 아름다운 색체와 완급조절이 제대로 된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흥겨운 멕시코 노래는 덤이다.


『모아나』에 이어서 디즈니가 다른 문화권에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려는 움직임이 느껴진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주토피아』에서부터 디즈니는 다른 문화권, 서로 다르다는 차이에 대한 메세지를 던지기 시작했다. 이는 세계 정세와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다던가, 테러와 전쟁이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는다던가. 그런 시국에서 디즈니는 반대로 모두의 융합을 그리고 있다. '꿈'을 그리는 게 만화의 일이라면, 그리고 디즈니가 제일 잘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아주 바람직한 행보라고 생각한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그저 비지니스겠지만


이 글은 『코코』를 소개하거나 추천하는 글이 아니다.


작품의 배경이 멕시코이고, 멕시코가 우리에게는 친숙하지 않은 나라이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 몇 가지 알려주기 위한 글이다. 최대한 『코코』의 내용 언급은 피하고, 작품에 녹아있는 멕시코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할 예정이다.



1. 죽은 자들의 날


죽은 자들의 날(Día de los Muertos)은 멕시코의 명절이다. 10월 31일부터 11월 2일, 총 3일로 첫째날에 제단을 마련하고, 둘째날에는 죽은 아이들을, 마지막 날에는 죽은 어른들을 위해 기도를 올린다. 설탕, 초콜릿 등으로 해골 조형물과 뼈 모양 사탕 따위를 만들어 죽은 사람의 이름을 적어 제단에 올린다. 죽은 아이들을 위해서는 장난감을, 어른들을 위해서는 데킬라와 담배를 가져간다. 일부 지역에 따라서 해골 복장을 하는 곳도 있다.


죽은 자들의 날은 멕시코 토착 공동체의 일상에 부여하는 사회적 기능과 영적·미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8년에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됐다.


영적은 그렇다치고, 어떻게 미적 가치를 인정받았느냐?


죽은 자들의 날에는 제단을 꾸미는데, 이 제단을 '오프렌다스 Ofrendas'라고 부른다. 제단에는 사진이 올라가고, 해골과 뼈 모양 장식품, 그리고 노란꽃으로 꾸며진다. 제단을 올리는 형태부터 고대 아스텍의 전통에서 유래한 것이며, 그 모습이 매우 예쁘다. 우리나라 제사상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 일부 지역에서는 제단을 꾸미는 행사가 따로 열릴 정도라고 하니, 미적인 요소가 다분하다고 볼 수 있다.



2. 노란꽃의 정체


작품에서 계속 등장하는 저 노란꽃은 금잔화, 마리골드(Marigold)다. 죽은 자들의 날에 제단을 꾸미거나 죽은 자를 집으로 인도하는 꽃길을 만들 때 사용된다. 꽃말은 '이별의 슬픔'이라는데, 영화의 내용과 잘 맞는다는 생각을 한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영화를 보고 오시길.




3. 알레브리헤


알레브리헤(Alebrije)는 화려한 색으로 환상적인 생물을 표현하는 멕시코의 민속 조각 예술이다.


보기만 해도 눈이 현혹되는 듯한 색감이다. 그 기원은 '피냐타'라는 인물과 카니발 가면을 만들던 '리나레스'에 의해 창시되었다고 한다. 리나레스가 병을 앓다가 잠이 들어 꿈을 꾸게 되었는데 나무와 바위, 구름이 있는 숲 속에서 갑자기 처음 보는 동물들이 나타났다. 나비의 날개를 가진 당나귀, 소의 뿔을 가진 닭, 독수리 머리에 사자의 몸을 가진 생물들이 '알레브리헤'라고 소리지르며 다니는 꿈이었다. 그가 꿈에서 깨어나 그 동물을 조각하고 다채로운 색을 입혔고, 그게 오늘날 전해지는 알레브리헤의 기원이다.


기괴한 이미지는 악마의 기운을 몰아내고 가정을 보호해 준다는 미신은 어디에나 있나 보다. 우리나라의 장승이나 해태가 멕시코의 알레브리헤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2007년 이후부터 멕시코 대중 예술 박물관 후원 하에 '알레브리헤 퍼레이드'가 매년 개최될만큼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재료나 형태에 제한이 없기 때문에 보다 기괴하고 창의적인 알레브리헤가 등장하는 듯 하다. 멕시코의 수공예와 민속 예술을 계승한다는 목적으로, 현재는 카니발 같은 큰 축제로 성장했다고 한다.


작품에서는 죽은 영혼을 안내하는 인도자로 나오지만, 실제로 그런 것보다는 악운을 막아주는 정도로 인식되는 듯 하다.



4. 멕시코에서의 죽음


뉴욕, 파리, 런던 사람들에게 죽음은 입 밖에 내지 말아야 할 금기어다. 하지만 멕시코 사람들은 다르다. 그들은 죽음에 늘 관심을 갖고 자주 말하며, 죽음과 함께 잠들고 죽음을 축하한다. 그들에게 죽음은 가장 좋아하는 놀이이고 영원한 사랑이다.


- 멕시코 시인 옥타비오 파스 『고독의 미로』 中



각 문화권마다 죽음을 받아드리는 자세가 다르다.


최근에 개봉한 『신과 함께』에서 보여주는 우리나라의 사후세계와 『코코』에서 그려진 멕시코의 사후세계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우리나라의 사후세계는 죄를 심판하는 근엄한 분위기라면, 멕시코의 사후세계는 거대한 축제를 떠올리게 하는 분위기다. 실제 멕시코 문화에서 죽음은 두렵거나 무서운 분위기 보다는, 또 하나의 세계로 인식되는 듯 하다. 때문에 해골 장식이나 분장이 일반적으로 많이 이뤄진다. 멕시코 해골 장식을 본 적이 있나? 그들은 해골에 꽃이나 하트를 그려넣는다. 


작품에서는 그런 분위기를 잘 살려냈다.


아마 디즈니 작품 중에서 죽음이 가장 가볍게 다뤄진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전해지는 감동은 가볍지 않다. 2018년의 가슴 떨리는 선율의 감동을 받고 싶다면 지금 극장에서 『코코』를 예매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




《네이버 지식백과》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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