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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10.20 가성비 갑! 박민규의 소설집 『더블』(2010)
  2. 2017.10.19 한국 소설을 추천하는 글

가성비 갑! 박민규의 소설집 『더블』(2010)



일전에 한국 소설을 읽으라 얘기해놓고, 아무런 책도 소개해주지 않는다면 무책임한 게 아닐까 싶어서 꺼내든 책이다.

가성비를 따졌을 때 최고라고 생각되는 소설집, 『더블』 (2010)이다. 


책에서 가성비를 따지는 게 웃기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쨘 - !





보시다시피 소설집은 Side A, B 두 권으로 두성되어 있다. 안에 수록된 작품은 


  • 근처

  • 누런 강 배 한 척

  • 굿바이, 제플린

  • 끝까지 이럴래?

  • 양을 만든 그분께서 당신을 만드셨을까?

  • 굿모닝 존 웨인

  • 축구도 잘해요

  • 크로만, 운

  • 낮잠

  • 루디

  • 𪚥

  • 비치보이스

  • 아스피린

  •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

  • 아치

  • 슬(膝)


총 18 작품이다. 많기도 하지.

거기에 일러스트가 그려진 Double Art Book도 함께 들어있으니, 가성비를 따질만 하지 않은가?





박민규 작가는 괴짜다. 그의 작품 세계는 독특함으로 가득 차 있다. 독보적인 세계관으로 독자들을 매혹시킨다. 작품집에 있는 모든 작품이 재미있다.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던 몇 작품을 소개한다.



1. 「근처」


Side A에 첫번째로 수록되어 있는 작품이다.

책을 펼치면 나오는 첫 작품이라 아무 생각 없이 읽었는데, 내가 아는 박민규의 작품치고는 얌전한 느낌이었다. 

뭔가 실망스러운 느낌이 들 때 쯤, 충격적일 정도로 뒷통수를 때리는 포인트가 등장한다. 작품의 클라이막스가 끝내주는 작품.



나는 기쁘고, 기쁘지도 않다. 나는 슬픈데 슬픈 것만도 아니다. 나는 화가 나지만 어째서 화가 나는지 모르겠다. 나는 아프지만 아프지 않은 부분도 있다. 나는 즐겁고, 실은 즐거울 하등의 이유가 없다. 모르겠다. 느끼는 모든 감정을 추스르고 섞으면 결국 체념이 된다. 그 것을 캄캄하고, 끝없이 깊고, 풍부하다. 인간이 이를 곳은

 

결국 체념이다.



2.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


처음 이 제목을 보자마자 머릿속은 '대체 이 새끼는 뭐하는 새끼지?'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이 작품을 다 읽은 다음에는 '대체 이 새끼는 뭐하는 씨발 새끼지?'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상상력이 기발하다는 말로는 부족 오지고, 지리는 각 하다. 진부한 표현인데 기상천외한 작가의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언어유희란 이 정도는 되야 붙을 수 있는 수식어다.


중심에, 작지만 아주 단단한 모습으로… 그런 기분을 알까 모르겠다. 마누라의 딜도는 수입 명품도 고급 진동형도 아니었다.


일반 막대형이었다.





3. 「𪚥」


가장 획 수가 많은 한자라고 알려져 있는 말 많을 절, 수다스러울 절이다. 龍(용 용)이 네 개 모여서 만들어진 한자인데, 작품을 읽으면 제목을 왜 이렇게 지었는지 알 수 있다. 이 한자는 컴퓨터에서 쓰기 어려운 글자다. 쳐서는 쓸 수 없고 유니코드를 사용해서 입력해야 되기 때문인데, 예전에는 이 방법을 몰라서 龍을 네 개 써버리도 했다.


개인적으로 특별한 작품이다. 글을 가르쳐 준 선생이 내게 추천한 첫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장르 소설, 우리나라의 판타지나 무협지에 빠져있을 시기였다. 그렇지만 그런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한 내 눈으로 봐도 우리나라 판타지나 무협지는 수준이 그리 높지 않았는데, 중학생 시절 사이트에 연재한 작품이 출판 제의까지 받으면서 그런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제의를 거절한 이유는 내가 쓴 작품을 다른 누군가에게 보여주면 창피해서 죽어버릴 거라는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 내게 선생이 이 작품을 추천했다. 장르 소설이 아니더라도 무협을 배경으로 소설을 쓸 수 있다. 장르따위를 구분하는 건 멍청한 짓이다. 내게 그런 인식을 강하게 심어준 작품이고, 박민규 작가가 내게는 그런 인물이다.


작품의 배경은 현대지만 등장인물은 절대무림의 사천왕, 동방의 四龍이다. 이제 왜 제목이 𪚥인지 짐작이 가는가?

불사의 육신을 가진 무림의 절대 고수들이 현대를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작가의 해학이 얼마나 뛰어난지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께서 모이면 뭘요... 뭘... 정부라도 엎을 겁니까? 네 분이 힘 합치면 뭐... 삼성한테 이길 수 있습니까?



가성비는 단순히 양이 많아서 쓴 수식어가 아니다.

박민규의 작품을 이렇게 모아서 볼 수 있기 때문에 쓴 수식어다.

기욤 뮈소의 작품이 하늘 높이 올라가는 기다란 한 발짜리 폭죽이라면, 박민규의 『더블』은 우리 바로 앞에서 언제 끝날지 모르도록 계속해서 터지는 18발짜리 폭죽이라고 하겠다. 그러고보니 수록된 작품이 18 개라니... 이 새끼작가라면 의도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한국 소설을 추천하는 글



소설 [小設]이란 사실, 또는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허구적인 이야기, 산문이다.

우리가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학 갈래 중 하나이며, 가장 많은 독자들을 보유하고 있는 장르이기도 하다.

소설이 사랑 받는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소설이 우리내 삶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지니는 감정, 사상, 거기서부터 만들어지는 행동, 그로인해 벌어지는 사건 따위가 뒤엉켜 진행되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어떤 이야기는 진한 여운을 남기기도 하고, 어떤 이야기는 가슴 깊이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하며, 자신과 전혀 무관한 이야기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뭐, 이런 이야기는 고리타분하고 뻔한 이야기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소설은 가장 읽기 쉬운 문학이다. 어렵게 쓰려고 마음 먹으면 끔찍할 정도로 어렵게 풀어낼 수도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상당한 내공이 필요하다. 쉽게 읽히는 글도 쓸 때는 어려운 법인데, 읽는 것도 어려운 글을 쓰려면 쓸 때는…… 끔찍하다. 궁금하면 직접 소설을 한 번 써 보시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을테니. 





만약, 소설을 쓰는 게 생각을 넘어 상상보다 어렵고 고난하고 괴로운 작업이라는 사실을 느꼈더라면- 맹세컨데 소설을 전공하지는 않았을 거다.

그 중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일은 다른 작가의 작품을 읽는 것이었다. 즐거움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나는 왜 이렇게 못 쓰나'라는 자괴감을 느낄 수 있는 이중적인 일이었다. 예전보다는 덜하지만 여전히 이 이중적인 감정은 재미있는 책을 읽을 때마다 생겨난다. 어쩔 수 없는 직업병이 아닐까.


그런데 이 어려운 걸 수많은 소설가들이 해낸다. 

덕분에 우리는 재미있는 소설들을 감상할 수 있다.


소설을 좋아한다는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작가를 물어보면 십중팔구 외국 작가의 이름이 나온다.

예년에는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항상 언급되었고, 근래에는 '기욤 뮈소'를 꼽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베스트셀러 코너에 가면 문학 부분에는 외국 작가들의 작품이 주욱 나열되어 있다. 한국 작가들의 이름은 자기개발서 부분이나 인문학 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게 굉장히 안타까운 일 중 하나인데,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을 읽지 않는다.

읽는다 하더라도 굉장히 유명한, 혹은 유명해진 작가의 작품을 읽는다. 단적인 예로 '故 마광수'의 책은 그가 죽은 뒤로 판매량이 급격히 올랐고, 초판의 가격이 몇 배나 오르는 기현상을 보였다.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같은 경우, 멘부커상을 수상한 뒤부터 지금까지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찾아볼 수 있다. 멘부커상을 수상하기 전에 '한강'이라는 작가를 알던 사람이 몇이나 되었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국 작가의 소설을 읽을 필요가 있다.

무슨 국뽕 같은 게 아니라, 진지하게 그럴 필요성을 느낀다.

그 이유를 몇 가지 정리해봤다.



1. 번역체가 아닌 순수한 한글의 문체로 글을 읽을 수 있다.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일지라도 굉장히 중요한 이유다. 우리나라 문학이 해외로 많이 나가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번역 때문이다. 왜, '고은'의 시도 번역이 힘들어서 그 감정, 감각, 표현을 고스란히 전달하지 못해서 노벨 문학상을 끝끝내 수상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으니까. 이게 낭설이든 아니든 한글은 다른 언어로 번역해서 표현하기 어려운 글이다. 물론, 반대도 그리 쉽지는 않은 일이다. 번역은 어쩔 수 없이 어색하고 부족한 부분이 생기게 된다. 그 부분을 최소화 시킬 수 있다면 제일이겠지만, 그것보다 처음부터 한글로 씌여진 글을 읽으면 해결되는 일이다. 우리나라 작가들은 굉장히 수려한 문장을 쓰기 때문에 딱딱하고 어색한 외국 소설을 번역체만 보다가, 한국 소설을 보면 눈이 정화되는 걸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진심으로.



2. 문화적 공감을 느낄 수 있다.


흑인이 느끼는 인종차별에 대해서 가장 공감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당연히 흑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독자들의 공감을 가장 잘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작가는? 당연히 우리나라 작가다.



3. 수준이 높다.


소설 중에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소설은 단편이다. 중, 장편이 더 기니까 쓰기 어렵지 않나?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 제한되어 있는 분량 안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끝 맺어야 하는 일은 잔인할 정도로 타이트한 작업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소설의 주류는 단편이다. 문예창작학과 입시 실기도 단편으로 보고, 신춘문예 등단도 단편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그래서 우리나라 소설은 단편집이 많다. 우리나라에서 '소설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그 중에 뽑혀 책까지 낸 사람들이다. 수준이 낮을 수가 없다. 



4. 존나 재미있다.


정확하게 이렇게 표현해야 전달이 되는 감정이다. '김영하' 작가가 방송에 나와서 "소설은 원래 어두운 거다"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어느 정도 공감한다. 마냥 밝기만 한 소설이라면 갈등도 없을 거고, 그러면 사건도 생기지 않는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어두워진다. 개인적으로 한국 소설이 제일 어둡다. 옆나라 일본 소설의 어두움이 2라고 한다면, 한국 소설의 어두움은 8 정도? 물론, 개인적인 소견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빛이라 할지라도 더욱 강조된다. 마치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빛처럼 느껴진다. 한국 소설을 읽으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미로를 찾아가는, 그런 기분이다.


일본 소설이 "와, 재미있다" 같이 밝고 명랑한 느낌이라면, 한국 소설은 "존나 재미있다, 씨발" 같이 험하면서 포기하지 못하는 느낌.

매운 걸 참으면서 매운 걸 먹는 그런 느낌이랄까. 전부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단편은 이처럼 하드한 작품들이 많다. 역시 궁금하면 직접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





당연히 외국 작품도 좋은 것들이 많다. 

'명작'이라는 걸 꼽으면 외국의 작품이 더 쉽게 떠오르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당신의 독서 목록에 우리나라 작가의 이름을 하나 둘 추가하는 게, 그리 나쁜 일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우리나라에는 '등단'이라는 시스템이 있다.

매년 신문사나 출판사를 통해 작가로 인정 받는, 일종의 '작가 자격증 시험' 같은 거다.

이 경쟁률이 대략 1000 : 1 정도다. 19명 선발하는 17년도 제 33회 입법고시에 4600명이 지원했다. 이 경쟁률이 243 : 1이다. 이것도 무려 역대급.

이 정도면 '등단'하는 게 얼마나 치열한 일인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 치열함을 뚫어낸 이들이 쓴 소설이다. 

당연히 존나 재미있을 수밖에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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