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하기 좋은 책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필사(筆寫)는 글을 베끼어 쓰는 일을 뜻한다. 

나에게 글을 가르쳐 준 선생이 제일 처음 시켰던 일이기도 하다. 그 때 선생이 내게 준 책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다. 1000자 원고지에 한 글자 씩 베끼기 시작했다. 학교 쉬는 시간이면 원고지를 펼치고 미친 듯이 베껴 쓴 기억이 난다. 덕분에 나름대로 탄탄한 문장력을 갖게 됐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았을 때, 필사를 해서 좋은 게 몇 가지 있다.


1. 문장이 좋아진다.

내가 좋은 문장을 익히기 위해서 필사를 했고, 그 효과를 보았기 때문에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다만, 필사를 하려는 작품의 문장이 왜, 어디가, 어떻게 좋은지 알아야 효과를 볼 수 있다. 무작정 베낀다고 문장이 내 손에 익는 게 아니다.


2. 작품 이해도가 높아진다.

한 글자, 한 문장, 한 문단을 집중해서 읽어가며 필사를 한다. 당연히 작품을 집중해서 보게 된다. 자연스럽게 이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3. 머리가 아니라 손이 움직인다.

'잘 써야지' 라는 생각은 머리에서 하는 거고, 결국 쓰는 건 손이다. 운동 선수들이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세우며 반복 훈련을 하는 이유는, 실제 경기를 할 때 생각보다 빠르게 몸이 움직이는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다. 글도 마찬가지다. 절대 머리에서 쓰는 게 아니다. 쓰는 건 손이다. 머리는 당신의 손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요소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마이크 타이슨의 명언 "모두 그럴 듯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쳐맞기 전까지는."을 떠올려라. 모두 그럴 듯하게 쓸 생각을 하고 있다. 손이 움직이기 전까지는.


그렇다면 선생은 왜 수많은 책 중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골랐을까?





간결하고 담백한 문장이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짧게 쓰기를 못한다. 쓸데 없는 말을 계속 한다. 문장이 길어진다. 하나의 문장이 몇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읽는 사람은 혼란스럽다. 도대체 이 문장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쓸 때는 모른다. 다 쓰고 읽어보면, 이 쓰레기를 자신이 썼다는 사실에 고개를 들지 못한다. 이거보다 심각한 상황은 자신이 쓴 말도 안 되는 문장이 썩 괜찮다고 느끼게 되는 거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문장은 단문(短文)이다. 짧고 간결하며, 문장 하나가 하나의 의미를 담는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당신이 써놓은 쓰레기 중 하나만 들춰봐도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다. 


나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잠이 나를 눌러왔다. 나는 부서진 대문 한 짝을 끌어내 그 위에 엎드렸다. 햇살을 등에 느끼며 나는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우리 식구와 지섭을 제외하고 세계는 모두 이상했다. 아니다. 아버지와 지섭마저 좀 이상했다. 나는 햇살 속에서 꿈을 꾸었다. 영희가 팬지꽃 두 송이를 공장 폐수 속에 던져넣고 있었다.


문장을 짧게 쓴다. 명확하게 전달하려는 것만 담아낸다. 불필요한 수식어, 미사여구는 모두 제외한다. 추상적으로 쓰지 않는다. 들려주지 말고 보여줘라. 좋은 글 쓰기에 필요한 이 요소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담겨있다. 





좋은 글쓰기에 대한 책은 계속 나온다. 요즘에는 코너도 따로 있을 정도다. 나 역시 글쓰기에 관한 책 몇 권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 책들을 읽는다고 해서 자신의 글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많이 써봐야 한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과 원고지를 책상에 펼치고 계속해서 손을 움직여라.


잊지 마라.

글을 쓰는 건 머리가 아니라 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