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그리고 나의 첫 시집 『맨발』(2004)



시(詩)는 자신의 감상, 사상 따위를 함축하여 쓰는 글이다.

개인적으로 문학 중에 가장 어려운 장르라고 생각한다. 우리 말을 연구하고 가장 잘 쓰는 사람의 부류는 시인들이 아닐까. 자주 읽지는 않지만, 이따금 마주치는 그들의 언어는 너무 낯선 것들이다. 나와 같은 말을 사용하고 있다고 믿기지 않을 때도 있다. 당신이 화법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면 화술에 대한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시집 한 권을 읽어보는 걸 권하고 싶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어려운 문학이지만 가장 쉽게 쓸 수 있는 문학이기도 하다.

일단 짧으니까. 소설은 구성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일정한 분량이 필요하지만, 시에게는 그러한 틀이 없다. 규제가 적다. 오죽하면 '시적허용'이라는 말까지 생겼을까. 때문에 나 역시 제일 처음 쓴 작품은 '시'였다.


하지만 당시 내가 쓴 시는 전부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저 있어 보이도록 쓴, 허세 가득 찬 시였다. 때문에 단 한 번도 스스로 시를 잘 쓴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가끔씩 시를 쓴다. 시처럼 편하게 감정을 소모하는 방법도 없다. 배출하지 못하는 답답한 감정이 있다면, 술을 마시고 욕을 하는 대신 시를 써라. 남에게 보일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법이다. 거기에 욕이 들어가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자유롭게 쓰고 싶은대로. 아름다운 감상 보다 질척이는 현실에 대한 반감이 더욱 쉽게 시로 옮겨질 거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문태준 시인의 『맨발』은 선생이 내게 처음으로 준 시집이었다.

선생은 내 시를 보고 단호하게 말했다. 너는 시 보다는 소설이 낫다, 고. 그럼에도 내게 시집을 준 건, 시에서만 얻어지는 감성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잘 알지 못했지만, 이제는 알 것도 같다. 여전히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시는 명확하게 보이는 것보다 안개에 가려진 듯, 흐릿하게 보일수록 아름답다. 굳이 시에 의미, 내용, 주제를 파악하려 하지 않아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문학이다. 그래서 감정이 피폐해지면 아무 생각 없이 시집을 펼친다. 처음에는 몇 줄의 문장으로만 보이다가, 차츰 메마른 감정에 단비처럼 내려앉는 걸 느낄 수 있다.





어물전 개조개 한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 「맨발」......中 문태준


우리나라에서 시는 항상 비주류다.

읽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주입식 교육의 폐해라고 생각한다. 시구, 시어마다 의미를 정해두고 외우도록 읽었으니, 시가 전달하는 감정을 느낄 시간이 없다. 그런 식으로 10년 동안 교과서와 문제집에서 시를 읽으니, 재미있을 리가 없다. 아름답게 보일 리가 없다. 다른 문학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문제를 풀기위한 도구로써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한다. 청소년 권장도서는 교과서에 실리는지, 기출문제에 실리는 횟수에 따라 정해진다. 아이들의 감성을 메마르게 해놓고 책을 읽으라고 하는 건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나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황을 맞이했을 때, 가지고 있는 시집을 집어 든다.

그 안에는 언제나 나를 위로해주는 언어들로 가득하다. 그러니 위로 받고 싶은 당신은 시집을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