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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10.24 필사하기 좋은 책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2. 2017.10.23 잡학다식을 위한 서적, 잡지
  3. 2017.10.23 이야기의 제왕이 쓴 단편들 『스켈레톤 크루』
  4. 2017.10.22 이상의 작가 정신을 계승하는 문학상 작품집 『이상 문학상 작품집』
  5. 2017.10.20 도입부의 마력 정영수의 『애호가들』(2017)
  6. 2017.10.20 가성비 갑! 박민규의 소설집 『더블』(2010)
  7. 2017.10.19 한국 소설을 추천하는 글
  8. 2017.10.18 책을 사용하는 방법

필사하기 좋은 책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필사(筆寫)는 글을 베끼어 쓰는 일을 뜻한다. 

나에게 글을 가르쳐 준 선생이 제일 처음 시켰던 일이기도 하다. 그 때 선생이 내게 준 책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다. 1000자 원고지에 한 글자 씩 베끼기 시작했다. 학교 쉬는 시간이면 원고지를 펼치고 미친 듯이 베껴 쓴 기억이 난다. 덕분에 나름대로 탄탄한 문장력을 갖게 됐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았을 때, 필사를 해서 좋은 게 몇 가지 있다.


1. 문장이 좋아진다.

내가 좋은 문장을 익히기 위해서 필사를 했고, 그 효과를 보았기 때문에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다만, 필사를 하려는 작품의 문장이 왜, 어디가, 어떻게 좋은지 알아야 효과를 볼 수 있다. 무작정 베낀다고 문장이 내 손에 익는 게 아니다.


2. 작품 이해도가 높아진다.

한 글자, 한 문장, 한 문단을 집중해서 읽어가며 필사를 한다. 당연히 작품을 집중해서 보게 된다. 자연스럽게 이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3. 머리가 아니라 손이 움직인다.

'잘 써야지' 라는 생각은 머리에서 하는 거고, 결국 쓰는 건 손이다. 운동 선수들이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세우며 반복 훈련을 하는 이유는, 실제 경기를 할 때 생각보다 빠르게 몸이 움직이는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다. 글도 마찬가지다. 절대 머리에서 쓰는 게 아니다. 쓰는 건 손이다. 머리는 당신의 손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요소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마이크 타이슨의 명언 "모두 그럴 듯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쳐맞기 전까지는."을 떠올려라. 모두 그럴 듯하게 쓸 생각을 하고 있다. 손이 움직이기 전까지는.


그렇다면 선생은 왜 수많은 책 중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골랐을까?





간결하고 담백한 문장이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짧게 쓰기를 못한다. 쓸데 없는 말을 계속 한다. 문장이 길어진다. 하나의 문장이 몇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읽는 사람은 혼란스럽다. 도대체 이 문장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쓸 때는 모른다. 다 쓰고 읽어보면, 이 쓰레기를 자신이 썼다는 사실에 고개를 들지 못한다. 이거보다 심각한 상황은 자신이 쓴 말도 안 되는 문장이 썩 괜찮다고 느끼게 되는 거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문장은 단문(短文)이다. 짧고 간결하며, 문장 하나가 하나의 의미를 담는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당신이 써놓은 쓰레기 중 하나만 들춰봐도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다. 


나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잠이 나를 눌러왔다. 나는 부서진 대문 한 짝을 끌어내 그 위에 엎드렸다. 햇살을 등에 느끼며 나는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우리 식구와 지섭을 제외하고 세계는 모두 이상했다. 아니다. 아버지와 지섭마저 좀 이상했다. 나는 햇살 속에서 꿈을 꾸었다. 영희가 팬지꽃 두 송이를 공장 폐수 속에 던져넣고 있었다.


문장을 짧게 쓴다. 명확하게 전달하려는 것만 담아낸다. 불필요한 수식어, 미사여구는 모두 제외한다. 추상적으로 쓰지 않는다. 들려주지 말고 보여줘라. 좋은 글 쓰기에 필요한 이 요소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담겨있다. 





좋은 글쓰기에 대한 책은 계속 나온다. 요즘에는 코너도 따로 있을 정도다. 나 역시 글쓰기에 관한 책 몇 권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 책들을 읽는다고 해서 자신의 글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많이 써봐야 한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과 원고지를 책상에 펼치고 계속해서 손을 움직여라.


잊지 마라.

글을 쓰는 건 머리가 아니라 손이다.


잡학다식을 위한 서적, 잡지



잡지(雜誌)는 일정한 이름을 가지고 정기적으로 간행하는 출판물을 말한다. 간행 주기에 따라서 주간, 순간, 월간, 계간으로 나뉜다.

경제, 시사, 영화 잡지는 주간지가 많다. 순간(旬刊紙)지는 열흘을 주기로 간행되는 잡지를 말하는데, 그리 많은 것 같지는 않다.

그 외 가장 많은 잡지들이 월간지로 매월 간행을 하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1년에 4번 간행을 하는 계간지는 분야에 대한 내용을 묵직하게 다루는 게 많다. 문학잡지가 이에 해당한다.


서점을 돌 때 가장 먼저 훑어보고 나가기 전에 들리는 코너가 잡지 코너다.

쉽게 구매할 수 있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분야도 다양해서 내가 관심있는 내용을 찾아 보기도 좋다. 그래서 서점에 들리면 잡지 한 두 권을 항상 집어온다. 예전에는 패션지를 주로 읽었다. 예전처럼 옷을 사는데 방황하지 않고, 선호하는 스타일이 확고해져서 패션지는 잘 안 보게 됐다. 대신 몸이 방황 중이라서 운동 잡지를 주로 읽는 편이다. 운동에는 항상 먹는 방법이 따라오기 때문에 요리 잡지도 읽는다.




[ 누구 몸이 더 좋은가? ㅎ ]



건강은 언제나 사람들의 지대한 관심을 받는 주제였다. 굳이 진시황이 아니더라도 평생 살 수는 없을까, 라는 고민을 누구나 한 번은 한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살아있는 동안 건강하기라도 해야 한다는 관념이 확고해진다. 어른들이 으레 '건강이 최고다'고 하는 이유다. 그래서 그런지 운동 잡지가 꽤 많이 나온다. 물론, 전부 다 만족스러운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지만.......


광고로 많은 비용을 충당하는 잡지의 특성상, 내용에 심하다 싶을 정도의 광고들이 실리는 경우가 있다.

예전에는 그런 광고들이 너무 노골적이어서 별로였다. 지금은 광고도 하나의 정보라고 생각하고 받아드린다. 생각해보면 잡지에 실린 광고는 눈여겨 볼만한 것들이 많다. 내용이나 연출은 물론이고, 제품 사진은 하나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옆에 붙어있는 가격이 없으면 더 좋겠지만 말이다.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들이 많았는지 노골적인 광고를 숨기는 연출도 많아졌다.

기억에 남는 건 패션잡지 『CRAKER』에서 한 브랜드 광고다. 브랜드 제품을 이용한 코디를 하나 씩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거부감 없는 광고를 보여줬다. 그게 좋아서 처음으로 정기 구독을 했던 잡지였는데, 아쉽게도 2015년 9월 8주년 기념호를 마지막으로 폐간되었다.





반드시 실생활에 관련이 있지 않아도 관심이 있는 분야도 있는 법. 과학이 딱 그렇지 않을까?

특히 문과생인 나에게 있어서 과학은 미지와도 가깝다. 차라리 마법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릴지도. 그렇다고 호기심이 없는 건 아니기 때문에 이따금 과학 잡지를 읽는다. 내가 몰랐던 과학적 정보를 알게 되는 건 언제나 새롭고 재미있는 일이다. 나랑 전혀 관련이 없는 책을 읽는 것도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건축 잡지나 여행 잡지도 읽을 때가 있다.


세상에는 재미있고 즐거운 것들이 넘쳐난다.

아직 모르고 있을 뿐이지.





근래에 가장 눈여겨 보고 있는 고품격 쿠킹 잡지 『La main (라망) 』이다. 불어로 'a la main (손으로 만들다)'을 따서 만든 요리 잡지다.

고품격이라는 수식어답게 내용은 물론이고 사진 퀄리티가 매우 뛰어나다. 디자인도 멋스럽게 꾸며서 장을 넘길 때마다 즐거움이 깃들어 있다.


요리 잡지의 가장 큰 문제는 도저히 내가 할 수 없는 요리의 레시피를 소개해준다는 정도?

혹은 도저히 내가 갈 수 없을 것 같은 식당의 정보를 알려준다던가...... 가끔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어서 우울해지기도 한다.





한국에는 정식 출간되지 않았던 『PLAYBOY』가 지난 9월호를 시작으로 정식 한국판이 간행을 시작했다.

내용이 어떤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남자들이라면 군대에서 한 번 쯤 보았을 맥심은 정말 아무생각 없이 집어오는 것 같다.

오해하지 마라. 사진이 예뻐서 사는 것뿐이니까. 크흠.


표지 사진이나 떠도는 풍문만 가지고 사람들이 남성지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데, 단호하게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단순히 여자를 벗기고 성상품화 시키는 게 아니라, 남성의 관심사에 여성이 있기 때문에 여자가 등장하고 그에 대한 내용이 실리는 거다. 여성을 대하는 매너라던가, 잠자리에서의 에티켓, 심지어는 성교육까지 되는 교육적(이건 정말이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인 내용도 있다. 그 외에도 축구, 자동차, 게임처럼 많은 남성들이 눈여겨 볼만한 내용을 싣는다. 무슨 씨발 야한 사진만 잔뜩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실, 여성지에도 비슷한 내용이 실린다.

하나 다른 점은 벗은 남자 사진이 노골적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건데, 내 생각에 그 이유가 매우 명확하다. 여자들은 남자보다 먹을 거나 미용에 더 많은 흥미를 갖는다. 잡지는 특정 독자층을 겨냥하는데, 여성지는 여성들을 주 타켓으로 잡고 있다. 그러니 여자들이 좋아하고 관심있는 내용을 싣는 게 당연하다. 남자가 분위기를 잡고 찍은 사진보다 '화장하는 법'이나 '요즘 HOT한 맛집 BEST' 같은 내용이 더 많다는 건, 여자들이 좋아하는 관심사가 '먹을 것, 미용 > 남자'이기 때문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리고 여성은 무턱대고 벗고 들이대는 것보다는 무드를 잡고 조용히 감성을 자극하는 걸 좋아하지 않나? 남자 놈들은 단순해서 그냥 눈에 보이게 노골적으로 보여줘야 되기 때문에 그런 거니까, 마음 넓은 누나들이 이해해줘야 한다.


이렇게 쓰기는 했지만, 내가 여자의 관심사나 심리를 어떻게 다 안다고 하겠나.

내가 남자이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는 건 남자의 관심사는 여자라는 거다.

빨리 11월호 사러 가야지.


이야기의 제왕이 쓴 단편들 『스켈레톤 크루』



스티븐 킹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미국 작가다. 사실, 다른 작가들을 그리 많이 알지도 못한다. 번역체를 그리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외국 작가의 작품은 잘 보지 않는 편이다.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예외적으로 스티븐 킹의 작품이 대표적인데, 이건 내 의도라고 할 수가 없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스티븐 킹의 작품을 경험했다. 최근에 개봉한 공포 영화 『 It (그것) 』의 원작자가 스티븐 킹이다. 스티븐 킹의 작품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영화화 되고 있었다. 『미저리』, 『샤이닝』, 『미스트』, 리메이크까지 된 『캐리』 등. 공포 영화 뿐만 아니라, 부동의 영화 평점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네이버 영화 랭킹) 『쇼생크 탈출』도 스티븐 킹의 작품이 원작이다.

이 외에도 너무 많은 작품들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는가?
스티븐 킹은 너무 많은 작품들을 발표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스티븐 킹의 가장 큰 특징은 다작(多作)이다.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글을 써내려가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정작 본인은 자기처럼 글을 쓰지 않는 작가들에게 "어떻게 작품을 아주 가끔씩만 발표하는지 무척 궁금해서 못 참겠다"는 말을 남겼다. 이건 뭐, 밥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된다는 소리처럼 들린다.


작품이 워낙에 많아서 뭐부터 읽으면 좋을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럴 때는 역시 많은 게 제일이다. 소설집을 사자.

전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소설의 최고는 단편이다. 수많은 글을 쓰고, 사람들의 가슴과 머리 속에 각인되는 작품을 쓴 작가의 단편을 모아서 볼 수 있다면 최고 좋은 게 아닐까? 장담컨데 이 중에 한 편은 마음에 들 수밖에 없다.


나는 『캐리』와 같은 장편으로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었다. 『캐리』나 『미스트』는 개인적인 취향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독자를 끌어당기는 이야기였다. 스티븐 킹의 이야기에는 사람을 매료시키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그 무언가를 느껴보고 싶다면 단편집을 하나 사러 가면 된다.


『스켈레톤 크루』 (2006)는 상, 하 두 권으로 나눠져 있는 스티븐 킹의 단편 소설집이다.

작품 목록이 워낙 많아서 나열하기 귀찮지만, 친절하게 아래 적는다.


  • 안개

  • 호랑이가 있다

  • 원숭이

  • 카인의 부활

  • 토드 부인의 지름길

  • 조운트

  • 결혼 축하 연주

  • 편집증에 관한 노래

  • 뗏목


  • 신들의 워드프로세서

  • 악수하지 않는 남자

  • 비치월드

  • 사신의 이미지

  • 노나

  • 오웬을 위하여

  • 서바이버 타입

  • 오토 삼촌의 트럭

  • 우유배달부 1 : 아침의 배달

  • 우유배달부 2 : 세탁 게임 이야기

  • 할머니

  • 고무 탄환의 발라드

  • 리치


이야기 하나 하나가 전부 색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종합 과자 선물 세트를 까먹는 기분으로 책을 읽을 수 있다.

스티븐 킹은 독특한 상상력으로 "만약 ~이 ~한다면?"이라는 가정을 세우고, 거기에 살을 붙여 소설을 만드는 식으로 글을 쓴다. 마치,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진짜 같은 소설을 만들어 낸다. 때문에 그의 작품에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하권에 수록된 「고무 탄환의 발라드」에서 엿보인 작가의 발상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작품은 신문사에 편집장이 미쳐버린 소설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진행된다. 소설가는 자신의 타자기에 특별한 요정이 산다고 믿는다. '포르니트'라는 이 요정은 행운을 가져온다. 소설가는 이 요정의 힘을 빌어 글을 쓴다, 고 스스로 믿는다. 자신의 상상, 망상을 지나 광기로 탄생한 현실에서 이 소설가는 어떻게 될 것인가...... 궁금하다면 당장 책을 사러 가자.


"정말이었을 지도 모르지. 하지만 장난은 미신으로 바뀌고 끝내는 신념으로 굳어져 버렸어. 

그건...... 그래, 처음엔 가벼운 꿈이었다가 끝내 딱딱한 현실이 되어 버린 꿈 같은 거야.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딱딱한 그런 꿈 말일세."




"아무리 안정된 사람이라도 결국은 기름 바른 밧줄에 간신히 매달려 제정신을 차리고 있다는 거지. 

난 그 점을 확신하네. 이성이라는 회로는 겉만 번지르르하게 인간이라는 동물에게 장착된 거야."

이상의 작가 정신을 계승하는 문학상 작품집 『이상 문학상 작품집』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문학상이 존재한다. 어떤 문학상이든지 수상하는 일은 어렵고, 그 어려움을 뚫은 수상작들은 읽을만한 작품이라는 보증을 받게 된다. 그 중에서도 문학사상이 주최하는 '이상 문학상' 수상작들은 훌륭한 편이다. 때문에 좋아하는 작가가 목록에 없더라도 매년 사두는 책 중에 하나다. 만약, 한국 소설을 읽어보고 싶은데 딱히 알거나 떠오르는 작품, 작가가 없다면 이상 문학상 작품집을 추천한다. 저 수많은 작품들 중에 하나는 반드시 당신의 마음에 들 것이다. 여태까지 내게 그랬던 소설집이다.


1회

1977년

<서울의 달빛 0장>

김승옥

2회

1978년

<잔인한 도시>

이청준

3회

1979년

<저녁의 게임>

오정희

4회

1980년

<관계>

유재용

5회

1981년

<엄마의 말뚝>

박완서

6회

1982년

<깊고 푸른 밤>

최인호

7회

1983년

<먼 그대>

서영은

8회

1984년

<어두운 기억의 저편>

이균영

9회

1985년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이제하

10회

1986년

<흐르는 북>

최일남

11회

1987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이문열

12회

1988년

<붉은 방>

임철우

<해변의 길손>

한승원

13회

1989년

<겨울의 환>

김채원

14회

1990년

<마음의 감옥>

김원일

15회

1991년

<우리 시대의 소설가>

조성기

16회

1992년

<숨은 꽃>

양귀자

17회

1993년

<얼음의 도가니>

최수철

18회

1994년

<하나코는 없다>

최윤

19회

1995년

<하얀 배>

윤후명

20회

1996년

<천지간>

윤대녕

21회

1997년

<사랑의 예감>

김지원

22회

1998년

<아내의 상자>

은희경

23회

1999년

<내 마음의 옥탑방>

박상우

24회

2000년

<시인의 별>

이인화

25회

2001년

<부석사>

신경숙

26회

2002년

<뱀장어 스튜>

권지예

27회

2003년

<바다와 나비>

김인숙

28회

2004년

<화장>

김훈

29회

2005년

<몽고반점>

한강

30회

2006년

<밤이여, 나뉘어라>

정미경

31회

2007년

<천사는 여기 머문다>

전경린

32회

2008년

<사랑을 믿다>

권여선

33회

2009년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김연수

34회

2010년

<아침의 문>

박민규

35회

2011년

<맨발로 글목을 돌다>

공지영

36회

2012년

<옥수수와 나>

김영하

37회

2013년

<침묵의 미래>

김애란

38회

2014년

<몬순>

편혜영

39회

2015년

<뿌리 이야기>

김숨

40회

2016년

<천국의 문>

김경욱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이상문학상 [李箱文學賞] (두산백과)



2017년도 대상 수상작은 구효서의 풍경소리다.


문학상의 특징은 종이 한 장, 혹은 한 문장 차이로 순위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여기에 실린 모든 작품이 사실은 대상 수상작이라 불러도 좋은 작품이다. 이미 훌륭하다고 검증된 작품이니 아무거나 집어도 후회는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역대 수상작 중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을 몇 개 꼽자면


20회 대상 수상작 「천지간(天地間)」 윤대녕

상징이 무엇인지 공부하기 좋은 작품. 몇 번이나 분석한 작품 중 하나다.

작품 자체의 완성도가 너무 뛰어나서, 이 소설을 보면 내가 쓰는 소설을 쓰레기처럼 느껴질 정도.

소설의 치밀함과 상징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다면 추천드리는 작품이다.


34회 대상 수상작 「아침의 문」 박민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 마찬가지로 몇 번이나 분석했던 작품 중 하나.

소설이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걸 새삼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짧은 단편임에도 먹먹한 여운을 남긴다. 뒷맛이 오래도록 남아있는 글을 좋아하는 분들께 추천한다.


36회 대상 수상작 「옥수수와 나」 김영하

김영하는 글을 잘 쓰는 작가임에 틀림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로 좋아하는 작가는 아닌데, 이 작품은 좀 미쳤다. 이상 문학상 작품집은 대상 수상작을 제일 처음 배치한다. 자연스럽게 이 작품을 먼저 읽게 됐는데, 다음 작품들로 넘어가질 못했다. 너무 재미있어서. 거짓말이 아니라 별 거 없는 내용인데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고백하자면 아직까지도 36회 작품집은 이 소설 하나 말고는 보질 못했다.

최근 방송에도 나오는 김영하 작가의 작품이 궁금하다면, 굳이 길고 어지러운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지 마시고 이 작품을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


뭐, 이래봐야 개인적인 취향이기 때문에 직접 읽어보고 고르는 게 제일 좋다.

서점에 가시라.





이상 문학상이 얼마나 좋은 작품을 수록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던 건, 집 서재에서 95년도 작품집을 찾았을 때였다. 수록작들이 유독 훌륭한 건 아니었다. 이 책은 내가 산 게 아니라, 부모님이 산 거다. 지금보다 젊은 시절의 부모님이 말이다. 세대를 막론하고 이상 문학상은 언제나 좋은 작품들을 선정했다. 





나는 민달팽이처럼 기어서 뿌리에 다가간다. 

두 가닥의 뿌리가 열십자로 뻗어 나가면서, 엇갈린 지점에 저절로 생겨난 움푹한 곳에 얼굴을 파묻는다. 

실뿌리들이 소소소 일어 이마와 귓바퀴를 간질이고, 독기 서린 잔뿌리 끝이 목을 찔러오지만 얼굴을 더, 서슴서슴 주저하면서도 얼굴을 더...... 

변심한 애인이 깊이 잠들기를 기다려 가장 은밀한 곳을, 외설스러우면서도 성스러운 곳을 탐하듯.  


- 39회 대상 수상작 「뿌리 이야기」 中...... 김숨 作




이따금 표지 디자인이 심심찮게 바뀌는데, 매년 같은 표지라고 생각하다가도 모아서 확인해보면 달라져 있는 걸 볼 수 있다.

디자인 뿐만 아니라 종이 재질이나 프로필, 폰트까지 바뀌는 때도 있다. 이런 걸 하나하나 확인해보는 것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시리즈를 사서 책장에 꽂아둘 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라 생각한다.


아직 책장에 이런 작품집이 하나도 없다면, 서점에 가서 아무거나 하나 집어오는 건 어떨까.

분명, 다른 작품집도 골라오게 될 거다.


도입부의 마력 정영수의 『애호가들』(2017)




소설을 쓸 때 항상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 제목, 그리고 첫 문장이다.

제목과 첫 문장은 소설의 얼굴이다. 사람도 얼굴과 옷차림새 같은 외관으로 첫인상이 결정된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제목과 첫 문장. 이 둘이 소설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요인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서점에서 책의 앞 부분, 도입부를 살펴보고 구매를 결정한다. 때문에 가장 중요하고 쓰기 어렵다.


'도입부'라는 첫 단추만 잘 끼워도, 이미 반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서점에 가면 신간 소설의 도입부를 하나 씩 훑어본다. 독자를 끌어당기는 매력을 지닌 제목을 찾아 책을 집고, 첫 문장을 살펴본다. 열 중에 여덟은 제목에서의 매력이 첫 문장까지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책을 내려놓는다. 소설 코너를 샅샅히 뒤지고도 마음에 드는 책을 못 찾으면 코너를 떠난다. 그 날, 내 쇼핑백에 소설책은 없는 거다. 


아주 잔인한 일인데, 유독 소설만이 도입부로 평가 받는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자기개발서는 필요한 사람이라면 도입부가 어떻든 사서 본다. 뭐, 습관이나 꿈, 공부법, 시간 활용법 등등. 주제만 맞으면 많은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자기개발서를 구매한다. 에세이 역시 주로 자신과 연관이 있는 경우에는 도입부 따위를 따지지 않는다. 여행을 가기 전에 보는 여행 에세이나, 같은 직종에서 일을 하는(혹은 내가 되고 싶은 직업을 가진) 사람의 에세이 같은 건 도입부를 신경 쓰지 않는다. 시는...... 도입부를 언급하기 전에 이미 읽는 사람만 읽는다. 안타깝게도.


물론, 정말로 완전히 도입부를 신경 쓰지 않는 건 아니다. 소설에 비해 상대적으로 도입부에 대한 비중이 적다는 뜻이다.

소설은 도입부가 힘이 없으면 독자를 이야기의 끝으로 끌고 갈 수 없다. 도입부의 힘이란 '책을 끝까지 읽게하는 힘'이다. 소설은 도입부에서부터 그 힘을 발휘해야 한다. 독자는 그 힘으로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정영수의 소설이 그랬다.


도입부를 다 읽자마자 책을 덮었다. 그리고 카운터로 가서 계산을 마쳤다. 군더더기가 없어 깔끔하게 읽히는 담백한 문장도 좋았지만, 그 내용이 너무 좋았다. 매력적인 게 아니라 어떤 마력을 가진 것 같았다. 흡입을 당하듯 강하게 끌렸고, 나는 책의 첫 작품 「레바논의 밤」의 도입부만 몇 번을 곱씹었다. 그 마력의 도입부를 아래 적는다.



베이루트의 성벽 앞에 현자라 알려진 노인이 있었다. 어느날 한 남자가 그에게 물었다.

"왜 신은 우리에게 말을 걸지 않을까요? 왜 그의 뜻을 전달하려 하지 않는 걸까요?"

그 말을 들은 노인은 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벽을 따라 날고 있는 나방이 보이시오? 저 나방은 벽을 하늘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요. 당신이 만약 벽을 하늘로 생각한다면, 저것은 나방이 아니라 새겠지. 그게 아니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소. 하지만 나방은 우리가 그것을 안다는 것은 물론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지. 당신은 나방에게 그것을 알려줄 수 있겠소? 나방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당신의 뜻을 전달할 수 있느냔 말이오."

"모르겠습니다. 나방에게 어떻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겠습니까."





노인은 남자의 말이 끝나자 손바닥으로 나방을 탁 쳐서 죽였다.

"보시오 이제 나방은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과 나의 의사를 알게 되었소."



이 도입부를 읽고는 뒷통수를 얻어 맞는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통틀어서 이만한 문장, 문단이 없었다.


이야기의 끝을 보고 싶다면, 당장 이 책을 사러 가시라.

가성비 갑! 박민규의 소설집 『더블』(2010)



일전에 한국 소설을 읽으라 얘기해놓고, 아무런 책도 소개해주지 않는다면 무책임한 게 아닐까 싶어서 꺼내든 책이다.

가성비를 따졌을 때 최고라고 생각되는 소설집, 『더블』 (2010)이다. 


책에서 가성비를 따지는 게 웃기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쨘 - !





보시다시피 소설집은 Side A, B 두 권으로 두성되어 있다. 안에 수록된 작품은 


  • 근처

  • 누런 강 배 한 척

  • 굿바이, 제플린

  • 끝까지 이럴래?

  • 양을 만든 그분께서 당신을 만드셨을까?

  • 굿모닝 존 웨인

  • 축구도 잘해요

  • 크로만, 운

  • 낮잠

  • 루디

  • 𪚥

  • 비치보이스

  • 아스피린

  •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

  • 아치

  • 슬(膝)


총 18 작품이다. 많기도 하지.

거기에 일러스트가 그려진 Double Art Book도 함께 들어있으니, 가성비를 따질만 하지 않은가?





박민규 작가는 괴짜다. 그의 작품 세계는 독특함으로 가득 차 있다. 독보적인 세계관으로 독자들을 매혹시킨다. 작품집에 있는 모든 작품이 재미있다.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던 몇 작품을 소개한다.



1. 「근처」


Side A에 첫번째로 수록되어 있는 작품이다.

책을 펼치면 나오는 첫 작품이라 아무 생각 없이 읽었는데, 내가 아는 박민규의 작품치고는 얌전한 느낌이었다. 

뭔가 실망스러운 느낌이 들 때 쯤, 충격적일 정도로 뒷통수를 때리는 포인트가 등장한다. 작품의 클라이막스가 끝내주는 작품.



나는 기쁘고, 기쁘지도 않다. 나는 슬픈데 슬픈 것만도 아니다. 나는 화가 나지만 어째서 화가 나는지 모르겠다. 나는 아프지만 아프지 않은 부분도 있다. 나는 즐겁고, 실은 즐거울 하등의 이유가 없다. 모르겠다. 느끼는 모든 감정을 추스르고 섞으면 결국 체념이 된다. 그 것을 캄캄하고, 끝없이 깊고, 풍부하다. 인간이 이를 곳은

 

결국 체념이다.



2.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


처음 이 제목을 보자마자 머릿속은 '대체 이 새끼는 뭐하는 새끼지?'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이 작품을 다 읽은 다음에는 '대체 이 새끼는 뭐하는 씨발 새끼지?'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상상력이 기발하다는 말로는 부족 오지고, 지리는 각 하다. 진부한 표현인데 기상천외한 작가의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언어유희란 이 정도는 되야 붙을 수 있는 수식어다.


중심에, 작지만 아주 단단한 모습으로… 그런 기분을 알까 모르겠다. 마누라의 딜도는 수입 명품도 고급 진동형도 아니었다.


일반 막대형이었다.





3. 「𪚥」


가장 획 수가 많은 한자라고 알려져 있는 말 많을 절, 수다스러울 절이다. 龍(용 용)이 네 개 모여서 만들어진 한자인데, 작품을 읽으면 제목을 왜 이렇게 지었는지 알 수 있다. 이 한자는 컴퓨터에서 쓰기 어려운 글자다. 쳐서는 쓸 수 없고 유니코드를 사용해서 입력해야 되기 때문인데, 예전에는 이 방법을 몰라서 龍을 네 개 써버리도 했다.


개인적으로 특별한 작품이다. 글을 가르쳐 준 선생이 내게 추천한 첫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장르 소설, 우리나라의 판타지나 무협지에 빠져있을 시기였다. 그렇지만 그런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한 내 눈으로 봐도 우리나라 판타지나 무협지는 수준이 그리 높지 않았는데, 중학생 시절 사이트에 연재한 작품이 출판 제의까지 받으면서 그런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제의를 거절한 이유는 내가 쓴 작품을 다른 누군가에게 보여주면 창피해서 죽어버릴 거라는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 내게 선생이 이 작품을 추천했다. 장르 소설이 아니더라도 무협을 배경으로 소설을 쓸 수 있다. 장르따위를 구분하는 건 멍청한 짓이다. 내게 그런 인식을 강하게 심어준 작품이고, 박민규 작가가 내게는 그런 인물이다.


작품의 배경은 현대지만 등장인물은 절대무림의 사천왕, 동방의 四龍이다. 이제 왜 제목이 𪚥인지 짐작이 가는가?

불사의 육신을 가진 무림의 절대 고수들이 현대를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작가의 해학이 얼마나 뛰어난지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께서 모이면 뭘요... 뭘... 정부라도 엎을 겁니까? 네 분이 힘 합치면 뭐... 삼성한테 이길 수 있습니까?



가성비는 단순히 양이 많아서 쓴 수식어가 아니다.

박민규의 작품을 이렇게 모아서 볼 수 있기 때문에 쓴 수식어다.

기욤 뮈소의 작품이 하늘 높이 올라가는 기다란 한 발짜리 폭죽이라면, 박민규의 『더블』은 우리 바로 앞에서 언제 끝날지 모르도록 계속해서 터지는 18발짜리 폭죽이라고 하겠다. 그러고보니 수록된 작품이 18 개라니... 이 새끼작가라면 의도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한국 소설을 추천하는 글



소설 [小設]이란 사실, 또는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허구적인 이야기, 산문이다.

우리가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학 갈래 중 하나이며, 가장 많은 독자들을 보유하고 있는 장르이기도 하다.

소설이 사랑 받는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소설이 우리내 삶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지니는 감정, 사상, 거기서부터 만들어지는 행동, 그로인해 벌어지는 사건 따위가 뒤엉켜 진행되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어떤 이야기는 진한 여운을 남기기도 하고, 어떤 이야기는 가슴 깊이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하며, 자신과 전혀 무관한 이야기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뭐, 이런 이야기는 고리타분하고 뻔한 이야기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소설은 가장 읽기 쉬운 문학이다. 어렵게 쓰려고 마음 먹으면 끔찍할 정도로 어렵게 풀어낼 수도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상당한 내공이 필요하다. 쉽게 읽히는 글도 쓸 때는 어려운 법인데, 읽는 것도 어려운 글을 쓰려면 쓸 때는…… 끔찍하다. 궁금하면 직접 소설을 한 번 써 보시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을테니. 





만약, 소설을 쓰는 게 생각을 넘어 상상보다 어렵고 고난하고 괴로운 작업이라는 사실을 느꼈더라면- 맹세컨데 소설을 전공하지는 않았을 거다.

그 중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일은 다른 작가의 작품을 읽는 것이었다. 즐거움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나는 왜 이렇게 못 쓰나'라는 자괴감을 느낄 수 있는 이중적인 일이었다. 예전보다는 덜하지만 여전히 이 이중적인 감정은 재미있는 책을 읽을 때마다 생겨난다. 어쩔 수 없는 직업병이 아닐까.


그런데 이 어려운 걸 수많은 소설가들이 해낸다. 

덕분에 우리는 재미있는 소설들을 감상할 수 있다.


소설을 좋아한다는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작가를 물어보면 십중팔구 외국 작가의 이름이 나온다.

예년에는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항상 언급되었고, 근래에는 '기욤 뮈소'를 꼽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베스트셀러 코너에 가면 문학 부분에는 외국 작가들의 작품이 주욱 나열되어 있다. 한국 작가들의 이름은 자기개발서 부분이나 인문학 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게 굉장히 안타까운 일 중 하나인데,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을 읽지 않는다.

읽는다 하더라도 굉장히 유명한, 혹은 유명해진 작가의 작품을 읽는다. 단적인 예로 '故 마광수'의 책은 그가 죽은 뒤로 판매량이 급격히 올랐고, 초판의 가격이 몇 배나 오르는 기현상을 보였다.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같은 경우, 멘부커상을 수상한 뒤부터 지금까지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찾아볼 수 있다. 멘부커상을 수상하기 전에 '한강'이라는 작가를 알던 사람이 몇이나 되었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국 작가의 소설을 읽을 필요가 있다.

무슨 국뽕 같은 게 아니라, 진지하게 그럴 필요성을 느낀다.

그 이유를 몇 가지 정리해봤다.



1. 번역체가 아닌 순수한 한글의 문체로 글을 읽을 수 있다.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일지라도 굉장히 중요한 이유다. 우리나라 문학이 해외로 많이 나가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번역 때문이다. 왜, '고은'의 시도 번역이 힘들어서 그 감정, 감각, 표현을 고스란히 전달하지 못해서 노벨 문학상을 끝끝내 수상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으니까. 이게 낭설이든 아니든 한글은 다른 언어로 번역해서 표현하기 어려운 글이다. 물론, 반대도 그리 쉽지는 않은 일이다. 번역은 어쩔 수 없이 어색하고 부족한 부분이 생기게 된다. 그 부분을 최소화 시킬 수 있다면 제일이겠지만, 그것보다 처음부터 한글로 씌여진 글을 읽으면 해결되는 일이다. 우리나라 작가들은 굉장히 수려한 문장을 쓰기 때문에 딱딱하고 어색한 외국 소설을 번역체만 보다가, 한국 소설을 보면 눈이 정화되는 걸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진심으로.



2. 문화적 공감을 느낄 수 있다.


흑인이 느끼는 인종차별에 대해서 가장 공감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당연히 흑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독자들의 공감을 가장 잘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작가는? 당연히 우리나라 작가다.



3. 수준이 높다.


소설 중에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소설은 단편이다. 중, 장편이 더 기니까 쓰기 어렵지 않나?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 제한되어 있는 분량 안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끝 맺어야 하는 일은 잔인할 정도로 타이트한 작업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소설의 주류는 단편이다. 문예창작학과 입시 실기도 단편으로 보고, 신춘문예 등단도 단편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그래서 우리나라 소설은 단편집이 많다. 우리나라에서 '소설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그 중에 뽑혀 책까지 낸 사람들이다. 수준이 낮을 수가 없다. 



4. 존나 재미있다.


정확하게 이렇게 표현해야 전달이 되는 감정이다. '김영하' 작가가 방송에 나와서 "소설은 원래 어두운 거다"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어느 정도 공감한다. 마냥 밝기만 한 소설이라면 갈등도 없을 거고, 그러면 사건도 생기지 않는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어두워진다. 개인적으로 한국 소설이 제일 어둡다. 옆나라 일본 소설의 어두움이 2라고 한다면, 한국 소설의 어두움은 8 정도? 물론, 개인적인 소견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빛이라 할지라도 더욱 강조된다. 마치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빛처럼 느껴진다. 한국 소설을 읽으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미로를 찾아가는, 그런 기분이다.


일본 소설이 "와, 재미있다" 같이 밝고 명랑한 느낌이라면, 한국 소설은 "존나 재미있다, 씨발" 같이 험하면서 포기하지 못하는 느낌.

매운 걸 참으면서 매운 걸 먹는 그런 느낌이랄까. 전부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단편은 이처럼 하드한 작품들이 많다. 역시 궁금하면 직접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





당연히 외국 작품도 좋은 것들이 많다. 

'명작'이라는 걸 꼽으면 외국의 작품이 더 쉽게 떠오르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당신의 독서 목록에 우리나라 작가의 이름을 하나 둘 추가하는 게, 그리 나쁜 일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우리나라에는 '등단'이라는 시스템이 있다.

매년 신문사나 출판사를 통해 작가로 인정 받는, 일종의 '작가 자격증 시험' 같은 거다.

이 경쟁률이 대략 1000 : 1 정도다. 19명 선발하는 17년도 제 33회 입법고시에 4600명이 지원했다. 이 경쟁률이 243 : 1이다. 이것도 무려 역대급.

이 정도면 '등단'하는 게 얼마나 치열한 일인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 치열함을 뚫어낸 이들이 쓴 소설이다. 

당연히 존나 재미있을 수밖에 없지.

책을 사용하는 방법



책은 어디서나 접할 수 있는 물건이다.

학교, 도서관, 서점 같은 곳은 당연하고, 카페는 아예 '북카페'가 따로 생길 정도다.

식당과 미용실은 대기 시간을 달래기 위한 눈요기 거리로 책들이 비치되어 있다.

이렇게 수많은 책들이 널리 퍼져있는데, 정작 읽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나라 인구 연 평균 독서량은 10권이 채 안 된다.

2015년도 기준으로 9.9권. 세계 192개국 중 166위에 속하는 수치다.

2년 동안 평균이 떨어졌으면 떨어졌지, 오르지는 않았을 거다.


2016년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인의 생활 시간 변화'에 따르면 10세 이상 국민의 하루 독서 시간은 6분이다.

6분. 하루에 10분을 독서하는 사람이 10명 중 1명이며, 3명 중 1명은 일 년동안 단 한 권의 책을 읽지 않는다.





이렇게 얘기하면 굉장히 심각한 문제인 것처럼 들린다. 

사실, '책을 읽지 않는다'는 말은 언제나 부정적으로 들렸다.


그나마 어른들은 '일 때문에 바빠서'라던가 '읽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서' 같은 핑계라도 댈 수 있지만, 아이들은 아니다.

언제나 어른들의 '책 좀 읽어라'는 잔소리에 시달린다. 아이들은 억울하다. 정작 잔소리를 하는 부모들도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잔소리를 하는 부모들도 왜 아이들에게 책을 읽혀야 하는지 잘 모른다.

자신이 책을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책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모른다.

놀랍게도 그런 사람들이 꽤나 많다.


진짜 많다, 진짜.





요 몇 개월 동안 논술학원에서 초등학생들을 가르치고 학부모들과 상담을 했다.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평균보다 책을 잘 읽고 많이 읽는 편이었다.

아이들을 보면서 스스로 부족함을 느낄 정도로 독서량이 높은 아이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은 늘 불안해했다.


'우리 애가 책을 안 읽어요'

'책을 너무 빨리 읽어요'

'만화책만 읽어요'


상담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다.

부모라면 응당 갖고 있는 불안함에서 나오는 걱정이겠지만, 내 입장은 난처했다.

대부분의 걱정이 그렇듯 학부모들의 걱정도 필요한 걱정은 아니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아이들이 책을 접하기만 한다면 됐다. 그거면 충분했다.


과장해서 말하면 책을 쌓아서 집을 만들어도 좋고, 책을 방패 삼아 칼싸움을 해도 좋다.

책의 역할은 본디 그런 것이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생각하기 위해서다.


물론, 책이 없다고 생각을 못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책을 이용해 더 깊은 사유가 가능해진다.

때문에 책은 빨리 읽거나, 만화책을 읽는 건 전혀 문제가 안 된다.

문제는 책을 읽고 사유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다.


책을 쌓아 집을 만드려면 어떤 식으로 쌓아야 견고하고 높게 만들 수 있을까, 를 생각하고

책을 방패 삼아 칼싸움을 하면 어떤 책이 방패로 쓰기 좋을 지 고민할 수 있다.


어떤 방식이라도 좋으니, 생각을 이끌어낸다면 그건 책을 사용하는 훌륭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 가장 훌륭한 방법이 '읽기'일 뿐이지, 반드시 읽기만 하라는 건 아니다.


책을 통해서 우리는 사고력을 확장하고 견고하게 다듬을 수 있다.

때문에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책을 사용해야 한다.


나도 그리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다.

그러나 책을 사용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기에, 포스팅을 시작한다.

책 사진을 찍고, 책에 대한 내 생각을 풀어내면서 책을 사용하고자 한다.


부디, 내가 꾸준히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모든 것의 근원은 생각이며, 생각의 원천은 바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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