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매트릭스』분석 : 2. 시뮬라시옹(Simulation)의 시작

시뮬라시옹 Simulation은 원형을 복제하는 현상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복제를 '시뮬라크르 Simulacre'라고 한다. 영화에서 참고한 내용은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이지만, 사실 시뮬라크르는 훨씬 오래 전에 제시되었던 철학 개념이다. 그 기원은 고대 그리스까지 올라간다.


시뮬라크르는 원래 플라톤에 의해 정의된 개념이다. 플라톤에 의하면, 사람이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원형인 이데아, 복제물인 현실, 복제의 복제물인 시뮬라크르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현실은 인간의 삶 자체가 복제물이고, 시뮬라크르는 복제물을 다시 복제한 것을 말한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완전한 복제란 있을 수 없다. 사진을 찍을 때, 모델의 겉모습은 사진에 그대로 나타나지만 사진을 찍는 바로 그 순간의 모델의 진짜 모습을 담은 것은 아니다. 사진을 찍는 사건이 일어나는 순간적인 시점에 모델의 마음 속을 스쳐 지나간 수많은 생각·느낌까지 사진에 담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제되면 복제될수록 진짜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진다. 이 때문에 플라톤은 시뮬라크르를 한 순간도 자기 동일로 있을 수 없는 존재, 곧 지금 여기에 실재()하지 않는 것이라 하여 전혀 가치가 없는 것으로 보았다. 시뮬라크르를 정의할 때, 최초의 한 모델에서 시작된 복제가 자꾸 거듭되어 나중에는 최초의 모델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뒤바뀐 복사물을 의미하게 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들뢰즈는 역사적인 큰 사건이 아니라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 즉 순간적이고 지속성과 자기 동일성이 없으면서도 인간의 삶에 변화와 의미를 줄 수 있는 각각의 사건을 시뮬라크로로 규정하고, 여기에 커다란 가치를 부여하였다. 들뢰즈는 이를 '사건의 존재론'으로 설명하는데, 그가 말한 시뮬라크르는 위의 시뮬라크르 개념과 다르다.

들뢰즈가 생각하는 시뮬라크르는 단순한 복제의 복제물이 아니라, 이전의 모델이나 모델을 복제한 복제물과는 전혀 다른 독립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모델의 진짜 모습을 복제하려 하지만, 복제하면 할수록 모델의 모습에서 멀어지는 단순한 복제물과는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들뢰즈의 시뮬라크르는 모델과 같아지려는 것이 아니라, 모델을 뛰어넘어 새로운 자신의 공간을 창조해 가는 역동성과 자기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한 흉내나 가짜(복제물)와는 확연히 구분된다.[각주:1]


장 보드리야르는 시뮬라시옹&시뮬라크르를 현대적으로 해석했지만, 들뢰즈가 말한 '모델과 같아지려는 것이 아니라, 모델을 뛰어넘어 새로운 자신의 공간을 창조해 가는 역동성과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성질은 여전히 지니고 있다.


워쇼스키 형제(남매)는 영화에서 그 성질을 보여주기 위해 '스미스'라는 인물을 설정했다. 네오가 원형이라면, 스미스는 시뮬라시옹이자 시뮬라크르다.




- 네오를 찾고 있다.

- 그런 사람 몰라.

- 전해줄 게 있어. 선물이지. 내게 자유를 줬거든.

- 알았으니까 꺼져![각주:2]



- 누구였지?

- 어떻게 알았어요?

- 이걸 줬어요. 당신이 자유를 줬다고 했어요.[각주:3]



인이어는 요원들이 항상 귀에 꽂고 다니는 물건이며, 통제를 상징한다. 요원은 인이어를 통해 매트릭스 시스템의 통제를 받는다. 스미스가 인이어를 뺐다는 건, 더 이상 시스템의 통제를 받지 않음을 의미한다. 시스템의 통제에서 벗어난 존재라는 점에서 스미스는 네오와 동일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스미스가 네오와 두드러지게 다른 것은 스스로를 복제한다는 사실이다. 스미스는 끊임 없이 스스로를 복제한다. 동일 개체의 재생산이다. 동일 개체는 아니지만, 우리는 이미 재생산을 보았다. 전편에서 네오가 스미스 속으로 들어가 매트릭스 내에 존재하는 자신의 신체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모습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네오와 스미스 모두 자기 스스로를 다시금 만들어내는 재생산을 보여줬지만, 명백한 차이가 존재한다.


네오는 스미스의 안에서부터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탄생한다. 밝은 빛을 발하며 알처럼 껍질(스미스)을 쪼개고 밖으로 나온다. 반대로,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스미스의 재생산은 검은 액체가 대상의 몸을 뒤덮으면서 일어난다. 외부에서부터 시작되는 재생산이다. 이는 눈에 보이는 형체를 따라하는 것에 불과하다. 네오는 안에서부터 밖으로 자기 자신을 형성시키고 표출하는 재생산이고, 스미스는 밖에서부터 자기 자신을 덮어씌우는 재생산이라는 점, 그리고 계속해서 자신을 복제한다는 점에서 둘의 재생산은 차이를 보인다.


결과적으로 네오는 재생산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존재(원형)로 탄생하지만, 스미스는 개체 수를 늘리기만 한다. 그 모습은 암세포와 같다. 이 표현은 이후에도 영화에서 스미스를 묘사할 때 쓰인다.





시온에서 모피어스의 연설이 끝난 후, 사람들은 광란의 파티를 벌인다. 그 모습은 성적으로 묘사될 뿐만 아니라, 네오와 트리니티의 섹스를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섹스는 인간의 번식을 위한 행위이기만, 굉장히 비효율적인 생산 방식이다. 두 사람의 유전자 결합에서 열성(劣性)이 태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지만 동일개체의 동일 증식, 그러니까 스미스처럼 자기 스스로를 계속해서 늘려가는 것에는 어떠한 위험도 지니지 않는다. 열성은 배제하고 우성(優性)이 보장되는 번식(재생산) 방법이다.


공장을 떠올려보자. 수많은 사람이 바느질을 하는 것과 정밀한 기계가 바느질을 하는 것의 차이다. 사람의 바느질은 제각각이며 이따금 실수도 일어날 수 있다. 기계의 바느질은 일정하며 실수를 최소화한다. 이와 같이 효율성을 따졌을 때, 섹스는 비효율적인 생산 방식이다. 


암은 전체적인 유기적 법칙을 고려하지 않고, 기본세포의 무한번식을 지시한다. 동일 증식도 마찬가지이다. 아무것도 더 이상 동일한 것의 연장에, 하나의 유일 모체의 제지 없는 번식에 대항하지 않는다. 전에는 성적인 재생산이 한 유일 모체의 무한 재생산에 대항하였지만, 오늘날은 거꾸로 동일성의 생식 모체를 마침내 분리할 수 있게 되어 개인들의 우연적인 매력을 만들어주었던 차별적인 모든 우연적인 사건들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각주:4]


그렇지만 가장 인간적인 생산 방식이다. 우리는 유전자의 결합, 혹은 충돌로 인해 발생하는 우연으로 보다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 반대로 결함이 있는 존재가 될 가능성도 있지만, 항상 같은 존재로 남아있지는 않는다. 원형과 복제의 탄생, 재생산, 발전은 여기서 차이를 보인다.


 

 탄생

 재생산

 발전

 표현

 원형

 내부에서 발현

 가능성에 기댄 우연

 우연의 극대화

 네오, 인간, 현실

 복제

 외부에서 발현

 위험(우연)을 배제한 복제

 발생하는 위험(우연) 제거

 스미스, 기계, 매트릭스


이와 같은 성질을 통해 우리는 영화 내에 존재하는 원형과 복제(시뮬라크르)를 구분할 수 있다. 이 성질을 인지하고 진행하다 보면 영화 내에서도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어. 네 일부가 내게 덮어씌워졌거나 복사된 건지... 물론, 상관없지. 중요한 건 모든 일엔 이유가 있다는 거야.

- 그 이유가 뭘까?

- 넌 분명히 내 손에 죽었다. 그땐 참 만족스러웠지. 그런데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이 일어나버렸어. 네가 날 파괴한 거야. 그 후 규정에 따라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알았지만, 따르지 않았어. 규정을 어겨서라도 여기 남아야만 했거든. 네 덕에 여기 있게 된 거야. 더 이상 요원도 아니지. 연결도 끊고 일종의 새사람이 된 거야. 너처럼 자유로워졌지.

- 축하해주지.

- 고맙군. 그러나 외형은 속임수고 우리의 존재 이유는 따로 있다. 우리가 여기 있는 건, 실은 자유롭지 못해서야. 이유나 목적은 부정할 수가 없지. 우리는 목적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니까. 목적이 우리를 창조했고, 우리를 연결하고, 우리를 끌어주고, 인도하고, 조종한다. 목적이 우리를 정의하고, 결속시킨다. 우린 너 때문에 존재해. 네가 우리에게 뺏으려던 걸 우리가 뺏기 위해![각주:5]



전에 언급했듯 이미지(복제)는 자기 자신의 모델(실재)을 죽이는 살상력을 가진다. 사과 그림을 그리기 위해 놓여진 사과는 그림이 완성되면 사라지게 된다. 들뢰즈는 시뮬라크르가 복제이면서 실재인 모델을 뛰어넘어, 역동성과 자기정체성을 지닌다고 했다. 스미스가 딱 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전편부터 스미스는 통제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다. 다른 요원들과 달리 임무와는 상관 없는, '매트릭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자기정체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 자기정체성은 위 대화(우리가 여기 있는 건, 실은 자유롭지 못해서야)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여기에 새로운 목적, 욕구, 자기정체성이 정립되는데, 바로 네오의 죽음이다. 


네오의 죽음은 단순히 생명의 끝이 아니라, 스미스 스스로가 원형이 되고자 하는 시뮬라크르의 완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스미스는 네오를 죽이는데(복제하는데) 실패한다. 원형을 죽이는 살상력이 부족한 복제는 어떻게 할까?



더 많은 복제를 한다.



계속되는 복제를 통해서 스미스는 프로그래머들이 사용하는 뒷문까지 들어오게 된다. 이는 뒷문을 사용하는 존재를 덮어썼기(복제) 때문에 얻은 능력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처럼 스미스는 복제를 통해 스스로를 재생산하면서 네오를 죽일 살상력을 키워나간다. 


이 과정을 우리는 시뮬라시옹으로 볼 수 있다.




  1. 네이버 두산백과 참조 [본문으로]
  2. 영화 『매트릭스 2』 中 [본문으로]
  3. 위와 같음 [본문으로]
  4. 『시뮬라시옹』, 장 보드리야르, 민음사, P. 174, 175 [본문으로]
  5. 영화 『매트릭스 2』 中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