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적인 문장의 소유자 김연수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전에는 박민규처럼 톡톡 튀고 독자를 현혹시키는 글에 끌렸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글에도 끌리기 시작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작가가 김연수다.


김연수는 93년에 시로 등단을 했지만, 이후 소설을 발표하며 왕성한 활동을 보인 작가다. - 이렇게 말해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게 슬픈 일이다. 나에게도 하는 소리지만 얼마나 책을 안 읽는다는 말인가 - SNS에서 이런 글귀를 본 적이 있을 거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건 나의 일이었다'


이 글귀를 쓴 사람이 바로 김연수 작가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에 등장하는 글귀다. 김연수는 장, 단편 가리지 않고 많은 글을 쓴 작가다. 덕분에 김연수의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딱히 읽을 거리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이라면 김연수 작가의 작품을 하나 씩 펼쳐보는 걸 추천한다. 나는 군대에 있을 때 읽기 시작했다.



소설집으로는 가장 최근(2013)에 출간된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이 오늘 소개할 책이다.


수록작으로 「벚꽃 새해」 「깊은 밤, 기린의 말」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일기예보의 기법」 「주쌩뚜디피니를 듣던 터널의 밤」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동욱」 「우는 시늉을 하네」 「파주로」 「인구가 나다」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가 있다. 총 11 작품이다. 김연수 작품의 장점이라면 쉽게 읽힌다는 걸까. 나는 김연수 작가의 글을 읽을 때 단 한 호흡도 쉰 적이 없다. 한국 작가 중에서는 유일했던 것 같다. 여류 작가들은 나를 숨막히게 하고, 박민규와 같은 톡톡 튀는 글은 이따금 잠시 책을 내려놓게 만드는 충격을 선사하기도 하니까, 그럴 수가 없다. 김연수는 옆집 아저씨가 자기 얘기를 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글을 쓴다.


그 옆집 아저씨가 굉장한 로맨티스트에 감정 넘치는 게 특이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을 재미있게 읽었다. 꼴에 글쟁이라고 뭔가를 쓰는 이야기에는 언제나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소설가라니 아주 흥미롭습니다"라고 말하더니 그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잠깐 내 얘기를 들을 시간이 있겠습니까?"라고 지갑을 손에 든 채 그가 내게 물었다. 그때 나는 글을 쓰는 건 고사하고 책을 읽을 마음도 들지 않아서 소설가로서는 폐업상태였고, 따라서 김일성대학교에 입학해서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노인이 소설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인생담에 전혀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


-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中


소설은 하나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문단으로, 문단은 문장으로, 문장은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


습작을 하거나 읽다보면 어느 부분에 힘이 들어갔고, 힘을 뺐는지 보일 때가 있다. 의도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의 미숙함을 느끼고 좌절할 경우가 있다. 가장 좋은 글은 힘이 들어갔는지, 빠졌는지 전혀 보이지 않는 글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가슴으로 와서 울려 퍼지는 글. 김연수는 굉장히 아무렇지도 않게 글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읽는 입장에서는 말이다.



의식하지 않고 감정적인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김연수 작가의 작품을 읽는 걸 추천한다.


어떤 작품이라도 쉬이 편하게 읽어내려갈 수 있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