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에 해당되는 글 41건

  1. 2017.10.31 게임 개발자들을 위한 주홍책 『The Art of Game Design』
  2. 2017.10.30 성인 남성지 비교 분석, 제 5장 [ 마치며 ]
  3. 2017.10.28 성인 남성지 비교 분석, 제 4장 [ 플레이보이 PLAYBOY ]
  4. 2017.10.27 성인 남성지 비교 분석, 제 3장 [ 크레이지 자이언트 CRAZY ZIANT ]
  5. 2017.10.26 성인 남성지 비교 분석, 제 1장 [ 三巴戰 ]
  6. 2017.10.25 시, 그리고 나의 첫 시집 『맨발』(2004)
  7. 2017.10.24 필사하기 좋은 책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8. 2017.10.23 이야기의 제왕이 쓴 단편들 『스켈레톤 크루』
  9. 2017.10.22 이상의 작가 정신을 계승하는 문학상 작품집 『이상 문학상 작품집』
  10. 2017.10.20 가성비 갑! 박민규의 소설집 『더블』(2010)

게임 개발자들을 위한 주홍책 『The Art of Game Design』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다면 한 번 쯤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전공자는 '공포의 주홍책'으로 묘사하기도 한 『The Art of Game Design』에는 게임을 만들 때 필요한 마음가짐부터 시작해서 방법과 노하우, 실수에 대처하는 방법까지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 책 한 권만 있다면 정말 게임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다고 무슨 기술적인 부분이 정리되어 있는 게 아니다.


이 책은 Game Design 게임 디자인, 그러니까 기획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게임 그래픽, 원화 디자인, 프로그래밍은 다루는 학원이 많다. 그렇지만 기획을 가르치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전문적인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나 역시 S아카데미에서 게임 기획 수업을 들었지만, 실제로 기획반을 가르친 강사는 게임 회사에서 7년 동안 디자인 쪽에서 업무를 하던 사람이었다. 강사가 수업 때 했던 모든 내용이 이 책에 들어 있었다. 그래서 그냥 사버렸다.





목차는 크게 32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1장 태초에 디자이너가 있었다

2장 디자이너는 경험을 만들어낸다

3장 게임에서 발원하는 경험

4장 게임은 요소로 구성된다

5장 게임 요소는 테마를 뒷받침한다

6장 게임은 아이디어로 시작된다

7장 게임은 점진적으로 발전한다

8장 게임은 플레이어를 위한 것이다

9장 경험은 플레이어의 마음속에 있다

10장 게임 메커니즘 요소

11장 게임 메커니즘은 균형 잡혀 있어야 한다

12장 게임 메커니즘은 퍼즐을 지원한다

13장 플레이어는 인터페이스를 통해 게임을 플레이한다

14장 경험은 흥미 곡선으로 판단할 수 있다

15장 경험 중 하나는 이야기다

16장 이야기와 게임 구조는 간접 통제로 멋지게 융합할 수 있다

17장 이야기와 게임은 세계 안에 자리한다

18장 세계에는 캐릭터가 들어 있다

19장 세계는 공간을 담고 있다

20장 세계의 외관은 미적 요소에 의해 규정된다

21장 다른 플레이어와 같이 노는 게임도 있다

22장 다른 플레이어는 때로 커뮤니티를 만든다

23장 디자이너는 보통 팀에 속해 일한다

24장 팀은 때로는 문서로 소통한다

25장 좋은 게임은 플레이테스트로 만들어진다

26장 팀은 기술로 게임을 만든다

27장 게임에는 의뢰인이 있다

28장 디자이너는 의뢰인에게 제안한다

29장 디자이너와 의뢰인은 게임의 수익을 원한다

30장 게임은 플레이어를 변화시킨다

31장 디자이너는 일말의 책임이 있다

32장 모든 디자이너에게는 동기가 있다


목차만 읽어도 게임 기획에 필요한 내용이 전달되는 것 같지 않나?

저자는 독자의 성장을 이끌어내면서, 게임 기획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 씩 보여준다. 큰 테두리부터 잡아주고 디테일하고 깊게 하나 하나 짚어가며 독자를 성장 시킨다. 


분명히 할 게 한 가지 있어요. 이 책의 주 목적은 당신이 더 나은 비디오 게임 디자이너가 되게 가르치는 데 있지만, 앞으로 살펴볼 많은 법칙은 비디오 게임용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폭넓게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거에요. 좋은 점은 여기서 읽은 내용을 디지털이든, 아날로그든, 그 무엇이든 어떤 게임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들어가며 中... 제시 셸





내용 안으로 들어가면 '렌즈' 파트가 따로 나온다. 

'렌즈'에는 게임 기획을 할 때 스스로 점검하도록, 혹은 더 좋은 게임으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해주는 방법들이 제시되어 있다. 책에는 총 100개의 '렌즈'가 있다. 이 책을 읽기만 해도 게임을 더 낫게 만드는 방법 100가지를 알 수 있는 셈이다. 굉장히 알찬 책 아닌가?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지만,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 이야기가 게임으로 탄생하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우리나라의 게임 산업에서 스토리는 여전히 뒷전인 경우가 많다. 대부분 이미 인기 있는 스토리를 게임으로 만들기를 원한다. 웹툰이 모바일 게임으로 개발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경험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게임 스토리는 다른 메카니즘, 요소들과 함께 가야한다. 유동적으로 유연하게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하나의 게임으로 탄생할 수 있다. 나는 그런 스토리를 꿈 꾸고 있다.


물론, 스토리만으로 게임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때문에 게임을 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 게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분석하고, 더 좋게 만들기 위한 방법을 떠올려야 한다. 


게임을 만들고 싶다면, 망설일 게 없다.

당장 서점에서 이 책을 사와서 게임을 하나 씩 분석하고, 문서로 남겨라.

그게 당신의 포토폴리오가 되고, 당신의 실력이 될 것이다.

성인 남성지 비교 분석, 제 5장 [ 마치며 ]



이전 포스팅을 통해서 3종류의 성인 남성지를 비교, 분석하는 시간을 가졌다.


『맥심     『크레이지 자이언트』    『플레이보이』


잡지는 특정 독자층에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책이다. 비교 분석을 했던 위 세 잡지는 성인 남성들을 타겟으로, 그들이 원하는 정보를 담고 있다.

각각 남자들이 원하는 건 이런 거다! 라는 생각으로 잡지를 기획했을 거다. 그러면 지극히 개인적으로 어떤 잡지의 어느 부분이 좋았는지, 혹은 나빴는지 이야기하면서 비교, 분석 시간을 마치도록 하겠다.





1. 다루는 것들


맥심과 크레이지 자이언트는 가볍다. 낄낄 거리면서 읽을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거기에 미스 맥심, 자이언트 걸 같은 아름다운 여성을 볼 수 있다. 젊은 남자들이라면 마다하지 않을 내용이다. 남자라는 생물이 평생 어린 아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수많은 남성들이 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플레이보이는 생각보다 무겁다. 글이 많고, 길다. 문체도 진지하게 짝이 없다. 낄낄 거리면서 읽기 어려운 내용들을 담고 있다. 그러나 모든 남자들이 낄낄 거리는 것만 좋아하는 건 아니다. 누군가는 분명 사색을 원하고 있다. 플레이보이는 그런 남성들을 노리고 있다.






다루는 내용의 종류는 비슷하다. 여자, 스포츠, 자동차, 게임, 영화, 책 등등. 그러나 다루는 방법은 차이가 있다.

9월에 있었던 이슈 중에 故 마광수에 대한 반응으로 그 차이를 엿볼 수 있다.


맥심은 아예 헌정 에디션을 냈다. 마광수에 대한 이슈로만 후반부를 모두 채워버렸다. 작가의 작품 『즐거운 사라』를 주제로 화보까지 촬영했다. 맥심은 아주 가볍지만, 항상 가볍지는 않다. 마냥 가볍게만 떠드는 것처럼 보여도, 진지하게 이야기를 할 줄 안다. 만나면 웃긴 친구가, 완전 진지하게 고민 상담까지 해주는 느낌.


플레이보이는 하나의 칼럼으로 이야기했지만, 매우 정중하고 격식있는 칼럼이었다. 애초에 다른 칼럼들도 진지하고 무거운 느낌이 강해서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반면, 크레이지 자이언트는 마광수에 대해 한 마디 언급도 없었다. 관심 없는 분야에는 입도 뻥끗하지 않는다. 철저히 흥미 위주의 주제에 집중되어 있는데, 남자vs남자 처럼 비교하여 경쟁 구도를 만든다거나, CIA처럼 비밀스러운 것들을 주제로 떠드는 것은 남자들이 항상하는 일이다. 이야기하는 것보다 가볍게, '떠든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잡지다. 마광수를 주제로 가볍게 떠들기는 어려우니, 아예 배제를 했다고 봐야겠다.


그냥 가볍게 피식피식 웃으려면 자이언트 크레이지를

피식피식 웃다가도 중요한 내용에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싶다면 맥심을

진중하게 남자가 고민해봐야할 내용으로 사색에 빠지고 싶다면 플레이보이를 읽으면 된다.





2. 화보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순위를 매긴다면 플레이보이 > 맥심 > 자이언트 크레이지 순서로 좋다.


자이언트 크레이지는 질 보다는 양으로 승부하는 것처럼 잔뜩 찍어놓는다. 보는 입장에서는 그냥 벗겨놓고 찍은 야한 사진 정도의 느낌을 받았다. 딱히 특별한 연출도, 이야기도 담지 않은 사진이 잔뜩 실려있다. 플레이보의 센터폴드나 맥심의 달력처럼 커다란 사진도 따로 없다.


맥심은 다양한 연출의 사진을 찍는다. 즐거운 사라를 주제로 촬영한 화보는 전체적인 느낌이 어쨌던 간에 캐릭터에 대한 연출은 나름대로 좋았다고 생각한다. 인물의 화보는 최대한 매력을 잘 보여주기 위해 그에 맞는 분위기로 연출한다. 무조건 벗기는 게 아니다.


플레이보이는 화보집과 비슷한 느낌으로 사진을 찍는다.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사진처럼 보인다. 인물의 화보는 자신의 개성을 잘 나타내는 사진이면서도, 맥심과 다르게 벗긴다. 벗은 상태에서 그에 맞는 분위기를 끌어낸다. 야한데, 야하기만 한 사진은 아니다. 묘한 느낌에 빠져드는 감성을 전달하는 사진을 볼 수 있다.


자이언트 크레이지는 복불복 뽑기 같은 화보

맥심은 다양한 사진가의 사진을 모아놓은 화보

플레이보이는 하나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누드 화보 같은 느낌이다.





3. 마치며


세 잡지를 읽으면서, 사실 이런 짓이 크게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잡지는 소모적인 책이다. 만들고, 읽고, 버려지는 일이 반복된다. 다른 책보다 그 속도가 빠르다. 소장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나 이전에 가지고 있던 패션지는 모두 버렸다. 지정된 속도에 맞춰서 간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잡지를 만드는 일은 시간이 정해진 전쟁처럼 이뤄진다. 어찌되었든 그 시간 내에 완성된 잡지를 발행하는 것부터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잡지를 선택해서 읽더라도, 당신의 만족은 그리 길지 않다. 애초에 잡지는 소모적인 책이기 때문에.

그러니 너무 깊게 고민하는 대신 손을 뻗어 책을 펼치는 게 좋다.


성인 남성지 비교 분석, 제 4장 [ 플레이보이 PLAYBOY ]



1953년 미국의 휴 헤프너가 창간한 성인 남성 오락 잡지, 플레이보이.

이름만 들어도 다 알 정도로 유명한 잡지임에도 불구하고 국내판이 정발 된 건 올해 8월에 간행된 9월 호가 처음이다. 10월로 창간 2호를 맞이했다. 마스코트인 바니(토끼)만 봐도 가슴이 설레는 잡지다. 일전에도 국내 정발 계획이 있었는데 무산 되었다가, 올해 돌아왔다. 서점에서 마주하고 한 동안감격스러워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당장 샀지.





1. 내용


목록부터 남다르다. Playboy Tastes, Playboy Picks, Playboy Talks, Playboy Loves, Playboy Reminds의 다섯 가지 큰 목차 안에 자잘한 기사들을 담아냈다. 외에도 스페셜 이슈를 하나 선정해서 그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10월 호의 스페셜 이슈는 Fantasy였다.


Special Issue : 선정된 주제에 맞는 내용의 칼럼들이 실려있다. '판타지'를 주제로 사람, 음악, 클럽, 영화, 디자인의 판타지를 풀어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디자인에 등장한 명함 사이즈의 전단지 재해석이었다. 그래픽디자이너들이 참여해서 밤거리에 뿌려지는 야하기만한 싸구려 전단지를 야하지만은 않은 디자인으로 탈바꿈 시켰다. 플레이보이의 색이 이런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야한데, 그게 전부가 아닌.


Playboy Tastes : 맛, 이라고 써놨지만 진짜 먹을 건 하나 밖에 안 나온다. 외에는 장난감, 게임, 만화, 인물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잡지를 진짜로 뜯어서 먹는 건 아니니까. 눈으로 맛본다면 꽤나 포식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있다. 성생활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음식을 별자리에 맞춰서 나눠놨다. 보아하니 큰 의미는 없을 거 같으니, 별자리에 상관 없이 먹을 수 있는 건 모두 챙겨 먹도록 하자.


여기에는 플레이보이가 페미니스트라는 칼럼도 실려있다. 단순한 생각으로는 굉장히 얼토당토 않는 이야기처럼 보이는데, 그럴 듯하게 잘 썼다. 논리적이다.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페미니즘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너무 많이 변색되어서, 자기 생각하고 싶은 대로의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언급하기가 껄끄럽다. 기고된 칼럼에서는 플레이보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에따라 플레이보이는 항상 페미니스트라는 내용이 실려있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지 말라'는 것은 우리가 믿어온 페미니즘을 부정하고, 나아가 인간의 건강한 욕망까지 부정하는 말이다. 

건강한 정신을 지닌 남성과 여성은 누구나 성적 대상이 되길 원한다. 그것은 인간의 기본적 욕망이기 때문이다. 그 욕망이 외설적이라며 부정하는 것은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고, 따라서 우리의 존재를 부정하는 거다.


Playboy Picks : 독특한 제품이나 특별한 공간, 인물을 소개한다. 그냥 보면 광고나 홍보처럼 보인다. 레몬 스퀴저부터 시작해서 비누, 자동차나 공연, 호텔까지 실린다. 


Playboy Talks : 예술, 책, 이슈, 사진, 인물들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10월 호에는 세상을 떠난 안타까운 작가 故 마광수에 대한 이야기도 여기에 실려있다. 그의 작품과 세계관을 잘 훑어주었다.


Playboy Loves : 인물 화보와 인터뷰가 여기 들어가 있다. 사진은 예쁘다. 모델과 사진의 분위기가 잘 어우러져 사진집을 보는 기분으로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수위는 세미 누드 정도. 애초에 플레이보이의 수위는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미국에서 라이벌로 여겨졌던 '팬트하우스'나 '허슬러'와 비교하면 아기자기한 수준. 이 두 잡지는 섹스 촬영 사진도 실려있다.


인터뷰는 따로 질문을 하지 않고, 인물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식으로 전개되어 있다. 짧은 자기소개서를 읽는 기분.


Playboy Reminds : 무언가를 회상하거나 떠올리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를 주제로 소설도 실려있다. 일러스트와 사진, 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있으며 과거 플레이보이에서 진행했던 인물의 인터뷰도 실려있다. 10월 호에 실린 인터뷰 주인공은 1985년의 젊은 잡스다. 그의 가치관을 알아볼 수 있는 솔직한 인터뷰가 궁금하면 어서 서점으로 달려가라. 부록으로 예쁜 사진도 볼 수 있다.





2. 화보


그냥 '예쁘게 표현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작가의 사진집을 보는 것 같다. '섹시'를 굳이 꺼내려고 하는 것 같지 않다. 대신 판타지를 꺼낸다. 특별히 유명하거나 예쁜 인물의 사진이 아니라 조금은 친근한 외모의 여성을 화보의 모델로 삼는 건, 플레이보이가 처음부터 해왔던 일이었다. 이들은 평범함에서 판타지를 통해 섹시함을 선보이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냥 야한 사진을 보고 싶다면 플레이보이를 사지 말고, 구글링에 '야짤' 같을 걸로 검색을 하는 게 마음 편하다. 플레이보이는 그냥 야하기만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개인적으로는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한다. 

페이지 중간에 길게 접혀있는 Centerfold 센터폴드는 소장용이다. 고이고이 간직해둬야지.





3. 개성


굉장히 차분하고 묵직하다. 가볍게 읽어 넘기기가 힘들다. 생각해야 하는 것들을 많이 던져주고 있다. 책의 본질이 인간을 사고하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본다면, 굉장히 고급 잡지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 대부분이 잡지를 시간 떼우기로 읽는 책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특히 플레이보이는 유명한만큼 '야한 잡지'라는 인식이 굉장히 강하다. 막상 읽어보면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가게 될 거다.


예술 쪽도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단편 소설 하나가 통째로 들어가 있는 잡지는 문예지를 제외하면 그리 흔치 않다. 라기 보다 그런 짓을 하는 잡지가 있기는 할까 싶다. 플레이보이는 그런 짓을 하는 잡지다. 국내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는데,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럽다. 얇지만 묵직한 책을 한 권 읽는 기분이다.






4. 총평


확실하게 성인을 타겟으로 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야한 사진이나 다루는 주제 때문이 아니라, 풍기고 있는 분위기가 그렇다. 읽고 있으면 30, 40대 아저씨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다.

살 때는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때는 무거운 생각으로. 어쩐지 진지해지는 그런 잡지다.


그렇지만 센터폴드만 보고 싶은 마음으로 사도 이해할 수 있다.

빨리 11월 호가 나왔으면 좋겠다.

성인 남성지 비교 분석, 제 3장 [ 크레이지 자이언트 CRAZY ZIANT ]



2015년 12월에 창간한 남성지. 남자를 위한 모든 콘텐츠를 담겠다고 하는데, 과연 어떨지?

언젠가부터 눈에 띄기는 했지만 굳이 사지는 않았지만, 이번 비교 분석을 위해 구매를 강행했다.

절대로 표지 모델이 마음에 들어서 그런 건 아니다.





1. 내용


GOSSIP : 가십이라고 했지만, 그냥 칼럼이나 다름 없는 글들이 실려있다. '남자 vs 남자'는 역사에 등장하는 남성들을 비교하는데, 이걸 가십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 그렇지만 내용은 훌륭하다.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이유도 알 수 있으니 궁금하면 직접 확인하라.


LOVE : 사랑에 대한 칼럼 두 편이 실려있다. 모두 '레오'라는 인물이 썼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두 편 다 그리 읽기 편한 글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별로 재미가 없었다. 글에도 음식처럼 맛이 있는데, 영 맛이 없는 글이었다. 게다가 뒷편에 실린 '남자가 사랑하는 아름다움에 관하여'는 다분히 외모지상주의적 관점이 들어가 있다. 물론, 못생긴 것보다 예쁜 게 좋다. 중요한 건 미의 기준은 모두 다르다는 사실이다. 이 내용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외모지상주의적'이라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필력은 좋은데, 사고가 부족한 글이었다.


INNER WORLD : 정확하게 '연애가 고달픈 남자들을 위한 지침서'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칼럼이 기고되어 있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될 법한 내용이다. "그러니까 이런 연애에 관한 책들은 일단 여자 근처에는 가게 하지만 실질적인 도움은 전혀 되지 못한다. 무슨 사랑을 책을 보고 하나?"라고 써 있다. 이 정도면 이중인격 수준이 아닐까, 하고 글쓴이를 확인했는데 '레오'였다. ......그래.


FUCKING EDUCATION : 중국어 선생님으로 보이는 여자의 분위기 있는 사진 몇 장과 중국어 강의가 있다. 맥심에서도 영어를 가르쳐주는 콘텐츠가 있는데 매우 흡사하다. 다만, 중국어로 언어가 바뀐 것 뿐. 아니다. 분위기도 다르다. 맥심은 가볍고 재미있는 문체를 구사하는데 반해, 자이언트는 딱딱하게 굳은 문체를 구사한다. 


SPORT : 스포츠 소식이 실리는 코너. 맥심은 축덕인데, 얘들은 야덕이다. 야구 기사만 실려있다.


BUSINESS : 회사 생활, 혹은 사회 생활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퇴사하는 법에 대한 칼럼이 실려있다. ...계속 이어지던 코너인데 10월 호를 끝으로 사라지는 코너인가...?


YOUR VOICE : 독자들의 편지. 편지라고 거창하게 쓰기는 했지만, 사실은 댓글. 독자와 소통을 하는 코너다. 에디터들이 재미있게 답변을 달아주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아쉽게도 노력에 비해 효과는 미미한 듯.


MILITARY & AVIATION : 밀리터리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단순히 우리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국가의 밀리터리를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10월 호에는 무려 미국 CIA에 대한 내용이 실려있다.


MOTOR & BIKE : 자동차를 소개하는 코너. 무려 다섯 종의 차량을 소개하는데, 광고가 잘 들어오는 편인 것 같다.


GAME & ANI : 게임과 만화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오버워치'나 '소녀전선'과 같은 대중성 있는 게임의 캐릭터를 분석하고, 포괄적인 범위의 만화를 소개하고 있다. 내용이 알찬 걸로 보아 덕후의 기질이 다분한 에디터가 있는 것 같다. (반갑다, 동족)


BOOK & MOVIE & MUSIC : 있는 그래도 책, 영화, 음악에 대한 내용. 대부분 추천이다. '그녀는 당신의 빈 머리에 만족하지 않는다'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데드풀'이나 '어벤져스'와 같은 그래픽노블을 추천하는 건......? 심지어 '원피스 매거진 Vol. 1'도 추천하고 있다. (역시나군, 동족) 일반 도서는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기 시작한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에 반해 영화는 확고한 취향을 갖고 있으면서도 포괄적으로 선정했다. 때문에 대중들에게 생소한 작품도 많이 있다. 일단 러시아 영화가 올라와 있다는 것도 신기. 내용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네이버 평점은 1점.


HOT PLACE : 화제의 장소. 서울오토모티브위크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암스테르담 에로틱 뮤지엄은... HOT이 그 HOT이 아닌가, 하는데 캐나다 밴쿠버의 아름다운 자연 광경을 보여준다. ...이 쯤되면 다른 이름을 생각해봐야 하는 거 아닐까.


ONCE UPON A TIME : 직역하면 '옛날 옛날에'라는 코너.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아이템을 골라서 다룬다. 10월 호에 실려있는 건 만화 『내일의 죠』. 이쯤되면 덕후가 숨어있다는 가설이 거의 확실시 되는 분위기다.


HOT GIRL : 크레이지 자이언트의 꽃! 이 잡지를 사는 많은 남자들이 가장 원하는 내용! 아름다운 여성들의 화보와 인터뷰! 내가 너무 흥분한 것처럼 보이나! 맞다!


PHOTO B FILE : 촬영 중 나온 아쉬운 B컷을 모아서 보여준다. 보고 있으면 정말 아쉽다, 는 생각이 드는 사진들도 종종 보인다.


FITNESS & FOOD : 뜬금 없이 헬스 잡지가 되는 부분. 운동 방법이 아주 깔끔하게 나온다. 헬스 잡지를 잘못 꺼냈다 싶을 정도로 잘 설명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잔뜩 채워넣은 티가 난다. 콘텐츠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뭐 & 뭐'가 계속 나온다. 남자들이 좋아할만한 건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하지만 내가 봤을 때, 남자들은 HOT GIRL만 실려있어도 잡지를 살 거다.





2. 화보


위 사진은 일부러 날려서 찍은 거다. 완전 누드는 아니지만, 궁금해 하라는 차원에서.


딱 잘라서 좋다, 나쁘다 라고 얘기하기가 매우 어렵다. 질 보다는 양으로 밀어 붙이는 스타일인지, 10월 호가 계를 탄 건지 무려 다섯 명의 화보가 실려있다. 어떤 화보는 굉장히 잘 뽑았는데, 어떤 화보는 B컷을 모아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격차가 생각보다 심해서 조금 당혹스러울 정도랄까?


화보의 퀄리티는 둘째 치더라도, 인터뷰가 아쉽다. 어색한 사이에서 주고 받는 질의응답 같은 느낌이었다.

표지를 장식한 아리아는 인터뷰가 아예 없었다. 제일 궁금했는데, 제기랄.





크레이지 자이언트는 '자이언트 걸'을 선정해서 잡지에 싣는데, 이게 수많은 HOT GIRL의 사진을 뽑아내는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3. 개성, 그리고 총평


창간한지 고작 2년 밖에 되지 않은 잡지다. 다른 잡지와 비교하면 후발 주자인 셈이다. 

후발 주자인만큼 뒤쫓는 이미지가 강하다. 다른 남성지와 차별을 둔다면 더욱 좋겠지만, 후발 주자의 특성상 앞에 있는 선발 주자를 무시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선발을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닮아간다. 자신의 개성이 없어지는 거다. 스트레이트를 잘 뻗는 선발 투수 다음으로 들어올 투수가 스트레이트를 잘 던질 필요는 없다. 커브나 체인지 업 같은 공이면 된다. 선발과 차별화가 되는 부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크레이지 자이언트는 아쉽게도 특별한 개성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어떻게든 차별화를 만드는 게 시급해 보인다.



4. 잡지 이벤트


크레이지 자이언트에서 화보집을 발간한다. 잡지에는 실리지 않았던 사진들로 구성했다는데, 궁금해서 주문했다.

선주문을 하면 20% 할인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으며, 무려 1년 치의 과월호를 증정한다.

홈페이지를 통해서 주문하면 된다는데, 현재 홈페이지가 공사 중이다. 

해서 기재된 연락처 070 - 8726 - 2121 gtquestion@naver.com 으로 문의하면 친절한 답변을 받을 수 있다. 


성인 남성지 비교 분석, 제 1장 [ 三巴戰 ]



일전에 잡지에 대한 포스팅을 한 적이 있다. 그 중에 한 잡지가 굉장히 인기가 좋았다. 얼마나 좋은지 유입 키워드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아직도 키워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게 『맥심』이다. 맥심에 대해서 심도 있게 다룬 글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많은 이들이 맥심을 검색하고 들어오다니......(아마도 사진 때문이었겠지만)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성인 남성지 특집을 하기로 했다.

남성지 전부를 다루기에는 범위가 너무 넓어서, 성인 남성지로 제한을 두었다. 마침 『플레이보이』도 정발이 된지 2달 밖에 되지 않아서, 비교 분석하는 즐거움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비교할 성인 남성지는 『크레이지 자이언트』 『맥심』 『플레이보이』 총 세 권이다.

엄청난 우연으로 10월호를 내가 모두 구매했기 때문에, 10월호의 내용을 가지고 비교 분석을 하도록하겠다.





각 잡지를 비교 분석할 항목은 다음 세 가지로 정한다.


1. 내용

잡지에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 어떤 이야기를 주로 하는가?


2. 화보

화보의 퀄리티는 어떤가? 모델 선정은? 노출의 정도는?


3. 개성

각 잡지만이 가지고 있는 개성이 무엇인가? 경쟁력이 있는가?


각 잡지를 따로따로 분석한 다음, 위 세 항목을 놓고 비교를 할 예정이다.

이 글을 포함해서 총 5장으로 이루어진다.





미리 언급하지만 사진이 목적이라면 그냥 구글링하는 편이 더 빠를 거다.

도대체 이름만 들어도 야릇한 이 잡지에 무슨 내용이 들어있는지 궁금한 사람들을 위한 글이다.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친구들도 봤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중에 책을 구매해서 볼 지도 모르니까. 아직 성인 남성지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여성 분들도 환영한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남성지를 보면 남자라는 종족을 알아가는데 약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게 당신의 남자친구이든, 그냥 썸만 타는 남자든, 딴 년의 남자든 말이다.





금방 업데이트 할테니, 두 눈 뜨고 잘 봐주시길.


시, 그리고 나의 첫 시집 『맨발』(2004)



시(詩)는 자신의 감상, 사상 따위를 함축하여 쓰는 글이다.

개인적으로 문학 중에 가장 어려운 장르라고 생각한다. 우리 말을 연구하고 가장 잘 쓰는 사람의 부류는 시인들이 아닐까. 자주 읽지는 않지만, 이따금 마주치는 그들의 언어는 너무 낯선 것들이다. 나와 같은 말을 사용하고 있다고 믿기지 않을 때도 있다. 당신이 화법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면 화술에 대한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시집 한 권을 읽어보는 걸 권하고 싶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어려운 문학이지만 가장 쉽게 쓸 수 있는 문학이기도 하다.

일단 짧으니까. 소설은 구성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일정한 분량이 필요하지만, 시에게는 그러한 틀이 없다. 규제가 적다. 오죽하면 '시적허용'이라는 말까지 생겼을까. 때문에 나 역시 제일 처음 쓴 작품은 '시'였다.


하지만 당시 내가 쓴 시는 전부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저 있어 보이도록 쓴, 허세 가득 찬 시였다. 때문에 단 한 번도 스스로 시를 잘 쓴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가끔씩 시를 쓴다. 시처럼 편하게 감정을 소모하는 방법도 없다. 배출하지 못하는 답답한 감정이 있다면, 술을 마시고 욕을 하는 대신 시를 써라. 남에게 보일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법이다. 거기에 욕이 들어가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자유롭게 쓰고 싶은대로. 아름다운 감상 보다 질척이는 현실에 대한 반감이 더욱 쉽게 시로 옮겨질 거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문태준 시인의 『맨발』은 선생이 내게 처음으로 준 시집이었다.

선생은 내 시를 보고 단호하게 말했다. 너는 시 보다는 소설이 낫다, 고. 그럼에도 내게 시집을 준 건, 시에서만 얻어지는 감성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잘 알지 못했지만, 이제는 알 것도 같다. 여전히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시는 명확하게 보이는 것보다 안개에 가려진 듯, 흐릿하게 보일수록 아름답다. 굳이 시에 의미, 내용, 주제를 파악하려 하지 않아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문학이다. 그래서 감정이 피폐해지면 아무 생각 없이 시집을 펼친다. 처음에는 몇 줄의 문장으로만 보이다가, 차츰 메마른 감정에 단비처럼 내려앉는 걸 느낄 수 있다.





어물전 개조개 한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 「맨발」......中 문태준


우리나라에서 시는 항상 비주류다.

읽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주입식 교육의 폐해라고 생각한다. 시구, 시어마다 의미를 정해두고 외우도록 읽었으니, 시가 전달하는 감정을 느낄 시간이 없다. 그런 식으로 10년 동안 교과서와 문제집에서 시를 읽으니, 재미있을 리가 없다. 아름답게 보일 리가 없다. 다른 문학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문제를 풀기위한 도구로써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한다. 청소년 권장도서는 교과서에 실리는지, 기출문제에 실리는 횟수에 따라 정해진다. 아이들의 감성을 메마르게 해놓고 책을 읽으라고 하는 건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나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황을 맞이했을 때, 가지고 있는 시집을 집어 든다.

그 안에는 언제나 나를 위로해주는 언어들로 가득하다. 그러니 위로 받고 싶은 당신은 시집을 봐야 한다.

필사하기 좋은 책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필사(筆寫)는 글을 베끼어 쓰는 일을 뜻한다. 

나에게 글을 가르쳐 준 선생이 제일 처음 시켰던 일이기도 하다. 그 때 선생이 내게 준 책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다. 1000자 원고지에 한 글자 씩 베끼기 시작했다. 학교 쉬는 시간이면 원고지를 펼치고 미친 듯이 베껴 쓴 기억이 난다. 덕분에 나름대로 탄탄한 문장력을 갖게 됐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았을 때, 필사를 해서 좋은 게 몇 가지 있다.


1. 문장이 좋아진다.

내가 좋은 문장을 익히기 위해서 필사를 했고, 그 효과를 보았기 때문에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다만, 필사를 하려는 작품의 문장이 왜, 어디가, 어떻게 좋은지 알아야 효과를 볼 수 있다. 무작정 베낀다고 문장이 내 손에 익는 게 아니다.


2. 작품 이해도가 높아진다.

한 글자, 한 문장, 한 문단을 집중해서 읽어가며 필사를 한다. 당연히 작품을 집중해서 보게 된다. 자연스럽게 이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3. 머리가 아니라 손이 움직인다.

'잘 써야지' 라는 생각은 머리에서 하는 거고, 결국 쓰는 건 손이다. 운동 선수들이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세우며 반복 훈련을 하는 이유는, 실제 경기를 할 때 생각보다 빠르게 몸이 움직이는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다. 글도 마찬가지다. 절대 머리에서 쓰는 게 아니다. 쓰는 건 손이다. 머리는 당신의 손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요소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마이크 타이슨의 명언 "모두 그럴 듯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쳐맞기 전까지는."을 떠올려라. 모두 그럴 듯하게 쓸 생각을 하고 있다. 손이 움직이기 전까지는.


그렇다면 선생은 왜 수많은 책 중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골랐을까?





간결하고 담백한 문장이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짧게 쓰기를 못한다. 쓸데 없는 말을 계속 한다. 문장이 길어진다. 하나의 문장이 몇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읽는 사람은 혼란스럽다. 도대체 이 문장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쓸 때는 모른다. 다 쓰고 읽어보면, 이 쓰레기를 자신이 썼다는 사실에 고개를 들지 못한다. 이거보다 심각한 상황은 자신이 쓴 말도 안 되는 문장이 썩 괜찮다고 느끼게 되는 거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문장은 단문(短文)이다. 짧고 간결하며, 문장 하나가 하나의 의미를 담는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당신이 써놓은 쓰레기 중 하나만 들춰봐도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다. 


나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잠이 나를 눌러왔다. 나는 부서진 대문 한 짝을 끌어내 그 위에 엎드렸다. 햇살을 등에 느끼며 나는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우리 식구와 지섭을 제외하고 세계는 모두 이상했다. 아니다. 아버지와 지섭마저 좀 이상했다. 나는 햇살 속에서 꿈을 꾸었다. 영희가 팬지꽃 두 송이를 공장 폐수 속에 던져넣고 있었다.


문장을 짧게 쓴다. 명확하게 전달하려는 것만 담아낸다. 불필요한 수식어, 미사여구는 모두 제외한다. 추상적으로 쓰지 않는다. 들려주지 말고 보여줘라. 좋은 글 쓰기에 필요한 이 요소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담겨있다. 





좋은 글쓰기에 대한 책은 계속 나온다. 요즘에는 코너도 따로 있을 정도다. 나 역시 글쓰기에 관한 책 몇 권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 책들을 읽는다고 해서 자신의 글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많이 써봐야 한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과 원고지를 책상에 펼치고 계속해서 손을 움직여라.


잊지 마라.

글을 쓰는 건 머리가 아니라 손이다.


이야기의 제왕이 쓴 단편들 『스켈레톤 크루』



스티븐 킹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미국 작가다. 사실, 다른 작가들을 그리 많이 알지도 못한다. 번역체를 그리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외국 작가의 작품은 잘 보지 않는 편이다. 물론, 전부는 아니지만. 예외적으로 스티븐 킹의 작품이 대표적인데, 이건 내 의도라고 할 수가 없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스티븐 킹의 작품을 경험했다. 최근에 개봉한 공포 영화 『 It (그것) 』의 원작자가 스티븐 킹이다. 스티븐 킹의 작품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영화화 되고 있었다. 『미저리』, 『샤이닝』, 『미스트』, 리메이크까지 된 『캐리』 등. 공포 영화 뿐만 아니라, 부동의 영화 평점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네이버 영화 랭킹) 『쇼생크 탈출』도 스티븐 킹의 작품이 원작이다.

이 외에도 너무 많은 작품들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는가?
스티븐 킹은 너무 많은 작품들을 발표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스티븐 킹의 가장 큰 특징은 다작(多作)이다.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글을 써내려가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정작 본인은 자기처럼 글을 쓰지 않는 작가들에게 "어떻게 작품을 아주 가끔씩만 발표하는지 무척 궁금해서 못 참겠다"는 말을 남겼다. 이건 뭐, 밥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된다는 소리처럼 들린다.


작품이 워낙에 많아서 뭐부터 읽으면 좋을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럴 때는 역시 많은 게 제일이다. 소설집을 사자.

전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소설의 최고는 단편이다. 수많은 글을 쓰고, 사람들의 가슴과 머리 속에 각인되는 작품을 쓴 작가의 단편을 모아서 볼 수 있다면 최고 좋은 게 아닐까? 장담컨데 이 중에 한 편은 마음에 들 수밖에 없다.


나는 『캐리』와 같은 장편으로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었다. 『캐리』나 『미스트』는 개인적인 취향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독자를 끌어당기는 이야기였다. 스티븐 킹의 이야기에는 사람을 매료시키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그 무언가를 느껴보고 싶다면 단편집을 하나 사러 가면 된다.


『스켈레톤 크루』 (2006)는 상, 하 두 권으로 나눠져 있는 스티븐 킹의 단편 소설집이다.

작품 목록이 워낙 많아서 나열하기 귀찮지만, 친절하게 아래 적는다.


  • 안개

  • 호랑이가 있다

  • 원숭이

  • 카인의 부활

  • 토드 부인의 지름길

  • 조운트

  • 결혼 축하 연주

  • 편집증에 관한 노래

  • 뗏목


  • 신들의 워드프로세서

  • 악수하지 않는 남자

  • 비치월드

  • 사신의 이미지

  • 노나

  • 오웬을 위하여

  • 서바이버 타입

  • 오토 삼촌의 트럭

  • 우유배달부 1 : 아침의 배달

  • 우유배달부 2 : 세탁 게임 이야기

  • 할머니

  • 고무 탄환의 발라드

  • 리치


이야기 하나 하나가 전부 색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종합 과자 선물 세트를 까먹는 기분으로 책을 읽을 수 있다.

스티븐 킹은 독특한 상상력으로 "만약 ~이 ~한다면?"이라는 가정을 세우고, 거기에 살을 붙여 소설을 만드는 식으로 글을 쓴다. 마치,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진짜 같은 소설을 만들어 낸다. 때문에 그의 작품에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하권에 수록된 「고무 탄환의 발라드」에서 엿보인 작가의 발상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작품은 신문사에 편집장이 미쳐버린 소설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진행된다. 소설가는 자신의 타자기에 특별한 요정이 산다고 믿는다. '포르니트'라는 이 요정은 행운을 가져온다. 소설가는 이 요정의 힘을 빌어 글을 쓴다, 고 스스로 믿는다. 자신의 상상, 망상을 지나 광기로 탄생한 현실에서 이 소설가는 어떻게 될 것인가...... 궁금하다면 당장 책을 사러 가자.


"정말이었을 지도 모르지. 하지만 장난은 미신으로 바뀌고 끝내는 신념으로 굳어져 버렸어. 

그건...... 그래, 처음엔 가벼운 꿈이었다가 끝내 딱딱한 현실이 되어 버린 꿈 같은 거야.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딱딱한 그런 꿈 말일세."




"아무리 안정된 사람이라도 결국은 기름 바른 밧줄에 간신히 매달려 제정신을 차리고 있다는 거지. 

난 그 점을 확신하네. 이성이라는 회로는 겉만 번지르르하게 인간이라는 동물에게 장착된 거야."

이상의 작가 정신을 계승하는 문학상 작품집 『이상 문학상 작품집』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문학상이 존재한다. 어떤 문학상이든지 수상하는 일은 어렵고, 그 어려움을 뚫은 수상작들은 읽을만한 작품이라는 보증을 받게 된다. 그 중에서도 문학사상이 주최하는 '이상 문학상' 수상작들은 훌륭한 편이다. 때문에 좋아하는 작가가 목록에 없더라도 매년 사두는 책 중에 하나다. 만약, 한국 소설을 읽어보고 싶은데 딱히 알거나 떠오르는 작품, 작가가 없다면 이상 문학상 작품집을 추천한다. 저 수많은 작품들 중에 하나는 반드시 당신의 마음에 들 것이다. 여태까지 내게 그랬던 소설집이다.


1회

1977년

<서울의 달빛 0장>

김승옥

2회

1978년

<잔인한 도시>

이청준

3회

1979년

<저녁의 게임>

오정희

4회

1980년

<관계>

유재용

5회

1981년

<엄마의 말뚝>

박완서

6회

1982년

<깊고 푸른 밤>

최인호

7회

1983년

<먼 그대>

서영은

8회

1984년

<어두운 기억의 저편>

이균영

9회

1985년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이제하

10회

1986년

<흐르는 북>

최일남

11회

1987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이문열

12회

1988년

<붉은 방>

임철우

<해변의 길손>

한승원

13회

1989년

<겨울의 환>

김채원

14회

1990년

<마음의 감옥>

김원일

15회

1991년

<우리 시대의 소설가>

조성기

16회

1992년

<숨은 꽃>

양귀자

17회

1993년

<얼음의 도가니>

최수철

18회

1994년

<하나코는 없다>

최윤

19회

1995년

<하얀 배>

윤후명

20회

1996년

<천지간>

윤대녕

21회

1997년

<사랑의 예감>

김지원

22회

1998년

<아내의 상자>

은희경

23회

1999년

<내 마음의 옥탑방>

박상우

24회

2000년

<시인의 별>

이인화

25회

2001년

<부석사>

신경숙

26회

2002년

<뱀장어 스튜>

권지예

27회

2003년

<바다와 나비>

김인숙

28회

2004년

<화장>

김훈

29회

2005년

<몽고반점>

한강

30회

2006년

<밤이여, 나뉘어라>

정미경

31회

2007년

<천사는 여기 머문다>

전경린

32회

2008년

<사랑을 믿다>

권여선

33회

2009년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김연수

34회

2010년

<아침의 문>

박민규

35회

2011년

<맨발로 글목을 돌다>

공지영

36회

2012년

<옥수수와 나>

김영하

37회

2013년

<침묵의 미래>

김애란

38회

2014년

<몬순>

편혜영

39회

2015년

<뿌리 이야기>

김숨

40회

2016년

<천국의 문>

김경욱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이상문학상 [李箱文學賞] (두산백과)



2017년도 대상 수상작은 구효서의 풍경소리다.


문학상의 특징은 종이 한 장, 혹은 한 문장 차이로 순위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여기에 실린 모든 작품이 사실은 대상 수상작이라 불러도 좋은 작품이다. 이미 훌륭하다고 검증된 작품이니 아무거나 집어도 후회는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역대 수상작 중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을 몇 개 꼽자면


20회 대상 수상작 「천지간(天地間)」 윤대녕

상징이 무엇인지 공부하기 좋은 작품. 몇 번이나 분석한 작품 중 하나다.

작품 자체의 완성도가 너무 뛰어나서, 이 소설을 보면 내가 쓰는 소설을 쓰레기처럼 느껴질 정도.

소설의 치밀함과 상징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다면 추천드리는 작품이다.


34회 대상 수상작 「아침의 문」 박민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 마찬가지로 몇 번이나 분석했던 작품 중 하나.

소설이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걸 새삼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짧은 단편임에도 먹먹한 여운을 남긴다. 뒷맛이 오래도록 남아있는 글을 좋아하는 분들께 추천한다.


36회 대상 수상작 「옥수수와 나」 김영하

김영하는 글을 잘 쓰는 작가임에 틀림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로 좋아하는 작가는 아닌데, 이 작품은 좀 미쳤다. 이상 문학상 작품집은 대상 수상작을 제일 처음 배치한다. 자연스럽게 이 작품을 먼저 읽게 됐는데, 다음 작품들로 넘어가질 못했다. 너무 재미있어서. 거짓말이 아니라 별 거 없는 내용인데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고백하자면 아직까지도 36회 작품집은 이 소설 하나 말고는 보질 못했다.

최근 방송에도 나오는 김영하 작가의 작품이 궁금하다면, 굳이 길고 어지러운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지 마시고 이 작품을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


뭐, 이래봐야 개인적인 취향이기 때문에 직접 읽어보고 고르는 게 제일 좋다.

서점에 가시라.





이상 문학상이 얼마나 좋은 작품을 수록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던 건, 집 서재에서 95년도 작품집을 찾았을 때였다. 수록작들이 유독 훌륭한 건 아니었다. 이 책은 내가 산 게 아니라, 부모님이 산 거다. 지금보다 젊은 시절의 부모님이 말이다. 세대를 막론하고 이상 문학상은 언제나 좋은 작품들을 선정했다. 





나는 민달팽이처럼 기어서 뿌리에 다가간다. 

두 가닥의 뿌리가 열십자로 뻗어 나가면서, 엇갈린 지점에 저절로 생겨난 움푹한 곳에 얼굴을 파묻는다. 

실뿌리들이 소소소 일어 이마와 귓바퀴를 간질이고, 독기 서린 잔뿌리 끝이 목을 찔러오지만 얼굴을 더, 서슴서슴 주저하면서도 얼굴을 더...... 

변심한 애인이 깊이 잠들기를 기다려 가장 은밀한 곳을, 외설스러우면서도 성스러운 곳을 탐하듯.  


- 39회 대상 수상작 「뿌리 이야기」 中...... 김숨 作




이따금 표지 디자인이 심심찮게 바뀌는데, 매년 같은 표지라고 생각하다가도 모아서 확인해보면 달라져 있는 걸 볼 수 있다.

디자인 뿐만 아니라 종이 재질이나 프로필, 폰트까지 바뀌는 때도 있다. 이런 걸 하나하나 확인해보는 것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시리즈를 사서 책장에 꽂아둘 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라 생각한다.


아직 책장에 이런 작품집이 하나도 없다면, 서점에 가서 아무거나 하나 집어오는 건 어떨까.

분명, 다른 작품집도 골라오게 될 거다.


가성비 갑! 박민규의 소설집 『더블』(2010)



일전에 한국 소설을 읽으라 얘기해놓고, 아무런 책도 소개해주지 않는다면 무책임한 게 아닐까 싶어서 꺼내든 책이다.

가성비를 따졌을 때 최고라고 생각되는 소설집, 『더블』 (2010)이다. 


책에서 가성비를 따지는 게 웃기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쨘 - !





보시다시피 소설집은 Side A, B 두 권으로 두성되어 있다. 안에 수록된 작품은 


  • 근처

  • 누런 강 배 한 척

  • 굿바이, 제플린

  • 끝까지 이럴래?

  • 양을 만든 그분께서 당신을 만드셨을까?

  • 굿모닝 존 웨인

  • 축구도 잘해요

  • 크로만, 운

  • 낮잠

  • 루디

  • 𪚥

  • 비치보이스

  • 아스피린

  •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

  • 아치

  • 슬(膝)


총 18 작품이다. 많기도 하지.

거기에 일러스트가 그려진 Double Art Book도 함께 들어있으니, 가성비를 따질만 하지 않은가?





박민규 작가는 괴짜다. 그의 작품 세계는 독특함으로 가득 차 있다. 독보적인 세계관으로 독자들을 매혹시킨다. 작품집에 있는 모든 작품이 재미있다.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던 몇 작품을 소개한다.



1. 「근처」


Side A에 첫번째로 수록되어 있는 작품이다.

책을 펼치면 나오는 첫 작품이라 아무 생각 없이 읽었는데, 내가 아는 박민규의 작품치고는 얌전한 느낌이었다. 

뭔가 실망스러운 느낌이 들 때 쯤, 충격적일 정도로 뒷통수를 때리는 포인트가 등장한다. 작품의 클라이막스가 끝내주는 작품.



나는 기쁘고, 기쁘지도 않다. 나는 슬픈데 슬픈 것만도 아니다. 나는 화가 나지만 어째서 화가 나는지 모르겠다. 나는 아프지만 아프지 않은 부분도 있다. 나는 즐겁고, 실은 즐거울 하등의 이유가 없다. 모르겠다. 느끼는 모든 감정을 추스르고 섞으면 결국 체념이 된다. 그 것을 캄캄하고, 끝없이 깊고, 풍부하다. 인간이 이를 곳은

 

결국 체념이다.



2.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


처음 이 제목을 보자마자 머릿속은 '대체 이 새끼는 뭐하는 새끼지?'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이 작품을 다 읽은 다음에는 '대체 이 새끼는 뭐하는 씨발 새끼지?'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상상력이 기발하다는 말로는 부족 오지고, 지리는 각 하다. 진부한 표현인데 기상천외한 작가의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언어유희란 이 정도는 되야 붙을 수 있는 수식어다.


중심에, 작지만 아주 단단한 모습으로… 그런 기분을 알까 모르겠다. 마누라의 딜도는 수입 명품도 고급 진동형도 아니었다.


일반 막대형이었다.





3. 「𪚥」


가장 획 수가 많은 한자라고 알려져 있는 말 많을 절, 수다스러울 절이다. 龍(용 용)이 네 개 모여서 만들어진 한자인데, 작품을 읽으면 제목을 왜 이렇게 지었는지 알 수 있다. 이 한자는 컴퓨터에서 쓰기 어려운 글자다. 쳐서는 쓸 수 없고 유니코드를 사용해서 입력해야 되기 때문인데, 예전에는 이 방법을 몰라서 龍을 네 개 써버리도 했다.


개인적으로 특별한 작품이다. 글을 가르쳐 준 선생이 내게 추천한 첫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장르 소설, 우리나라의 판타지나 무협지에 빠져있을 시기였다. 그렇지만 그런 글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한 내 눈으로 봐도 우리나라 판타지나 무협지는 수준이 그리 높지 않았는데, 중학생 시절 사이트에 연재한 작품이 출판 제의까지 받으면서 그런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제의를 거절한 이유는 내가 쓴 작품을 다른 누군가에게 보여주면 창피해서 죽어버릴 거라는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 내게 선생이 이 작품을 추천했다. 장르 소설이 아니더라도 무협을 배경으로 소설을 쓸 수 있다. 장르따위를 구분하는 건 멍청한 짓이다. 내게 그런 인식을 강하게 심어준 작품이고, 박민규 작가가 내게는 그런 인물이다.


작품의 배경은 현대지만 등장인물은 절대무림의 사천왕, 동방의 四龍이다. 이제 왜 제목이 𪚥인지 짐작이 가는가?

불사의 육신을 가진 무림의 절대 고수들이 현대를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작가의 해학이 얼마나 뛰어난지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께서 모이면 뭘요... 뭘... 정부라도 엎을 겁니까? 네 분이 힘 합치면 뭐... 삼성한테 이길 수 있습니까?



가성비는 단순히 양이 많아서 쓴 수식어가 아니다.

박민규의 작품을 이렇게 모아서 볼 수 있기 때문에 쓴 수식어다.

기욤 뮈소의 작품이 하늘 높이 올라가는 기다란 한 발짜리 폭죽이라면, 박민규의 『더블』은 우리 바로 앞에서 언제 끝날지 모르도록 계속해서 터지는 18발짜리 폭죽이라고 하겠다. 그러고보니 수록된 작품이 18 개라니... 이 새끼작가라면 의도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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