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에 해당되는 글 41건

  1. 2018.01.12 감정적인 문장의 소유자 김연수 『사월의 미, 칠월의 솔』
  2. 2018.01.11 벌거벗은 청춘의 마력 『라이언 맥긴리 컬렉션 : 혼자 걷는』
  3. 2018.01.10 맨부커 상 수상작 한강의 『채식주의자』
  4. 2018.01.09 새해 맞이 남성지 탐구 『크레이지 자이언트』『맥심』『플레이보이』
  5. 2018.01.08 길들일 수 없는 작가 이외수의 초기작 『들개』
  6. 2018.01.07 2018년 새해를 맞이해서 선물하기 좋은 『자문자답』
  7. 2018.01.06 2017 티스토리 결산 "개구리의 시선을 이야기합니다."
  8. 2018.01.05 영화 『매트릭스』분석 : 6. 마치며
  9. 2018.01.04 영화 『매트릭스』분석 : 5. 시뮬라크르, 그리고 종말
  10. 2018.01.02 영화 『매트릭스』분석 : 3. 진실을 마주하고

감정적인 문장의 소유자 김연수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전에는 박민규처럼 톡톡 튀고 독자를 현혹시키는 글에 끌렸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글에도 끌리기 시작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작가가 김연수다.


김연수는 93년에 시로 등단을 했지만, 이후 소설을 발표하며 왕성한 활동을 보인 작가다. - 이렇게 말해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게 슬픈 일이다. 나에게도 하는 소리지만 얼마나 책을 안 읽는다는 말인가 - SNS에서 이런 글귀를 본 적이 있을 거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건 나의 일이었다'


이 글귀를 쓴 사람이 바로 김연수 작가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에 등장하는 글귀다. 김연수는 장, 단편 가리지 않고 많은 글을 쓴 작가다. 덕분에 김연수의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딱히 읽을 거리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이라면 김연수 작가의 작품을 하나 씩 펼쳐보는 걸 추천한다. 나는 군대에 있을 때 읽기 시작했다.



소설집으로는 가장 최근(2013)에 출간된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이 오늘 소개할 책이다.


수록작으로 「벚꽃 새해」 「깊은 밤, 기린의 말」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일기예보의 기법」 「주쌩뚜디피니를 듣던 터널의 밤」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동욱」 「우는 시늉을 하네」 「파주로」 「인구가 나다」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가 있다. 총 11 작품이다. 김연수 작품의 장점이라면 쉽게 읽힌다는 걸까. 나는 김연수 작가의 글을 읽을 때 단 한 호흡도 쉰 적이 없다. 한국 작가 중에서는 유일했던 것 같다. 여류 작가들은 나를 숨막히게 하고, 박민규와 같은 톡톡 튀는 글은 이따금 잠시 책을 내려놓게 만드는 충격을 선사하기도 하니까, 그럴 수가 없다. 김연수는 옆집 아저씨가 자기 얘기를 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글을 쓴다.


그 옆집 아저씨가 굉장한 로맨티스트에 감정 넘치는 게 특이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을 재미있게 읽었다. 꼴에 글쟁이라고 뭔가를 쓰는 이야기에는 언제나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소설가라니 아주 흥미롭습니다"라고 말하더니 그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잠깐 내 얘기를 들을 시간이 있겠습니까?"라고 지갑을 손에 든 채 그가 내게 물었다. 그때 나는 글을 쓰는 건 고사하고 책을 읽을 마음도 들지 않아서 소설가로서는 폐업상태였고, 따라서 김일성대학교에 입학해서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노인이 소설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인생담에 전혀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


-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中


소설은 하나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문단으로, 문단은 문장으로, 문장은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


습작을 하거나 읽다보면 어느 부분에 힘이 들어갔고, 힘을 뺐는지 보일 때가 있다. 의도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의 미숙함을 느끼고 좌절할 경우가 있다. 가장 좋은 글은 힘이 들어갔는지, 빠졌는지 전혀 보이지 않는 글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가슴으로 와서 울려 퍼지는 글. 김연수는 굉장히 아무렇지도 않게 글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읽는 입장에서는 말이다.



의식하지 않고 감정적인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김연수 작가의 작품을 읽는 걸 추천한다.


어떤 작품이라도 쉬이 편하게 읽어내려갈 수 있을테니.




벌거벗은 청춘의 마력 『라이언 맥긴리 컬렉션 : 혼자 걷는』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영감을 얻을 필요가 있다.


자신이 창작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말자. 영감은 자신의 사고에서도 작용되는, 이를테면 자신이 본래 하지 못했던 새로운 생각의 원동력이다. 매일 같이 보던 사물도 다르게 볼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책이 우리에게 사고를 요구하는 도구였다면, 예술은 우리에게 새로운 사고 회로를 제공하는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영감은 그 예술에서부터 온다.



나는 글을 쓰기 위해서라는 핑계를 대고, 많은 사진집을 사는 사람이다.


게다가, 내 목적과는 상관 없이 눈이 즐겁지 않은가. 그들이 잡아 놓은 시간의 한 장면을 보고 있으면, 그들의 과거와 미래까지도 생각하며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기도 한다. 아프리카와 알레스카 사진집이나 마야 문명의 사진을 찍어둔 원서도 가지고 있으며, 로타와 경인씨의 말 많은 여성 화보집도 소유하고 있다. 이들 모두 내게는 영감을 주는 도구이며, 아마 당신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아직까지 사진집을 보지 않아서 어색하게 느낄 뿐이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책에도 목적을 부여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에 아무생각 없이 사진집을 구매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런 사람들에게 라이언 맥긴리의 사진집을 추천한다.



프랑스 출신의 이 사진 작가는 몽환적이고 매력적인 사진을 찍는다.


2013년 대림미술관에서 '청춘 - 그 찬란한 기록'이라는 전시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우리나라까지 이름을 떨쳤다. 당시에 라이언 맥긴리의 사진을 이용한 상품들이 많이 나왔다. 나도 사진이 프린트된 캔들을 구매했었다.


이 책은 라이언 맥긴리 컬렉션의 두 번 째 시리즈다.


'청춘' 시리즈의 특색은 벌거벗은 소년, 소녀가 뛰어나니고, 떨어지고, 뛰어오르고, 눕고, 뒹굴고, 바라보고....... 그런 찰나의 순간을 아름답게 잡아뒀다는 것에 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들에게서 色은 하나도 느낄 수 없는 걸 보면, 누드와 에로티시즘은 역시 전혀 다른 성질을 갖고 있는 게 틀림없다. 


책에 실린 해설에는 청춘의 찬란함과 허무함을 담아냈다고 했는데, 나는 도저히 찾아도 찬란함 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마 허무함은 내게 남아있는 게 아닐까. 나의 청춘은 이렇게 찬란하지 못했다는 그런 허무함. 그렇게 느낄 정도로 아름답고 찬란한 사진을 볼 수 있다.



계속 말하고, 강조하는 부분이지만 책이라는 건 그저 우리에게 사고하도록 만드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게 꼭 글로 이루어져 있어야 한다는 강박을 벗었으면 좋겠다. 예술은 다양하게 발현되고 있으며, 사진집도 당신의 생각을 꺼낼 수 있는 훌륭한 책이다. 이 사진집을 통해서 당신이 그 사실을 절절히 느끼기를 바란다.



맨부커 상 수상작 한강의 『채식주의자』

세계 3대 문학상이라 불리는 '노벨 문학상' '프랑스 콩쿠르 문학상' '맨부커 문학상' 중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건 단연 노벨 문학상이었다. 고은 시인이 수상할지 어떨지 바라보는 게 매년 해왔던 일이기도 했고. 그러나 아쉽게도 고은 시인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 나오지 않았다. 다들 우리나라의 문학이 세계에서는 통용되지 않거나, 번역으로 인해 본래의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저평가 받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2016년 돌연 맨부커 문학상 수상작이 한국에서 나왔다. 그것도 무려 심사위원 만장일치. 이례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 작품이 바로 한강의 『채식주의자』다.



『채식주의자』는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세 편의 소설로 구성되어 있는 연작소설이다. 


돌연 채식주의자가 되는 영혜를 중심 이야기가 전개되서, 영혜의 몸에 있는 몽고반점에 매료된 그의 형부, 이유를 알 수 없는 동생의 채식주의 때문에 걱정하고 있는 언니 인혜가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개인적으로 한강 작가를 좋아하지 않는다.


한국 여류 작가들이 갖고 있는 특유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재미가 없다거나 맛 없는 글을 쓴다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녀들은 눈 부실 정도로 찬란한 글을 쓴다. 그런데 읽고 있자면 숨이 턱턱 막히는 공기가 있다. 옛날에는 막연하게 내가 이런 스타일을 싫어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게 아니었다.


그녀들의 작품은 대부분 -아주 당연하게도- 여성의 시점이나 여성을 관찰하는 식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어느 정도 작가의 일부, 경험, 사고를 공유한다. 무의식 중에라도 말이다. 남자인 탓에, 나는 여성의 삶을 표면적으로 밖에 모른다. 여성이기 때문에 느끼는 감각을, 나는 알 수가 없다.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 나는 그녀들의 작품을 볼 때마다 숨이 막혔던 것이 아닐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아, 이게 보이지 않는 코르셋이라는 걸까.



맨부커 상을 수상하기 전에, 나는 이미 『채식주의자』를 읽었다.


당시에는 막연히 싫다는 느낌뿐이었다. 다시금 읽어봐도 숨이 막힌다. 장인이 영혜에게 보이는 태도나, 남편의 행실이나, 형부의 파괴적인 예술 행위, 그로 인해 상처 받는 인혜를 보고 있노라면- 그렇다. 



"정서방, 영호, 둘이 이쪽으로 와라."

나는 머뭇거리며 아내에게 다가갔다. 뺨에서 피가 비칠 만큼 아내는 세게 맞았다. 그녀는 그제야 평정이 깨진 듯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두 사람이 영혜 팔을 잡아라."

"예?"

"한번만 먹기 시작하면 다시 먹을 거다. 세상천지에, 요즘 고기 안 먹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


- 「채식주의자」 中



그는 정 많은 아내의 책임감있는 얼굴을, 숟가락의 약을 쏟을까 조심하며 아들에게 다가가는 신중한 뒷모습을 보았다. 좋은 여자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아내는 언제나 좋은 여자였다. 좋기만 한 것이 오히려 답답하게 느껴지는, 그런 여자였다.


- 「몽고반점」 中



요즘 페미니즘에 대한 여론이 뜨겁다. 그에 따라서 문학의 주제로 페미니즘이 사용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얼마 전 서점에서 '페미니즘 소설집'이라는 걸 보기도 했다. 굳이 그렇게 드러내지 않아도, 여성의 삶이 녹아들어 있는 문학은 이미 잔뜩있다. 작품에는 무의식이라도 작가 자신의 일부가 녹아들기에, 여류 작가들의 작품에는 모두 그녀들의 삶이 녹아들어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부디 '페미니즘'을 시끄럽게 운운하는 책보다는 여류작가의 책을 읽기를 바란다.


페미니즘에 대해서 알고 싶다거나, 여성의 삶을 엿보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채식주의자』 뿐만 아니라 모든 여류작가의 작품을-





새해 맞이 남성지 탐구 『크레이지 자이언트』『맥심』『플레이보이』


절대로 의도한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 또 이 세 잡지를 모두 구매하게 됐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새해 맞이 남성지 탐구를 해 보자. 얼마 되지 않는 블로그 유입자들 중 대다수가 『맥심』을 통해서 들어온다. 『크레이지 자이언트』는 언급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탓에, 내 블로그 글 중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플레이보이』는 너무 유명해서인지 의외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는 못하고 있는 듯 하다.


뭐, 어찌 됐건 새해 맞이 남성지 탐구를 시작하겠다.


기본적으로 남성지에는 매력적인 여성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남성들이 그 여성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남성지를 찾는다. 부정하지 말자. 이성이 이성을 좋아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물론, 동성을 좋아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좋아하는 대상에게 호기심을 갖는 건 자연스러운 거다.


남자들이 남성지를 보는 이유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을 기반으로 한다.


그럴 듯하게 써놨지만, 결론은 여성의 사진을 보고 싶어서 사는 놈들이 많다는 뜻이다.



신비스러운 표지를 앞세운 『크레이지 자이언트』 1월 호다.


개인적으로 무작정 벗은 사진 보다는 이렇게 분위기 있는 사진이 좋다. 사진은 좋은데 누군지는 모르겠다. 『크레이지 자이언트』의 모델은 다른 잡지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표지를 장식한 사람은 바이올리니스트 이하림이다.


다른 잡지와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다는 뜻이지, 절대로 모델의 인지도가 낮다는 뜻은 아니다. 이하림도 자신의 분야에서는 인지도 있는 인물이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남들과 다른 감각, 분위기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이하림의 화보는 분위기로 모든 걸 압도한다. 런던 페이퍼 보이 같은 저 차림 좀 봐라. 매력이 철철. 


그런데 나 같이 이런 사진을 좋아하는 남자는 그리 많지 않다. 대개는 살색이 보여야 좋아한다.



그런 남성들의 니즈를 충족시켜주기 위해서 HOT GIRL 화보가 잡지 중간 중간 끼어있다. 인터뷰가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 사진 분위기는 모델에 따라 천자만별인데, 개인적으로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다만, 어느 정도의 노출은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호기심 왕성한 남자들에게는 환영 받겠다.



무작정 벗는 게 노출의 전부는 아니다.


에로티시즘의 발현은 시각적 효과를 넘어 상상력에 의거한다. 그냥 벗는 것, 벗은 것 보다 특정 상황에 대한 상상력을 이끌어내는 게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크레이지 자이언트』는 아직까지는 시각적 효과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 편이다. 위 사진은 개인적으로 꼽는 1월 호 베스트 샷이다.



그렇다고 사진만 남발하는 잡지는 아니다.


한 페이지를 꽉 채우는 칼럼이 꽤 있다. 문제는 꽤나 읽을 맛이 안 나는 칼럼이라는 것이다. 보면 볼 수는 있는데, 맛있게 읽히는 글은 아니다. 이따금 필력이 떨어지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위에 실린 결혼에 대한 칼럼이 그랬다. 이도저도 아닌 느낌. 마무리는 되게 착한 느낌. 필력, 글빨이 떨어지는 건 칼럼에서 뿐만이 아니다. 독자와 소통하는 '님들의 편지'에서도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답변을 보고 있노라면 눈물이 날 지경이다. 계속 나오는 하품 때문에.


여전히 나에게는 아쉬운 점이 많다.



HOT GIRL만 뽑다가, 올해에는 잡지사 모델을 뽑을 심산인가 보다.


지난번에 차별화가 필요하다고 언급했지만, 아직은 먼 일인 것 같다. 이런 콘테스트는 이미 『맥심』에서 진행해왔다.



『맥심』의 콘테스트에서 뽑힌 이들을 '미스 맥심'이라 부른다. 이들은 『맥심』의 콘텐츠나 행사에 참여한다.


『맥심』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콘테스트를 진행해왔다. 축적되어온 시간만큼 수많은 미스 맥심이 존재하고, 그들과 함께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게 『맥심』의 힘이다. 게다가 미스 맥심은 독자의 투표로 뽑히기 때문에 팬과 지지층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하여간 영리하다.



세 잡지 중에 유일하게 부록이 수록되었다.


혜자스러운 『맥심』. 사실, 매년 1월 호에 달력을 부록으로 넣어왔다. 달력 자체는 걸어두기 좀 그렇지만, 가끔 펼쳐보기에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이 달력에 모델로 등장하는 여성들이 모두 미스 맥심 출신이다. 다양한 컨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강점이 확실하게 두드러진다. 『크레이지 자이언트』도 올해 콘테스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면, 이와 같은 이점을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과거 미스 맥심으로 뽑혔던 이들을 인터뷰하기도 한다.


『맥심』의 오래된 독자거나, 그녀의 지지층들에게는 특별한 이벤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괜찮다. 화보가 볼만 하다는 건 둘째치더라도, 『맥심』은 특유의 글빨을 가지고 있다. 세 잡지 중에서 인터뷰가 가장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이 정성스러운 답변이 보이는가?


뇌를 거치지 않고 방언처럼 터져나오는 이 답변. 이런 류의 개그에 피식피식 웃는다면, 당신은 주저하지 말고 『맥심』을 구독, 구매해야 한다.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 거다.



아까 모델의 인지도를 이야기했는데, 이 아리따운 여성분도 나는 모른다- 고 생각했는데 이미 봐왔던 분이었다.


그 유명한 야구장 '볼걸'이시란다. 사실, 표지에 등장했던 치어리더 안지현의 인지도가 더 압도적이라고 생각하지만- 『크레이지 자이언트』에 비해서는 확실히 높은 인지도를 보여준다. 게다가 화보도 예쁘게 잘 찍어준다. 내공이 쌓인 모습이다.



게다가 다른 잡지의 인지도를 파. 괴. 하는 핫한 남자도 나오니- 인지도는 단연 탑이 아닐까. 영화 『신과 함께』가 천만을 돌파했단다.



이들의 글이 재미있는 건, 이들의 작업이 재미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글빨이 뛰어나다기 보다, 기본적으로 작업이 재미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게 아닐까. 그런 모습을 비하인드에서 가감 없이 보여준다. 여기서는 쓰이지 못한 B컷들을 구경할 수 있다. 『크레이지 자이언트』에도 B컷이 있지만, 딱 한 컷 실려있었다.



사실, 1월 호 남성지를 구매하게 된 계기는 『플레이보이』의 아름다운 표지 때문이다.


『플레이보이』의 트레이드 마크인 바니를 살려서 디자인한 표지가 눈에 확 들어왔다. 『플레이보이』는 내게 단순한 에로티시즘의 자극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상상을 유도하고 생각을 끌어낸다.



무엇보다 화보가 제일 아름답다.


여체에 대한 탐닉이라기 보다, 모델 대상에 대한 탐구에 가깝다. 때문에 그냥 '야한 사진'을 기대했다면, 글쎄......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겠다. 게다가 여성 모델만 등장하는 화보 수가 세 잡지 중에 제일 적었다. 그래봐야 한 개 차이지만. 참고로 여성 모델 사진 지면이 제일 많았던 잡지는 압도적으로 『크레이지 자이언트』였다.



광고 사진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도 추천한다.


광고 사진, 제품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면 잡지 구독을 필수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곳이기도 하니까. 남성지 중에서는 『플레이보이』가 제일 낫다. 패션지에서는 『레옹』을 추천한다. 개인적인 견해지만, 광고 사진은 '있어 보이게' 만드는 게 중요한 요소다. 때문에 고급지게 찍는 스킬이 필요하다. 두 잡지는 각 분야에서 가장 럭셔리한 잡지라는 점에서, 사진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권할만 하다고 생각한다.


음식을 이용한 에로티시즘은 이제 익숙한 것이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레이보이』는 '있어 보이게' 잘 찍어냈다.



『플레이보이』는 센터 폴드 CENTERFOLD가 존재한다.


가로로 길게 펼쳐지는 이 사진은 언제나 탐이 난다. 『플레이보이』는 이 센터 폴드만 따로 모아둔 화보집도 판매했다고 하니,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1월 호에는 과거 나인뮤지스에서 활동했던 DJ RANA가 영광의 주인공이 되었다. 접혀있는 부분이 궁금하다면 서점에 가서 당장 『플레이보이』를 사라. 늦지 않았으니까.



칼럼은 길고 진지하다.


세 잡지 중에서 가장 무게감 있는 이야기를 한다. 게다가 글빨이 쌓여있다. 내공이 느껴지는 글들이 많다. 인터뷰도 특이한데, 인터뷰어(질문자)의 말이 하나도 없거나 거의 없다. 인터뷰이(대답자)의 이야기가 주가 되어 찬찬히 써 내려간다. 인터뷰라기 보다 인터뷰이의 자기 소개 같은 느낌이랄까. 일기장을 엿보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플레이보이』는 아메리칸 스타일의 만화와 단편 소설이 연재된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하지 않지만, 외국 같은 경우 잡지에 단편 소설이 실리는 게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문학지를 제외하고 단편 소설을 꾸준히 싣는 잡지는, 우리나라에는 없다. 없었다. 『플레이보이』가 유일하다. 글을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아주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물론, 내 소설이 실릴 일은 없을 것 같지만...(시무룩)




새해를 맞이하여 탐구해 본 남성지에 대한 평은 이렇다.


단순하게 눈이 즐거운 볼거리를 찾는다면 『크레이지 자이언트』

뇌를 거치지 않는 드립이 난무하는 읽을거리를 찾는다면 『맥심』

조금은 무겁고 진지하게 생각할 거리를 찾는다면 『플레이보이』


사람마다 취향이라는 게 존재하기 때문에 딱 잘라서 뭐가 제일 좋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다. 제일 좋은 건 전부 읽어보고 스스로 결정하는 거다. 내 편파적인 탐구에서도 드러나지만, 나는 『플레이보이』가 제일 좋다. 애초에 사이즈도 두 잡지 보다 조금 더 '크다'.



봐라, 좀 더 크지.


남자나 여자나 큰 걸 좋아하지 않나? ㅎ



길들일 수 없는 작가 이외수의 초기작 『들개』


개인적으로 이외수 작가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문학 업적을 많이 남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SNS를 이용한 소통을 가장 잘 하는 작가기도 하다. 젊은 시대를 수용할 줄 아는 늙은 작가의 아우라는 새로우면서 익숙한 느낌이랄까. 최근에 발표한 작품 『보복대행전문 주식회사』만 봐도 그렇다. 제목이 어디 노인네가 쓴 글이라고 짐작이나 하겠나. 이외수라는 지은이를 확인하기 전까지, 나는 갓 등단한 작가의 풋내 풍기는 작품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악하악』을 봤을 때는 이 노인네는 뭐하는 사람인가 싶었다. 내용을 보기 전까지는.


이후 그의 작품을 읽어보겠노라 생각하고, 되도록 초기작을 찾아봤다. 『들개』는 이외수의 초기 장편 소설이다.



이야기는 소설을 쓰고 싶어하는 여자와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는 남자가 만나면서 시작된다. 여자는 비어있는 학원 건물에 몰래 숨어 산다. 남자는 이혼에 직장도 때려치고 나온 빈털털이다. 남자는 그림을 전공했다. 자신만의 순수한 작품을 그리고 싶은 욕망이 가득하다. 남자는 여자와 같은 건물 2층에 작업실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이거 모두 언제 그리신 거예요."

"대학 다닐 때 그린 게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직장을 가진 다음부터 내 그림은 시름시름 병을 앓기 시작했어요. 보십시오. 저쪽 벽에 있는 것들, 뭔가 다르지 않아요?"
"다른데요."

정말이었다. 그가 손가락질한 벽에 걸려 있는 그림들은 어딘지 모르게 분위기가 쳐져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것들 모두 늑댄가요?"

"늑대가 아닙니다."

"그럼 승냥이?"

"그것도 아닙니다."

"어쩐지 개 같지는 않은데."

"그것들은 갭니다. 그러나 집개가 아니라 들개죠."

"들개?"

"야생견을 말하는 겁니다."


- 이외수의 『들개』 中


남자는 청량음료 회사에 다니면서 광고 그림을 그렸다. 그러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야생의 감각을 잃어갔다. 순수하게 그림만을 위한 그림을 그리지 못한 게 원인이었다. 남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다시 들개를 그리려 한다. 그리고 마침내 남자는.......



분량에 비해 읽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사실, 어떻게 읽었는지 모를 정도로 빠르게 읽을 수 있다. 전개와 호흡이 빠르고, 눈에 쉽게 읽히는 문장이다. 책을 읽으면 이외수가 가지고 있는 문학적 기술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다. 이따금 위와 같은 표현,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캔버스에다 뼈를 깎아 붙이고 있는 것'을 보면 잔잔한 가슴에 돌을 던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렇게 조금씩 물결이 쌓이고 쌓여서, 작품이 끝날 쯤엔 거대한 파도가 되어서 가슴으로 쏟아져 내린다.


실력 없는 글쟁이들, 예를 들자면 나 같은 녀석들은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지도 않고 파도를 만들려는 억지를 부린다. 그러면 개연성이 성립하지 않고, 글은 호소력을 잃는다. 알면서도 막상 쓸 때는 잘 되지 않는 일이다. 이걸 자연스럽게 글 속에 녹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한 줄의 시(詩), 한 악장의 심포니, 또는 한 폭의 그림 따위들은 결단코 설명되어 지거나 해석되어서는 안 되며 다만 느끼어지는 것이라고 나는 언제나 고집하며 살아왔었다. 따라서 그 잘나빠진 고교입시나 대학입시용 참고서에서 만해 한용운 선생의 「복종」이나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 등이 조잡한 이론가들의 녹슨 칼끝에 난도질당해져 있는 것을 보면 차라리 나는 혐오감 때문에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시란 표본실의 청개구리가 아닌 것이다. 배를 가르고 내장을 드러내고 허파가 어떠니 콩팥이 어떠니 왈가왈부해봤자 더욱 시에 대한 눈이 멀어져갈 뿐이다. 물론 내가 여기서 이야기하는 시란 수사법상 제유법적으로 사용된다. 그러니까 시를 음악이나 미술로 바꾸어 말한다 해도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혹자들은 말한다. 이 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너무 어려운 시야, 라고.


그러나 어려운 것은 시가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시에 대한 편견이다. 도대체 시를 이해하려 든다는 것부터가 무모하다. 시가 감상되는 것이라는 기초적 상식을 버리고서는 도저히 시에 근접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소설을 쓸 때 언제나 그것을 염두에 둔다. 따라서 내 소설 또한 감상되기를 바라며 결코 설명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나는 되도록이면 언어 자체를 생물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추상이 아니라 구상이다. 나는 소설이 단순히 스토리 때문에 읽혀지는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것은 언어의 동작들이 가지는 아름다움 때문에 읽혀지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해 왔다. 언어의 동작이라니, 미친놈이로군, 하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분들께는 더 이상 말해 드릴 방법이 없다. 그분들은 이미 그분들의 의식 속에서 관념이라는 덮개로 언어를 뒤덮어 질식시켜 버린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 「작가가 말하는 작품세계」 中...이외수 『들개』에 수록


학교를 다니면서 작품에 대해서 공부를 할 때는 언제는 분석을 했다. 이제는 분석 자체에 즐거움을 느끼게 됐다. 그러다 도저히 이유를 알 수 없는 작품을과 마주하면 '그래, 이게 맞지'라는 생각을 한다. 애초에 작품을 분석하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하다. 작품은 감상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잘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쯤에는,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서도 가슴으로 밀려오는 파도를 느낄 수 있을 테니까.




2018년 새해를 맞이해서 선물하기 좋은 『자문자답』

일전에 이야기한 적 있지만, 책은 우리로 하여금 사고하도록 하는 도구다.


무언가에 대해서 생각해야 할 때, 우리는 책을 찾는다. 여행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여행 서적, 운동 방법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운동 이론 서적, 경제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서는 경제 서적, 다양한 인간 군상을 탐구하고 스스로를 대입해보기 위해서는 소설을 읽는다. 혹은 반대로 여행 서적을 읽고 여행을 생각하게 되거나, 소설을 읽고 다양한 인간 군상을 탐구하게 된다. 순서는 상관 없다. 확실한 건 책은 우리가 생각하게 만드는 도구라는 것이다.




출판사 '인디고'에서 출판한 『자문자답』은 제목 그대로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도록 만들어졌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생각보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집단, 단체, 사회에 속할 때는 항상 자신의 욕구보다는 무리의 이익에 따라서 행동을 규제 받게 된다. 학교만 봐도 알 수 있다. 요즘에는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학생들은 복장과 두발의 규제를 받는다. 당최 그게 공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모른다. 누구도 확실한 근거를 제시할 수 없지만, 학생들은 교복을 입고, 학교가 제시하는 규정에 맞게 단정한 머리를 해야한다. 그렇게 6년을 보내고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에게 '너희 마음대로 해라'는 건, 자유가 아니라 방치에 가깝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를 알아가는 것보다, 안정적인 삶을 누리는 것에 지대한 관심을 쏟는다. 삶을 살아가는 건 자기자신인데, 주체를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안정적인 삶을 꾸릴 수 있을까. 물고기에게는 바다 속이, 지렁이에게는 흙 속이 안정적인 삶의 조건이다. 우선 자기가 물고기인지 지렁이인지 알아야 안정적인 삶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자문자답』은 우리가 우리로 하여금 물고기인지 지렁이인지 아니면 어떤 인간인지 생각하게 해준다.






『자문자답』은 총 100개의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질문 아래에는 답변을 하는 방법, TIP이 적혀있다. 이를 토대로 질문에 충실히 답하면서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다.





엄청 심오한 질문만 있는 것도 아니다.


디자인 분야에서 많이들 하는 말이지만 Simple is Best다. 의외로 간단한 질문이 더 많은 생각을 요구하기도 한다.


근래에 일본 훗카이도에 다녀온 나는 맥주를 마시고 싶다. 삿포로 클래식. 한 잔만 마시면 누워서 푹 잘 수 있을 것 같은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때문에 혼자 살 수는 없다. 주위의 다양하고 많은 존재들과 함께 살아간다. 당신 곁에도 누군가 있다. 그들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당신에게 그들은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가.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질문이다.





사실, 『자문자답』은 책이 아니라 다이어리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로 하여금 사고하도록 만드는 도구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자문자답』은 분명히 우리에게 자기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도록 만드는 책이다. 주위 자기를 돌보지 못하는 사람, 혹은 당신 스스로에게 선물하면 좋을 것 같은 책이다. 질문을 읽고 답을 적으면서, 자신 안에 자기를 채워가는 2018년이 되기를-




2017 티스토리 결산 "개구리의 시선을 이야기합니다."



티스토리를 시작한 지 1년이 지났다.

처음으로 블로그 결산을 하는 거다. 원래 이런 걸 매년 해줬던 건가. 네이버에서 블로그를 할 때는 이런 시스템이 없었는데, 이럴 때 보면 옮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애드센스 승인은 받지 못했지만.......


애초에 뜨문뜨문 포스팅을 올린 터라, 큰 기대를 한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주신 3000명의 방문자들께 감사드린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뿌듯한 일이다. 다른 분들은 50만, 100만 방문이라는데, 애초에 포스팅 숫자부터 격이 다르다. 조급하지 말고 꾸준히 포스팅을 이어가면 언젠가는 도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내 포스팅 중에서 가장 조회수가 많은 글이 남성지 『크레이지 자이언트』에 대한 분석 글이었다.

처음 남성지 분석 포스팅을 시작했을 때는 '맥심'이 압도적이었다. 하여간 남자들이란.......


그런 의미로 1월 성인 남성지 성향 분석을 한 번 더 올리도록 하겠다.


모쪼록 무탈하고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무술년 보내시기를-





영화 『매트릭스』분석 : 6. 마치며


대학생 시절, 예술 수업에서 매트릭스를 분석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어리숙하고 부족한 게 더 많은 분석이었다. 게다가 시뮬라시옹, 시뮬라크르를 중심으로 잡지도 않았다. 이후 『시뮬라시옹』의 존재를 알고, 책을 읽은 다음에 다시 한 번 분석을 하겠노라 다짐했다. 그리고 지금 여기까지 썼다. 여전히 부족한 게 많은 분석이지만, 마침표를 찍었다는 점에서 만족한다. 어느 정도 아쉬움은 남겨둬야, 다시 도전할 마음도 생길테니.


『매트릭스』 시리즈는 해석 여지가 많은 작품으로,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시점으로 분석했다. 종교적인 분석도 꽤 많고 디테일한데, 찾아보면 또 다른 시점을 느낄 수 있을 거다. 그러나 오직 『시뮬라시옹』만으로 영화에 접근한 해석을 보지 못했기에 직접 다뤄봤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시점이라는 믿음 때문이기도 했다. 영화에 나오는 모든 요소는 『시뮬라시옹』의 이론으로 접근, 해석이 가능하다.


앞서 5개의 분석문에서 시뮬라시옹, 시뮬라크르에 대한 이론과 영화에서 표현하고 있는 방법을 다뤘다. 초점은 두 인물(네오와 스미스)에게 맞춰져 있지만, 사실은 이 영화 전체가 시뮬라시옹, 시뮬라크르 그 자체를 나타내고 있다.



네오는 스미스와의 전투 이후에 목숨을 잃는다. 스미스가 덮어졌을 때, 이미 그 목숨을 다했다. 복제된 이미지, 시뮬라크르에 의해 살해 당한 원형이다. 설계자는 네오를 데려간다. 네오 그 자체가 매트릭스 오류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설계자는 그를 분석하여 코드를 얻기 위함이다. 설계자는 이 코드를 분석해서 다시금 완벽에 가까운 매트릭스, 진짜 보다 더 진짜 같은 세상을 구현할 것이다.



7번째 매트릭스가 재구성된다. 



- 위험한 게임을 했더군.

- 변화는 늘 위험하지.

- 이 평화가 얼마나 계속 될 것 같나.

- 가능한 오래.......

- 저들은 어쩔 거야.

- 누구?

- 갇혀있는 사람들.

- 자유를 줘야지.

-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인간?[각주:1]


영화 마지막에 설계자(아키텍트)와 오라클의 대화를 통해 매트릭스가 내린 결말을 추측할 수 있다. 오라클이 말하는 '갇혀있는 사람들'이란 배양기 속에 있는 인류 전부를 뜻한다. 설계자를 비롯한 이미지들이 갖는 아주 획일된 공통점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는 것이다. 베인의 몸 속으로 들어가 트리니티를 인질로 잡았던 스미스도 네오가 총을 내려놓고 돌아섰다고 해서 트리니티를 죽이지 않는다. (물론, 함선 아래층으로 던져버리기는 하지만) 트리니티가 머리에 총구를 겨눴던 메로빈지언 역시, 거짓으로 약속하고 트리니티와 모피어스 일행을 죽일 수도 있었는데- 혹은 트레인맨을 이용에 이들 모두를 중간 지대에 가둬버린다던가- 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그런 짓을 일절 하지 않는다.


오히려 거짓과 배신은 인간들의 전유물이다. 첫 번 째 시리즈에서 모피어스 일행을 배신한 사이퍼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설계자는 갇혀있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준다는 약속은 지킬 것이다. 배양기에 있는 인간들을 모두 풀어줄 것이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현실, 자신들이 살던 세계, 매트릭스는 기계에 의해 만들어진 허상에 불과하다는 사실, 진실을 받아드릴 수 있을까? 설계자는 인간의 면모를 어느 정도 파악했기 때문에, 그들에게 자유를 준다한들 돌아오리라고 계산했다. 때문에 '이 평화가 얼마나 계속 될 것 같나'라는 말을 하고, 오라클 역시 대부분의 인간들은 진짜 보다 진짜 같은 매트릭스의 세계로 돌아가리라 생각하고 있다.



- 이렇게 될 줄 아셨죠?

- 아냐, 몰랐어. 하지만 믿었지. 믿었을 뿐이야.[각주:2]


시리즈 내내 오라클은 선택과 믿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기서 선택과 믿음은 의도(이유)와 희망과 직결된다. 어떤 선택을 했을 때 '왜 그 선택을 했는가'라는 질문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달성될 목적이 아니라 달성 여부와는 상관 없는 희망일 때, 절대적 다름이 될 수 있다. 오라클은 인간으로 하여금, 절대적 다름에 닿을 수 있도록 희망을 심어주는 존재다. 본인 스스로도 희망을 품은 채 말이다.



매트릭스, 가상 세계는 건실하다. 오히려 전보다 더 진짜 같이 구현된다. 자유를 찾았다고 해도 인간들은 다시 이 거짓된 세계로 들어온다. 결국 인간들은 거짓된 세계에서, 무엇인 진실인지 알지 못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에게 오라클, 희망이 존재하는 한 언젠가는 다시 진실을 꿰뚫는 네오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PS. 여기까지 허접한 분석문을 읽어주신 분들이 계시다면, 감사드립니다. 워낙 어려운 내용이라서 쉽게 쓴다고 했는데도, 읽기 어려운 문장으로 쓰고 말았습니다. 혹여 분석을 읽고 이해가 가지 않으시거나, 매트릭스에 대해 궁금한 점이 더 있으시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제 시점으로 해석한 내용을 달아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 영화 『매트릭스 3』 中 [본문으로]
  2. 위와 같음 [본문으로]

영화 『매트릭스』분석 : 5. 시뮬라크르, 그리고 종말

시뮬라크르가 끝에 이르면 더 이상 복제할 대상이 없어진다.


하나의 원형에서 시작된 이미지가 끊임없이 생성되어, 결국 원형마저 뒤덮는다. 이후 복제된 이미지는 복제할 대상을 찾지 못한다. 어디에도 원형은 남아있지 않다. 세상이 시뮬라크르 그 자체가 되는 셈이다.


장 보드리야르는 실재가 실재하는 것이 아닌 파생실재로 전환되는 작업이 시뮬라시옹이고, 모든 실재의 인위적 대체물이 '시뮬라크르'이며, 현대인은 가상실재인 시뮬라크르의 미혹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처럼 가상실재가 실재를 지배하고 대체하여 재현과 실재의 관계가 역전됨으로써 더 이상 모사할 실재가 없어진 시뮬라크르들은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하이퍼리얼리티(극사실)를 생산해낸다는 이론을 이어나갔다.[각주:1]


매트릭스는 이 과정을 성실하게 이행한 결과물이다. 과거 인간들이 지배했던 세계는 무한히 복제되는 기계들에 의해서 멸망을 맞이했다. 이후 인간의 시대는 종말을 맞이하고 기계, 설계자는 인간들의 시대를 재현하는 매트릭스를 구현한다.


원형 → 시뮬라크르 → 극사실(거짓된 원형)


그러나 명확하게 설계자는 매트릭스를 극사실, 그러니까 진짜 보다 더 진짜 같은 세계로 만들지는 못했다. 설계자의 목적은 극사실의 완성에 있다. 때문에 인간을 살려두는 것이다. 아직 완벽한 복제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원형이 남아있는 것이다. 설계자의 매트릭스가 극사실로서 완성된다면, 그 때 인간이 모두 사라지게 될 것으로 볼 수 있다.




- 시작이 있는 것엔, 끝도 있지. 끝이 가까웠어. 어둠이 번지고 있어. 죽음이 보여. 그를 막을 자는 자네뿐이야.

- 스미스?

- 그는 곧 이 세계를 없앨 힘을 갖게 돼. 허나 거기서 안 멈추고 모든 걸 파멸시킬 거야.

- 그는 누구죠?

- 자네지. 자네의 대칭점. 스스로 균형을 맞추려는 방정식.

- 그를 못 막으면?

- 어느 쪽이든...... 전쟁은 결국 끝날 거야. 두 세계의 미래가 둘의 손에 달렸어. 자네나, 스미스.[각주:2]




네오와 스미스, 대칭되는 두 인물이 모두 오라클을 찾아온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가정했던 두 인물의 관계를 확신할 수 있게 된다.


오라클은 네오에게 스미스가 '그는 너다'라고 얘기한다. 네오의 원형으로 인해 탄생한 복제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대사다. 또한 두 인물의 대칭을 보여주기 위해 앵글은 방향을 비튼다. 네오와 오라클이 있는 위치와 스미스와 오라클이 있는 위치는 정반대다. 




그리고 스미스는 마침내 오라클마저 복제하기에 이른다.


『매트릭스 2 : 리로디드』에서 설계자는 오라클을 자신보다 완벽하지 않은 지능이라고 말한다. 그 결정적인 차이는 직관력에 있다. 직관은 감각, 경험, 연상, 판단, 추리 따위의 사유를 거치지 않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것을 의미한다. 오라클은 매트릭스에 존재하는 인간, 프로그램을 단순한 직관으로 파악한다. 딱히 머리를 쓰는 게 아니라, 그저 보는 것만으로 알 수 있다. 오라클은 그런 존재다.


때문에 프랑스인, 메로빈지언이 오라클의 눈을 원했다. 오라클의 눈만 있다면 직관력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에. 스미스가 오라클을 복제하고, 그녀의 눈을 차지하고 선글라스를 벗은 채 웃는 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매트릭스를 파악할 수 있는 직관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제 스미스는 매트릭스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매트릭스 자체를 위협하는 존재가 완성된 것이다.


오랜 생각 끝에 네오는 시온을 구하기 위해, 전쟁을 끝내기 위해 가야할 곳이 어딘지 확신하게 된다. 중간 지대에서 보였던 곳. 의식을 집중하면 눈에 그려지는 곳.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곳. 기계의 도시로 향하고자 한다. 


다른 선원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선원들에게 있어서 실재하는 것, 원형은 시온이기 때문에 당연히 시온으로 향하고자 한다. 선원들에게 기계의 도시는 피하고 싶은 장소일 뿐, 어떠한 진실로 받아드려지지 않는다. 그러나 기계 도시가 인간들이 당면한 현실이고, 시온이야말로 설계자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거짓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네오는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계 도시로 가고자 한다.



- 뭘 원하나?

- 네가 원하는 것. 그래, 이제 알겠나? 자세히 봐. 썩은 눈알 속에 숨은 네 적이 안 보이나?

- 아니야!

- 부인하지 마, 미스터 앤더슨.

- 말도 안 돼.

- 네가 어딜 가든, 난 찾을 수 있어.

- 불가능해.......

- 가능해. 이건 필연이야. 잘 가, 미스터 앤더슨.[각주:3]


『매트릭스 2 : 리로디드』에서 스미스는 베인이라는 인물을 복제한 상태로 통신을 통해 현실의 베인 속으로 들어갔다. 네오를 살해하려 시도했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베인인 척 살아가며 네오를 죽일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다. 스미스는 함선에 숨어들어 네오를 죽일 기회를 맞이한다.



둘의 전투에서 네오는 눈을 잃게 된다. 그러나 눈이 보이지 않게 됨으로써 네오는 더욱 근원에 가까워진다.



- 네가 보여.[각주:4]


네오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거짓이다. 모두 설계자에 의해서 통제되고 있는 세상이다. 눈을 잃으면서 네오는 거짓된, 복제된, 이미지에 현혹되지 않는다. 오히려 진실을 마주하는 능력을 얻게 된다.




네오는 베인의 모습은 보지 못하지만, 안에 존재하고 있는 스미스의 모습은 볼 수 있다.


거짓된 껍데기가 아니라 직관적으로 대상을 파악하게 된다. 네오는 현실에서도 원형으로서의, '그 The One'으로서의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마치 오라클과 같은 힘을 갖게 된 것이다.



트리니티의 목숨과 맞바꾸어 네오는 기계의 도시에 도착한다.


보이는 건 차가운 세상이지만, 네오의 시선에는 마치 태양처럼 빛나는 세상으로 보인다. 네오는 설계자를 만나 스미스를 제거해주는 대가로 시온의 평화를 제안한다. 설계자는 이 제안을 수락한다.


매트릭스는 통제 프로그램에 불과하고 설계자가 포기한다면 완전히 제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설계자는 네오의 거래에 응한다. 그 이유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설계자의 목적이 완벽한 극사실의 구현에 있기 때문이다. 설계자는 인간을 에너지원으로만 사용하는 게 아니라 이성, 감각, 연상, 추리 따위로 파악하고자 한다. 그래야만 진짜 보다 더 진짜 같은 세상을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인간이 사라지면 설계자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목적을 잃게 된다.


목적을 잃은 이미지는 어떻게 될까?




매트릭스의 세계로 접속한 네오는 스미스가 정복한 세상을 마주한다. 세상은 오직 스미스로만 이루어져 있다. 수많은 복제, 이미지, 시뮬라크르로 뒤덮인 세상. 이건 원형(네오)에 대한 살상력이 극대화된 세상이다. 설계자가 극사실화 하고 싶은 대상이 '인간들의 세상'이라면, 스미스가 극사실화 하고 싶은 대상은 '네오'다.


스미스가 했던 행동은 모두 네오를 따라가기 위한 것이었다. 네오가 자신에게 했던 것처럼 다른 프로그램을 덮어썼다. 네오를 이해하기 위해서 더 많은 프로그램을 복제했다. 그리고 자신이 네오 보다 더 네오 같은 존재가 되기 위해서, 끝내는 네오를 죽이고, 네오 그 자체를 복제하기를 원하는 거다.


수많은 스미스 중, 단 한 명의 스미스가 걸어나온다. 이 스미스는 오라클을 덮어쓴 복제다. 스미스 중에서 가장 네오와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에 그 혼자 네오를 맞이한다. 



- 미스터 앤더슨, 돌아온 걸 환영하네. 보고 싶었어. 내 실력 잘 봤나?

- 오늘 밤이면 끝나.

- 알아, 늘 그래왔지. 내 분신들도 기대에 들떠있어. 내가 승리할 걸 알고 있으니까.[각주:5]



전투신이 나오기 때문에 잠시 연출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매트릭스는 연출에서 많은 작품들을 따라했다. 


감독인 워쇼스키 형제(남매)가 일부러 이런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격투 액션에서는 중국 액션 영화의 모션을 따라했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션은 히어로(예를 들면 슈퍼맨)의 모션을, 거대한 폭발이나 강한 힘이 작용하는 장면은 블록버스터 재난 영화를 모방했다.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스스로 이전 시리즈의 연출을 모방하기도 한다. 감독은 영화의 시나리오 뿐만 아니라 영화 자체에 시뮬라시옹 이론을 녹여내려 한 것이다. (정작 시뮬라시옹 이론을 제시한 장 보드리야르는 '누구도 이 이론을 작품이나 다른 것으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 왜 이러는 건가, 미스터 앤더슨. 대체 왜? 이유가 뭐야? 왜 포기하지 않지? 왜 계속 싸우는 거야? 자신까지 희생하며 뭘 지키겠다는 거야? 그게 뭐야? 뭔지는 알고 있나? 자유? 진실? 평화? 사랑? 다 환상이고 망상이야! 의미 없는 자신의 존재를 합리화시키려는 나약한 몸부림이지. 모두 조작된 거야! 매트릭스처럼 말이야! 물론, 사랑놀음은 인간의 전유물이지만...... 이젠 너도 깨달아야 돼. 넌 못 이겨 헛수고 하지 마! 왜, 대체 왜 포기하지 않는 거야!

- 그게 내 선택이야.[각주:6]


둘은 막상막하로 싸우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스미스가 우세해진다. 그러나 네오는 포기하지 않는다. 다시 일어나 스미스와 싸우기를 반복한다. 스미스는 그런 네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직관력을 얻었다 한들 스미스는 복제, 이미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여태까지 보아왔던 복제, 이미지는 목적을 가진다. 그리고 『매트릭스 2 : 리로디드』에서 스미스는 이미 목적에 대해 이야기한 바가 있다. 복제, 이미지에게는 단 하나의 목적, 극사실화에 대한 목적이 존재한다. 진짜 보다 더 진짜다워지려 하는 목적.


그러나 원형에게는 뚜렷한 목적이 없다. 목적이라고 할 게 존재하기는 하지만 뚜렷하지는 않다. 확실하지 않다. 달성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 선다. 선택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니다. 나오기를 희망하는 거다. 때문에 선택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선택을 하는 이유가 중요하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어떤 바람을 가지고 선택을 했느냐. 『매트릭스 2 : 리로디드』에서 오라클이 했던 말은 이런 뜻이었다.



- 내가 받을 걸 알고 있나요?

- 그걸 모르면 오라클이 아니지.

- 벌써 알고 있다면 난 어떻게 선택을 해야 하죠?

- 넌 선택을 하러 온 게 아니야. 선택은 이미 했지. 선택을 한 이유를 알아야 해.[각주:7]


달성 여부의 목적성을 지닌 스미스로서는 그런 네오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하고 초월해야 할 대상(원형)인데, 이해하지 못한다. 스미스의 초조함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다. 



- 잠깐! 이걸 본 적 있어. 이거야, 이게 끝이야! 그래, 넌 그렇게 누워있었어. 그리고 난...... 여기 서서, 이렇게 말하기로 돼 있지. 이렇게...... 시작이 있는 것엔 끝도 있다, 네오. ......뭐, 내가 방금 뭐라고 했지? 아냐, 이건 아냐. 말도 안 돼! ......다가오지 마!

- 뭘 두려워하나?

- 이건 함정이야!

- 네 말이 맞았어. 넌 늘 옳았지. 이건 필연이야.[각주:8]


여기서 스미스가 본 건 오라클의 예언이 아니다. 오라클은 그저 직관력이 있는 프로그램일 뿐, 직접적으로 미래를 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매트릭스 2 : 리로디드』에서 트리니티가 떨어지는 꿈은 보이는데, 결과가 보이지 않느냐는 질문에 오라클은 이렇게 대답한다.



- 이해가 안 되는 선택 이후는 볼 수 없거든.[각주:9]


방금 전까지 죽음을 불사하고 싸울 것 같던 네오는 더 이상 싸우지 않는다. 순순히 패배를 받아드린다. 이미지가 원형을 살해하는 순간을, 스스로 받아드린다. 이해할 수 없는 선택. 오라클의 직관력을 지녔지만, 스미스는 네오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한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한다. 그러나 자신의 목적은 확고하기 때문에, 네오의 몸에 손을 꽂는다.



네오는 순순히 자신의 선택을 받아드린다. 

스미스는 목적을 달성한다.


그러나 이 순간 실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복제된 이미지, 단일한 시뮬라크르만 존재한다. 모두 복제에 불과하다. 스미스는 네오 보다 더 네오 같은 존재가 되었지만, 네오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다. 존재의 의미를 상실한 스미스는 소멸하게 된다.




스미스는 '이건 불공평해. This isn't fair.'라고 신음한다. 네오는 홀로 존재할 수 있는데, 자신은 그럴 수 없음을 탄식하는 대사라고 할 수 있다. 순전히 자신의 착각인데,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네오와 스미스는 항상 비슷하게 성장하고 힘을 키워왔다. 이 둘은 빛과 그림자와 같다. 어느 하나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절대적 근원자는 없으며 오히려 절대적 다름만이 있다'




복제된 이미지로 가득 차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하는 세계.


원형을 죽이고 스스로의 목적과 의미를 상실하게 되는 시뮬라크르.


이것이 영화 매트릭스의 결말이다.


  1. 네이버 두산백과 참조 [본문으로]
  2. 영화 『매트릭스 3』 中 [본문으로]
  3. 위와 같음 [본문으로]
  4. 위와 같음 [본문으로]
  5. 위와 같음 [본문으로]
  6. 위와 같음 [본문으로]
  7. 영화 『매트릭스 2』 中 [본문으로]
  8. 영화 『매트릭스 3』 中 [본문으로]
  9. 영화 『매트릭스 2』 中 [본문으로]

영화 『매트릭스』분석 : 3. 진실을 마주하고

시뮬라크르란 결코 진실을 감추는 것이 아니다. 진실이야말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숨긴다. 시뮬라크르는 참된 것이다.[각주:1] 영화의 배경이 되는 '매트릭스'는 참혹한 진실, 기계에 의해 인간이 건전지로 전락해버린 비참한 현실이다. '매트릭스'는 '과거 인간의 시대'의 시뮬라크르인 동시에 인간이 기계의 건전지로 사용되는 현실, 진실을 나타낸다.


우리가 그토록 궁금해하던 매트릭스의 진실은 『매트릭스 2 : 리로디드』의 후반부에서 설계자(Architect)와 네오의 대화를 통해 밝혀진다.



키메이커에게 소스로 들어가는 열쇠를 건네 받은 네오는 문을 열어 소스로 들어간다. 소스는 매트릭스의 근원이다. 네오는 그 안에서 설계자와 마주하고, 숨겨져있던 진실을 마주한다.



- 누구죠?

- 나는 설계자(아키텍트). 매트릭스의 창조자지. 자네를 기다렸네. 질문이 많군. 의식이 바뀌긴 했지만, 자네는 인간이야. 따라서 내 대답을 이해 못할 수도 있을 거야. 자네의 첫 질문은 적절하기는 해도, 가장 무의미한 질문이기도 하네.

- 내가 왜 여기 있죠?

- 자네의 삶은 매트릭스의 불균형한 방정식의 나머지의 합집합이야. 자넨 내가 수학적 정도의 조화인 매트릭스에서 없애지 못한 우발적 변종이지. 해결하진 못했지만, 예상이나 통제의 범위는 안 벗어났기 때문에 자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거지.

- 내 질문엔 답을 안 했소.

- 맞아. 흥미롭군. 자네가 가장 빨랐어.

- (모니터 속 네오가) 뭐라고? 또 있었어? 몇 명이나?

- 매트릭스는 오랫동안 존재했다. 난 하나의 완벽한 변종의 탄생을 기준으로 하는데, 이게 여섯 번 째 버전이지.

- (모니터 속 네오가) 5명이 더 있었다고? 거짓말! 개소리야!

- 둘 중 하나군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거나. 아무도 몰랐거나.

- 그렇지. 자네의 추측대로 변종은 조직의 산물이야. 가장 단순한 방정식에서도 변이를 일으키지.

- (모니터 속 네오가) 날 통제하지는 못해! 없애버리겠어! 죽여버리겠어!

- 선택. 문제는 선택이군요.[각주:2]


둘의 대화에서 밝혀지는 사실을 하나 씩 확인해보자. 우선 이 대화를 통해서 매트릭스는 여러 버전이 존재했으며, 그 기준은 네오와 같은 변종의 탄생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섯 번 째 버전이라는 건, 과거 다섯 명의 네오가 존재했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피어스를 비롯한 모든 인간들은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이 사실을 알았던 존재는 다섯 번 째 네오 뿐이었다.


'네오'라는 존재는 매트릭스 내에서 설계자가 미처 잡아내지 못한 오류의 집합체다. 우연의 극대화, 바로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설계자의 예상이나 통제를 완벽하게 벗어나지는 못했다. 이미 과거에 다섯 명의 네오가 바로 이 자리로 찾아왔었고, 현재에 이르러 여섯 번 째 네오가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요원을 능가하는 신체 능력, 매트릭스 내의 규칙을 거부하는 능력, 총알을 멈추거나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네오가 통제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믿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뜻이다. 모두 설계자의 예상과 통제 속에 있었다.




- 최초의 매트릭스는 완전했지. 완벽하고, 탁월했어. 그런데 어이없이 실패하고 말았네.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인간에게 내재한 불완전성 때문이었지. 다음엔 인간 역사를 근거로 인간의 괴팍한 면들을 더 정확히 반영했어. 그러나 그 역시 실패하고 말았지. 나는 나보다 낮은 지능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네. 적어도 완벽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지능. 그래서 직관력이 있는 프로그램을 선택한 거야. 원래는 인간 정신의 단면들을 연구하려고 만들었지. 내가 매트릭스의 아버지라면, 그녀는 매트릭스의 어머니야.

- 오라클!

- 제발....... 그녀는 선택권만 주면 99%의 인간이 프로그램을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알아냈지. 거의 무의식적인 수준에서 인식되는 선택권이라도 말이야. 효과는 있었지만, 근본적인 결함 때문에 내버려두면 시스템을 위협할 수도 있는 전혀 상반되는 변종이 생겨났지. 따라서 프로그램을 거부한 이들은 소수이기는 해도, 재앙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거야.

- 시온 말이군요.

- 네가 온 이유는 시온이 붕괴될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모조리 제거되지.

- 웃기는 소리. (모니터 속 네오도 함께)

- 가장 예측이 쉬운 반응이 부정이지. 하지만 잘 들어라. 우린 시온을 다섯 번이나 파괴했고, 그 일은 점점 쉬워지고 있다.[각주:3]


오라클은 두 번 째 매트릭스 실패 후, 설계자가 만들어낸 프로그램이다. 대화에서 네오가 그녀를 '오라클(Oracle)'이라 부르자 설계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제발(Please)'라고 말한다. 마치, 그녀를 그렇게 부르지 말라는 듯하다. 오라클의 뜻은 '신의 말을 전하는 자, 예언자'로 해석되는데, 이건 어디까지나 매트릭스에 있는 인간들의 시점일 뿐이다. 설계자 입장에서 그녀는 그저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네오가 그녀를 오라클이라 지칭하는 것에 난색을 표한다고 볼 수 있다.




- 너는 소스로 복귀해 네가 가진 코드를 전달하고 초기 프로그램을 입력한 후, 시온을 재건설할 여자 16명과 남자 7명을 매트릭스에서 뽑으면 된다. 이 과정을 따르지 않으면 시스템 충돌이 일어나 매트릭스의 모든 인간이 죽는다. 그럼 시온의 멸망과 함께 인류 전체가 종말을 맞게 되지.

- 그렇겐 못할 텐데. 인간은 당신 에너지원이니까.

- 우리에겐 여러 단계의 생존방법이 있다. 문제는 네가 인류의 멸망을 감당해낼 준비가 됐느냐는 거지. 반응이 아주 흥미롭군. 먼저의 다섯은 모두 비슷한 태도를 보였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 동족에 대한 끝없는 애착을 나타냈거든. 모두 일반적으로 반응했는데 넌 훨씬 더 구체적이야. 사랑 때문인가.

- 트리니티!

- 네 목숨을 자기 것과 바꾸려고 매트릭스에 와 있지.

- 안 돼.

- 마침내 근본적인 결함이 궁극적으로 표출되고, 시작과 끝으로서의 변종이 발현되는 순간이 왔군.[각주:4]


매트릭스가 실패하면 설계자는 그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 오류 코드를 확인하고 프로그램을 리셋시켰다. 동시에 발생한 오류들을 모두 삭제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바이러스나 오류가 발생하면 그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보고서를 요청하는 백신 프로그램과 같다. 보고서를 받은 백신은 같은 오류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한다. 


오류 코드의 집합체가 바로 네오이며, 프로그램은 매트릭스다. 삭제시킬 오류들은 시온이 된다. 여태까지 다섯 명의 네오가 존재했고, 다섯 번 시온이 멸망했다. 



- 문이 두 개 있다. 오른쪽은 소스로 가서 시온을 구할 문이고, 왼쪽은 인류를 멸망시키면서 여자에게 갈 문이지. 네 말대로 선택의 문제다. 하지만 우린 이미 결과를 알고 있지 않나? 네 몸에선 벌써 화학반응이 일어나고 논리와 이성을 덮어버릴 감정이 싹트고 있지. 그 감정 때문에 아주 간단한 사실을 잊고 있어. 그 여자는 죽는다. 넌 절대 막을 수 없어.[각주:5]


다섯 번 시온이 멸망했다는 이야기는, 이전 다섯 명의 네오는 오른쪽 문으로 들어갔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네오는 트리니티를 구하기 위해 왼쪽 문을 선택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이전과 다른 네오를 만들어낸다. 첫 번째 분석문에서 절대적인 근원은 존재하지 않고, 절대적인 다름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과거의 다섯 명과 다른 선택을 함으로서, 네오는 새로운 원형으로 탄생한다. 네오는 전혀 새로운 원형이 된다.



- 하! 희망은 인간 본연의 환상이지. 네 가장 강한 무기이자,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하고.

- 다신 날 안 만나는 게 좋을 거요.

- 그럴 일 없네.[각주:6]


설계자는 네오에게 다시 만날 일이 없다고 답했지만, 이후 둘은 다시 만나게 된다. 결과적으로 설계자의 계산(예상이 아니다)이 틀렸다. 이는 네오가 비로소 설계자의 통제를 벗어났다는 뜻이다. 그리고 바로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설계자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네오는 트리니티를 구해내는데 성공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죽은 트리니티를 소생 시킨다. 이미 이 순간부터 네오가 설계자의 예상을 뛰어넘고, 통제에서 벗어났음을 알 수 있다.



- 이해할 수 없어. 모든 게 예언대로 됐는데....... '그'가 소스에 가면 전쟁은 끝나야 돼.

- 24시간 안에 끝나요.

- 뭐?

- 대책을 안 세우면 24시간 안에 시온이 멸망해요.

- 뭐?

- 어떻게 알지?

- 내가 들었어.

- 누구한테?

-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내가 믿는다는 거예요.

- 아냐, 예언은.......

- 거짓이에요, 모피어스. 예언은 거짓이에요. 난 아무것도 끝내지 못해요. 모두 통제 시스템일 뿐이에요.

- 믿을 수 없어.

- 방금 말했잖아요. 예언대로 전쟁이 끝났나요? ......미안해요.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분명한 사실이에요.

- 어떡하면 되지?

- 나도 몰라.[각주:7]


네오는 설계자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전하지만, 다들 믿기 어려워 한다. 누구보다 오라클의 예언을 믿었던 모피어스는 끝내 그 사실을 부인하려 한다. 여기까지 우리가 알아낸 사실을 정리해보자.


1. 매트릭스는 과거 인간들의 세상을 본 떠 만든 통제 프로그램이다.

2. 수많은 오류가 매트릭스에서 발생했고, 그 집합체가 바로 네오다.

3. 네오의 출현으로 매트릭스의 버전이 나뉘는데, 영화가 진행되는 시점은 여섯 번 째 버전의 매트릭스다.

4. 인류의 멸망은 네오에게 달려있는 문제다.

5. 앞서 다섯 명의 네오는 인류를 구하는 선택을 했다.

6. 이로 인해 시온은 이미 다섯 번이나 멸망했었다.

7.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혹은 네오만이 알고 있었으나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았다.

8. 현재의 네오는 트리니티를 구하는, 앞선 이들과는 다른 선택을 한다.

9. 결과적으로 네오는 설계자의 예상과 통제를 벗어난, 새로운 원형으로 탄생한다.



네오는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느낀다. 처음 마주하는 상황에서도 폭탄이 날아오는 것을 감지하고, 기계(센티넬)를 느낄 수 있게 됐다. 뿐만 아니라 손짓만으로 기계를 파괴하기까지 한다. 마치 매트릭스 내부에 간섭하는 것과 같은 초능력을 보인다. 이는 네오가 설계자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으며, 보다 더 깊은 곳까지 프로그램에 간섭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진실을 감추기 위한 껍질을 벗겨내고, 감춰졌던 사실을 마주한 네오는 한 층 더 또렷하게 원형의 모습을 띄게 된다.






  1. 『시뮬라시옹』, 장 보드리야르, 민음사, P. 5 [본문으로]
  2. 영화 『매트릭스 2』 中 [본문으로]
  3. 위와 같음 [본문으로]
  4. 위와 같음 [본문으로]
  5. 위와 같음 [본문으로]
  6. 위와 같음 [본문으로]
  7. 위와 같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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